구당(灸堂) 김남수 옹과의 인터뷰

80년 넘게 침과 뜸으로만 환자의 치료를 고집해온 한 사람이 있다.

그는 이미 지난해 한 방송사에 출연해 ‘명의(名醫)의 차원을 넘어 신의(神醫)’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찬사를 한몸에 받았던 구당 김남수(95) 옹이다.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그는 지난달 12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의료법에 관한 공개변론에 참석 차 한국에 잠시 들어왔다.

본지는 지난 2일 청량리동에 있는 ‘뜸사랑’ 사무실에서 만난 김 옹을 통해 그간 근황과 국내 전통의술인 ‘침뜸’에 대한 비전을 직접 들어볼 수 있었다.

◆잇따른 고소·고발로 침술원 결국 문 닫아
김 옹이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이유는 다름 아닌 한국에서는 더 이상 진료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대한한의사협회로부터 ‘침사(鍼師)’ 자격은 있지만 ‘구사(灸師)’ 면허가 없이 뜸을 떴다 해서 불법의료행위로 고발당해 45일간 영업정지 처분을 당했고, 계속된 고발로 인해 자격정지 처분까지 받게 되자 결국 침술원의 문을 닫게 됐다.

우리나라 의료법 27조는 ‘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든지 의료행위를 할 수 없으며, 의료인도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우리나라의 현행 의료법으로는 환자의 병을 고쳐주더라도 면허 없이 치료하게 되면 범죄자가 되는 것이다.

“사람이 죽었거나 병신이 됐다든가 돈을 많이 받았든가 그런 문제가 아니에요. 처벌법도 없어 특별법을 만들어서 야단치고 있어요. 왜냐하면 침구사법이나 의료법으로 처벌할 수 없거든요. 침은 의료법이 아니고 유사의료이기에 사실상 처벌법이 없는 거죠.”

김 옹은 그동안 연간 15만여 명에 달하는 형편이 어렵고 몸이 불편한 노인들에게 무료진료 봉사를 해왔다. 그로 인해 김 옹을 찾는 환자들은 해를 거듭해 갈수록 크게 늘어났다.

“면허 가진 돌팔이와 면허 없는 돌팔이 중에 면허 없는 돌팔이는 병을 잘 고치는데 면허 있는 돌팔이는 병을 못 고친다고 하네요. 그래서 자꾸 면허 없는 돌팔이들한테 치료를 받으려고 합니다. 공짜라고 그럴까요? 누가 쇠꼬챙이로 찔리고 불로 지짐을 당하려고 하겠습니까?”

환자들이 단지 무료이고 저렴하기 때문에 김 옹의 침술원을 찾는 것은 결코 아니다.

무엇보다도 병원이나 한의원에서 고칠 수 없는 난치병들이 김 옹에게만 가면 씻은 듯이 치료가 된다는 것이 대부분의 환자들의 반응이다.

김 옹의 주장대로 죄가 있다면 아픈 사람의 병을 낫게 해준 것이 죄가 된 셈이다.

“침은 변경되지 않고 계속 똑같은 것을 써왔어요. 부작용도 없고 경제적이며 바꿀 수 없는 영원한 의료 기구죠. 하지만 서양의학은 아무리 발달됐다고 하지만 항시 의료장비가 바뀌고 의사들은 자주 바뀌는 의료장비에 적응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어요. 이제 의사들은 의학뿐 아니라 공학도 공부해야 할 거예요.”

수천 년을 이어져 내려 온 전통 의술인 ‘침뜸’은 시대가 변해도 변화무쌍하며 오히려 과학적이라고 주장하는 양의학에 비해 부작용 없이 더 잘 치료가 된다는 것이 김 옹의 주장이다.

◆현대 의학 ‘본가(本家)’도 인정한 ‘신의’ 구당
정부와 국내 의학계는 환자들이 애타게 진료받기를 원하는 김 옹을 단지 의료법에 위배된다 하여 결국 구당의 손과 발을 묶어 놨다.

하지만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 했던가! 그것은 현대 의학의 ‘본가’인 미국에서 구당과 함께 암환자를 치료해보자는 제안을 해온 것이다.

국내 의료계에서는 거들떠도 보지 않던 구당의 ‘침뜸’을 태평양 건너 머나먼 땅인 미국에서 알아본 것이다.

현재 구당은 미국 의사들의 초청을 받아 애틀랜타 주 조지아의 한 병원 암센터에서 임상실험 중에 있다.

국내에서는 법에 위배된다 하여 자격을 박탈했지만, 조지아 행정당국이 허술한 법의 근거를 절묘하게 이용해 그것을 가능할 수 있도록 만들어줬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김 옹은 2009년 1월 미국 현지 병원 임상에서 암환자 치료에 큰 효과를 나타냈고, 이에 큰 충격을 받은 미국의 의사들이 본격적인 임상을 위해 아예 구당클리닉을 열어주었다고 한다.

구당의 ‘미국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침과 뜸의 시술은 대성공이었다.

각종 난치병이나 만성 질환에 고통 받던 백인 환자들이 침과 뜸을 맞고 건강을 회복했고, 고통 가운데 절망의 나날을 보내던 그들에게 김 옹의 존재는 한마디로 구세주와 같았다.

▲ 구당 김남수 옹이 미국 애틀랜타 주 조지아의 한 병원에서 외국인 환자와 가족, 의료진과 찍은 기념사진 ⓒ천지일보(뉴스천지)

“미국에서 일방적으로 날 데려 갔어요. 침놓을 자격도 없고, 집도 없고, 영어도 할 줄 모르는 저를요. 처음엔 가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막상 가니 생활에 전혀 지장이 없어요.”

미국이란 대국에서 작은 나라 한국, 그것도 자국에서 천대하고 홀대시하는 의원을 귀인으로 떠받들고 모셔간 것이다.

“뒤에는 골프장, 지하에는 당구장, 방이 7개나 달린 큰 집을 얻어 줬어요. 저녁엔 자고 낮에는 병원에 있어 사실 그런 큰집이 필요치 않은데도 말이죠.”

게다가 구당의 호를 딴 ‘구당통합의과대학’이 내년 봄에 준공될 예정이다.

“어떻게 사람의 이름을 넣어서 학교 이름을 지을 수 있냐면서 극구 사양했죠. 근데 하버드대학도 사람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라고 하기에 이름을 쓸 수 있도록 허락했죠.”

한편 이곳에서는 의료면허를 가지고 있는 의사, 침사, 한의사 등에게 구당침구와 서양의학, 임상 등을 교육하여 미국 전역에서 통합의료 행위를 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도록 할 계획이라고 한다.

◆‘배워서 남 주자’
“없어지면 안 될 것 같으니깐. 너무 좋은 것인데 없어지려고 하니깐 안 없어지게 하려고 교육을 시작했고, 알리기 위해 봉사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김 옹은 국내 의료업계 또는 한의사들의 핍박과 비난 속에도 꿋꿋이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와 같은 목적에서다.

개인의 영달이나 영리를 위해서가 아닌 오직 ‘침과 뜸’의 효험을 80여 년의 세월을 거쳐 확인했고, 이를 대중화시켜 아픈 사람들이 없게 만드는 것이 김 옹의 소박한 바람이다.

“제가 할 일은 침과 뜸을 알려서 전 세계 사람이 다 쓰게 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돈벌이로 하는 것도 아니고 의학에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모 의료인연합회가 유력일간지 전면광고에 구당의 침술원을 타켓으로 낸 비난성 글에 대한 심경에 대해 김 옹에게 물어봤다.

“우리는 그런 거 전혀 관계치 않아요. 난 벌써 세계로 나가서 세계에 알리고 있잖아요. 그 사람들하고 싸우려고 이 일을 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쓰지 않습니다. 단지 이 좋은 것을 알리고자 하는 생각밖에 없어요.”

구당은 양의학, 한의학, 민간의학 등 다양한 의술이 융화되어 발전할 수 있는 잠재력이 우리나라에는 풍부함에도 소통이 없는 현 의료계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고 병을 없애주는 것이 의료행위입니다. 누가 하든지 잘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내 것 네 것 찾지 말구, 내 것은 옳고 네 것은 아니고 이런 말하지 말구 다 함께 잘해야 합니다. 누가 하든지 말이죠.”

현재 세계의학은 환자의 치료를 위해 통합의학을 지향하고 있다. 특히 미국과 같은 의료 선진국도 환자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자세를 낮추고 소통을 하며 적극적으로 함께 연구하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구당의 의술을 왜 대한민국 의사들은 비난과 핍박을 일삼고 오히려 고발해 감옥에 못 넣어서 안달하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이것이 우리나라 의료계의 현주소이다. 김 옹의 의학철학은 바로 ‘배워서 남 주자’이다.

“이것은 돈벌이가 아니잖아요. 돈벌이는 ‘팔자’는 것이지만 ‘주자’는 것은 돈벌이가 아니라는 것이에요. 침과 뜸은 과거에도 돈벌이가 아닌 병 고치는 데 목적이 있었어요.”

김 옹을 비방하는 의료업계와 한의사단체와의 말과는 달리 실제로 그의 삶은 너무나 소박하고 순수했다.

구당에게 기적과 같은 치유함을 받은 소설가 조정래 씨는 “많고 많은 환자들을 죽음의 위협에서, 아픔의 고통에서 건져 생명의 새 빛과 환희를 되찾게 해주는 구당 선생은 하나도 과장하지 않고 우리의 국보적 존재이며 살아있는 문화재”라고 예찬한 바 있다.

우리나라의 의료법이 환자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는 사이비 시술자를 막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법안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김 옹과 같이 오랜 임상실험을 거쳐 기적과도 같은 능력을 발휘하는 의술인들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한 족쇄가 되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와 의료계는 이제부터라도 우리 전통의 뛰어난 의술을 ‘비과학적’이란 말로 경시할 것이 아니라 ‘통합진료’란 세계화의 추세에 발맞춰 생명을 지킬 수 있는 길을 모색해 나가보는 것이 어떨까.

▲ 내년 봄에 준공이 예정돼 있는 구당의 호를 땋아 건립중인 ‘구당통합의과대학’의 기공식 모습 ⓒ천지일보(뉴스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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