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백지원 기자] 1919년 3월 1일.
서울 거리를 뒤흔든 함성.
“대한 독립 만세”

나라를 빼앗긴 울분과
광복을 향한 열망으로 이뤄낸
전민족적 항일 운동 ‘3.1 운동’.

이후 전국, 각계 각층으로 퍼져나가면서
독립운동 역사의 분수령이 됐습니다.

그리고 1949년 3.1절을 국경일로 제정,
매년 3월 1일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세운동을 
왜 3월 1일에 벌이게 됐을까요?

기미독립선언서가 제작된 후
선언 날짜를 정하기 위해 민족 대표 33인이 모였습니다.

처음에는 3월 3일로 하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고종 황제의 인산일(장례일)이니 많은 사람이 모이는 이날이 좋겠습니다.”

하지만 이날 만세운동을 하는 건
돌아가신 황제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천도교 측 의견으로
하루 앞당긴 3월 2일로 결정.

그런데 이번엔 기독교인들이 반대.
이유는 3월 2일이 일요일이었기 때문.

종교인 주축으로 이뤄진 
민족대표 33인 중 기독교인이 16명.

이들은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며
일요일은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하루 앞당겨
3월 1일로 결정된 만세운동일.

이날 빈부귀천, 남녀노소, 지역·종교를 초월해
모두가 한마음으로 “독립”을 외쳤습니다.

“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유관순 열사 유언-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해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에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 잔 술을 부어 놓으라.”
-윤봉길 의사가 두 아들에게 유언으로 남긴 시-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안중근 의사 유언-

이 외 우리가 다 기억하지 못하는 수많은 이들의 외침과 희생 속에
1945년 이 땅에 광복이 찾아왔습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