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백지원 기자] 1956년 인천의 한 고등학교 중간고사.
전교생 569명 중 53명이 60점 이하의 낙제 점수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들에게 돌아온 건 꾸지람이 아닌 칭찬과 격려.
교장 선생님은 “제군들이야말로 믿음직한 한국의 학도”라며 격려했습니다.

낙제자들에게 칭찬을?
대체 무슨 사연이 있었던 걸까요.

‘시험’ 하면 떠오르는 엄격한 통제와 감독.

하지만 60년 전 인천 제물포고에서 치러진 1학기 중간고사에선 감독관이 없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였죠.

‘가능할까’ 하는 반신반의 분위기 속에서 중간고사가 치러졌고,
이들을 통해 ‘양심’시험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교육의 목표는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얼마든지 커닝을 할 수 있는데도 양심을 지켜서 낙제 점수가 나왔습니다. 점수가 문제가 아니라 양심을 지키는 교육. 나는 여러분들 같은 학생을 만난 것이 너무 기쁩니다.”
-길영희 제물포고 초대 교장-

덕분에 이 학교의 ‘무감독 시험’ 전통은 60여년간 이어져 왔고, 전국적으로 이 방식을 도입한 학교도 증가했습니다.

이 학교 학생들은 중간·기말고사 전에 특별한 다짐을 합니다.

‘무감독 시험은 우리 학교의 자랑’
‘양심의 1점은 부정의 100점보다 명예롭다.’

시험은 교사가 시험지와 답안지를 나눠주고 교실 밖으로 나간 뒤 종료 10분 전 돌아와 답안지를 교환, 회수하고 마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내신 경쟁이 치열해진 요즘.
명맥을 유지해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한때 형평성과 공정성에 대한 문제 제기로 존폐 논란을 겪기도 했지만
학생과 학부모, 교사, 동문들이 이 같은 전통을 이어가기로 마음을 모았습니다.

최근 제물포고는 이 무감독 시험의 문화재 등록 추진에 나섰습니다.

제물포고 총동창회는 무감독 시험을 무형문화재로 등록하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동문 출신 교수 4명이 ‘무감독 시험 60년의 성과와 의미’를 따져본 연구 용역까지 실시했다고 밝혔습니다.

제물포고의 교훈(校訓)은
‘학식은 사회의 등불, 양심은 민족의 소금’

전례가 없어 문화재 추진까지는 아직 많은 난관이 남았지만 60여년 양심의 전통만큼은 찬란하게 빛납니다.

‘무감독 시험은 양심을 키우는 우리 학교의 자랑입니다.
양심은 나를 성장시키는 영혼의 소리입니다.
때문에 양심을 버리고서는 우리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제물포고 시험 전 선서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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