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영숙 오월어머니집 관장이 지난 12일 1980년 당시 5.18 현장의 생생한 증거와 오월어머니집을 운영하게 된 계기 등을 말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5.18 희생자 어머니들의 쉼터
‘오월어머니집’ 10주년 맞아
민족화합 위한 국내외 교류사업
“5.18의 참된 의미와 정신
후대에도 알리기 위해 노력”

[천지일보 광주=이미애 기자] “저에게 5.18은 아직도 생생한 역사죠. 함께 자취했던 남동생이 집에 들어오지 않아 찾아 나섰다가, 후배 박정자와 함께 시민군들에게 주먹밥도 만들어주고 물도 갖다주면서 자연스럽게 5.18 광주항쟁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지난 1980년 5월 18일. 전남 및 광주 시민들이 군사독재와 통치를 반대하고 계엄령 철폐, 민주정치 지도자 석방 등을 요구하며 벌인 5.18 민주화운동이 올해로 36주년을 맞았다. 이에 본지는 지난 12일 창립 10주년을 맞은 ‘오월어머니집’의 대표 노영숙 관장을 만나 1980년 당시 5.18 현장의 생생한 증거와 오월어머니집을 운영하게 된 계기를 들어봤다.

오월어머니집은 5.18 희생자 어머니들의 쉼터로 지난 2001년 창립됐으며, 노영숙 관장은 지난 2007년부터 이사·사무국장을, 2011년부터는 사무총장을 맡아오다가 올해 1월 대표이사 겸 관장이 됐다.

노 관장이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바로 남동생 때문이었다.

“남동생이 당시 전남대학교 공대생이었는데 유신정권 때 학생운동을 하다가 제적당하고 감옥에 갔다 왔죠. 그런저런 이유로 동생과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동생이 5.18 민중항쟁에 관련돼 있었고 여기저기서 시위를 주도하다가 결국 감옥에 갇히게 됐어요. 그때는 상무대에서 군사재판을 했는데 당시 홍남순 변호사가 운동권으로 구속된 학생들 변호를 많이 해줬죠. 그런데 5.18 때 홍 변호사도 잡혀가게 됐어요. 남편 면회를 자주 오던 홍 변호사 사모님을 ‘구속자 가족회’ 1대 회장으로 추대하고 구속자 석방운동을 주로 하게 됐어요. 안성례 관장도 남편이 전남대 명노근 영문과 교수였는데 5.18에 관련돼 감옥에 갇히게 됐죠. 우리는 만나면 가족과 같았어요. 같은 설움, 억울함, 분노를 표출할 데가 없었죠.”

구속자 석방을 위해 열심히 뛰고 호소했던 보람이 있었던지 1981년부터 시작해서 2013년 12월 정동년씨를 마지막으로 구속자들이 모두 풀려났다.

“사형선고를 받았던 3명에 대한 사형도 철회되고 그때 명동성당에 가서 호소문을 발표하고 김수환 추기경을 만나 사정을 얘기한 것이 청와대에 전해져서 단식 3일 만에 사형이 취소됐어요. 그때 많이 울었죠.”

구속자들이 석방된 이후 구속자 가족회는 ‘민주화실천가족협의회(민가협)’으로 명칭이 바뀌고 전국적인 단체로 활동하게 된다.

“대부분 광주 5.18 희생자 구속 가족들이 민가협 회원으로 자연스럽게 활동하게 된 거죠. 그때만 해도 5.18 민중항쟁을 빨갱이들이 일으켰다고 하고 시민군들을 폭도들이라고 했던 때였죠. 하지만 우리가 직접 보고 들은 5.18 참가자들은 빨갱이도 극렬분자도 아니었어요. 순수하게 학생들이 시위하다가 잡혀가거나 다친 사람을 치료해주고 도와주다가 잡혀갔거나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5.18을 바르게 알리기 위해 오늘날까지 노력하고 있다. 그때는 컴퓨터도 없어서 직접 손으로 기록해야 했다.

“왜곡된 5.18의 현실을 알리기 시작했죠. 제일 먼저 종교단체에 알리기 시작했어요. 유신정권이 끝나고 전두환 군부 때 사회가 경직돼 있어 자칫하면 정말 빨갱이로 몰리는 상황이었죠. 하지만 우리는 5.18 진실을 알리는 데 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이후 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들의 트라우마를 치료하고 대화할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한 것을 느끼고 클래식 음악 감상실을 운영, 21년간 클래식 음악 감상실을 운영하면서 5.18 구속자 가족들의 모임은 계속됐다. 그리고 지난 2001년 오월어머니집이 창립됐다.

“오월어머니집 초대 회장이었던 안성례 회장은 우리가 5.18 현장에서 경험한 것과 여성 투사로서 활동한 것에 대해 여성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항상 강조했죠. 또 5.18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리는 데도 여성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공감한 몇몇 가족들의 생각이 모여 오월어머니집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노 관장은 오월어머니집의 활동에 대해 “5월 정신 계승 및 선약사업을 하고 있고, 노령의 어머니들이 모여 건강증진을 위한 복지프로그램도 운영하고, 민족화합을 위한 국내외 교류 사업을 추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더불어 “특히 사랑하는 가족을 민주화의 제단에 바치거나 스스로 서슬 퍼런 군부독재에 맞서 민주화 투쟁 대열에 섰던 어머니들의 쉼터이기 때문에 대부분 60~90대 고령의 어머니들이 서로 만나 안부를 살피고 오월정신을 계승하고자 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영숙 관장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그동안은 우리가 위로를 받았던 만큼 이제는 사회에 아픔을 가진 사람들, 특히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등을 우리가 안고 위로하는 자세도 필요한 것 같아 어머니들과 의논해서 함께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 관장은 5.18의 진실은 ‘우리가 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누가 하겠냐’며 어머니들을 설득해 5.18 민주화운동을 바르게 전하는 데 노력하고 있다.

“우리 자식, 남편들은 희생당해 죽었지만, 우리는 살아남은 자로서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마음이 아프더라도 마음을 굳게 갖고 역사의 5.18을 우리가 전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누가 하겠어요. 우리가 전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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