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곱슬거리는 파마머리에 빨간 야구모자를 눌러쓰고 체크무늬 남방까지 걸친, 74세라고 밝히는 나이가 어색한 품마을 마당쇠 (아가)동장 김만수씨. ⓒ천지일보(뉴스천지)

품마을 마당쇠 동장 김만수씨

‘빨간모자·청바지’ 74세 동장
‘童長’이라니 호에 ‘아가’ 붙어
환갑 후 후손 위한 공생 다짐
욕심 내려놓은 14살 청춘

옛 품앗이 정신 따른 ‘품마을’
기부와 달리 형편 따라 되갚아
회원·회비·회칙·회장·회관 無
배움·가르침 통해 사람들 모여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대한민국의 경제성장과 민주화의 성공은 뜨거운 교육열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세계가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경쟁과 실용에 매달린 삐뚤어진 교육열이 도덕·정신적 지옥(헬조선)을 만들어냈죠. 서양문물에 눈이 멀고, 우리 것에는 벙어리가 되고, 교육제도의 병폐에는 귀머거리 행세를 했습니다. 표도 안 되고, 돈도 안 되니 따라 할 수 없다면서 ‘홍익인간 이념’은 시늉만 내고, 외면하고, 포기해버렸죠. 과연 누가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교육자, 종교인, 사상가, 정치가 아니면 학부모? 아픈 현실이죠. 품마을 운동에서는 전국 각지에 작은 사랑방 같은 품마을학교를 세워 홍익인간을 펼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빨간 모자 밖으로 염색된 파마머리가 마치 브로콜리처럼 피어올랐다. 그는 청바지에 주황색 티셔츠, 체크무늬 남방을 입고 있었다. 미처 염색되지 못하고 모자 사이로 희끗희끗 보이는 머리카락과 세월만큼이나 깊이 팬 주름이 그의 나이를 짐작케 했다.

사당역 인근 한 건축사무소에 마련된 문화공간에서 만난 품마을 마당쇠 아가동장 김만수(74)씨의 첫 인상은 그러했다. 호로 지은 동장(童長)의 ‘동’이 ‘아이 동(童)’이라 사람들이 호 앞에 ‘아가’를 붙여줬단다. 환갑을 맞아 지은 이 호 덕분에 김만수씨는 이제 겨우 14살인 ‘청춘’을 살고 있다. 60세까지 자신을 위해 살았으니 다시 사는 환갑부터는 후손을 위한 공생(共生)을 살겠다고 다짐하고 개인의 욕심은 저버렸단다. 그렇게 30년 공직생활을 했던 그는 그동안 벌어놓은 돈으로 더 부자가 되려는 욕심, 더 나은 집, 여가생활, 고급 먹거리를 버리고 후손에게 물려줄 ‘문화’ 만들기에 돌입했다. 바로 ‘품마을’이다. 2006년 소수의 인원으로 미래촌을 시작했고, 2014년 품마을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 ‘품마을’은 사실 ‘품마을 운동’이라 해야 더 적합할 듯하다. 그는 현대인들이 제대로 이어가지 못하고 있는 우리네 ‘홍익인간’ 문화를 현대적으로 풀어내려고 고심하고 있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 정신이 물질 이기주의에 묻혀버려 사람들 마음에서 파내야 한다는 것이다.

품마을 운동이 동기를 삼는 옛 문화 중 하나는 바로 ‘품앗이’다. 김만수씨는 품마을에서는 주고, 받고, 되갚음 하는 품앗이 정신, 품앗이 문화, 품앗이 경제를 주창한다고 설명했다.

품앗이는 농촌의 농번기 일손이 부족할 때 서로 품을 제공해 협동하는 문화다. 서양에서의 기부문화와는 다르다. 우리만의 품앗이 문화 속에 숨겨져 있는 지혜가 있다. 품앗이에서는 품값을 남녀노소에 차이를 두지 않고, 그 집 형편에 맞춰서 품을 제공하는 것을 허용했다. 어른이 없는 집은 아이들이 나와도 됐고, 노동력이 없는 집을 위해서는 대신 협동농사를 해줬다. 또 품앗이는 줄 때는 생색을 내지 않고 주고받았으며 반드시 되갚음을 해야 한다는 철칙이 있었다. 되갚음 하는 것은 받은 것만큼의 그대로가 아니었다. 시장경제에서 지켜지는 등가 교환이 아닌 자기 형편에 맞춰 물품과 몸, 마음 품앗이까지 다 받아들이는 철저한 보은정신이었다.

“처음엔 누가 동참할까 싶었죠. 이런 일 하자고 하면 같이 할 사람이 없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있더라고요. 마음속으로 원하고 적극적으로 동참해주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서 품마을 운동이 돼 가는 것 같아요.”
 

▲ 품마을 학교에서 진행하고 있는 여러 강좌들. (제공: 품마을신문)

품마을은 다섯 가지가 없다. 회원·회비·회칙·회장·회관이다. 사람이 살아가며 서로 분쟁을 일으킬만한 유형의 것을 없애버린 것이다. 회원이 없으니 관리자가 필요 없고, 회비가 없으니 재정문제도 없다. 회칙이 없으니 회칙에 의해 뽑히는 회장도 없다. 회장이 없으니 권력 문제도 없다. 회관이 없으니 관리·유지 문제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한 가지 문제가 생긴다. 품마을은 도대체 어떻게 운영이 되는 것일까.

여기서 품마을을 운영하기 위해 등장한 개념이 있다. 바로 ‘학교(學敎)’다. ‘가르칠 교(敎)’로 한자를 바꿨다. 배움과 가르침을 통해 사람들을 하나로 모은다는 것이다. 여기서 가르치는 과목은 제한이 없고, 선생도 따로 없다. 각 분야의 전문가는 누구든 교장(敎長)이 돼서 그 전문 분야에 대해 잘못된 정보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 올바른 정보를 알려줄 수 있다. 일테면 무턱대고 자신의 집을 손수 짓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전문가가 손수 지을 수 있는 부분과 전문 기술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 구분해 바른 정보를 가르쳐주는 식이다. 도제 수업이 될 수도 있고, 전문 특강이 될 수도 있다. 참석자 모두가 소통하는 소통의 장이 될 수도 있다. 사무실 한귀퉁이, 대기실, 카페, 자연공간 등 ‘자기만의 공간’ 어느 곳에라도 가르침 마당이 펼쳐진다.

이렇게 운영돼 왔던 학교가 60여개다. 현재도 정기강좌가 17개 운영되고 있다. 7년 동안 진행된 정기강좌를 수강한 참석자만도 연인원이 3000명이란다.

운영 조직이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 품마을은 현재 김만수씨의 발품이 윤활유 역할을 하고 있다. 강좌에 참석한 사람들의 메일을 수집해 품마을 강좌 소식을 알리고 네트워크가 운영되도록 마당쇠 역할을 하고 있다.

74세. 마당쇠의 나이로는 많아 보이는 나이다. 그러나 그는 나이가 많기에 마당쇠를 할 수 있다고 했다. 퇴직하고 돈 벌려고 혈안이 되지 말고 덤으로 사는 인생이니 후손들을 위해서 물려줄 무언가 남기자는 것이다.

“처음엔 청바지에 운동화, 야구모자 쓰고 다니니 사람들이 어색해했죠. 지금은 양복을 입으면 오히려 사람들이 어디 결혼식에 가냐고 물어보지요. 환갑이라고 하면 다시 돌아온다고 하니 환갑이잖아요. 덤으로 사는 인생이지요. 좋은 데 여행가고, 더 비싼 거 먹고, 고급 차를 타고, 호화스러운 집에서 살면 뭐하나요. 내 부귀 명예를 위해 사는 것보다 후손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물려주고 가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 후손에게 물려줄 아름다운 사회 만들기에 돌입한 74세 김만수씨는 환갑을 기점으로 새 삶을 살고 있다. 품마을 운영에 대해 이야기 하며 그가 행복해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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