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서관마을의 마을마당은 다양한 주제의 전시와 문화행사가 열리는 공간이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서울시 구립 구산동 도서관마을

여덟 채 주택 하나로 이어 ‘이색적’
소품 하나까지 주민들 손으로 준비
아이부터 어른까지 온 가족 이용
‘만화특화도서관’ 층마다 만화의 숲

[천지일보=이지수 기자] 좁다란 골목 어귀. 촘촘히 들어선 ‘빌라숲’ 속에 과연 도서관이 있을까 싶은 생각을 하던 찰나, 독특한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부조화하면서도 조화롭고 특이하지만 친근한 느낌의 외관. 옹기종기 모여 있던 집들을 하나로 이어서일까. 도서관 탐방을 위해 지난달 25일 기자가 찾아간 서울시 ‘구립 구산동 도서관마을’은 비정형화된 모습에서부터 독특한 분위기가 풍겨 나왔다.

도서관마을 1층 들머리 오른편. 지난 1월 타계한 신영복 교수의 ‘서삼독(書三讀)’이라는 휘호가 걸려 있다. ‘독서는 삼독입니다. 먼저 텍스트를 읽고 다음으로 그 필자를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독자 자신을 읽어야 합니다’라는 풀이와 함께.

◆책복도를 지나 만화의 숲으로

입구에 있는 계단 몇 개를 오르자 ‘책복도’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꽤나 긴 복도를 따라 한쪽 벽면에 책들이 꽂혀있는 모습이 마치 골목길을 연상케 했다.

그 맞은편에는 1인용 탁자들과 하나로 이어진 소파가 놓여 있어 이용객들이 자유롭게 책을 읽고 있었다. 책복도를 산책하듯 지나 다다른 길 끝에는 ‘콩닥! 콩닥!’ 아이들의 심장을 뛰게 할 ‘만화의 숲’이 등장했다. 혹 만화를 좋아하는 어른이라면 아직 섭섭해 하긴 이르다. 3층과 4층은 어른들을 위한 만화의 숲이 기다리고 있으니.

2층 만화의 숲은 어린이 만화 자료와 하루 두 번 만화영화를 볼 수 있는 디지털영상만화실이 있다.

▲ 서울 구립 구산동 도서관마을 약도. ⓒ천지일보(뉴스천지)

그야말로 아이들에게는 신천지나 다름없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들은 만화의 숲 한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도서관에 대해 묻고 싶었으나 만화책을 뚫을 기세로 ‘초집중’하는 모습에 마음을 접었다.

이쯤 되자 궁금해졌다. 도서관 층마다 만화의 공간을 둔 이유는 무엇일까. 박정아 도서관마을 문화행정팀장이 설명했다.

“만화가 책에 입문하기 좋은 도구라고 보거든요. 만화를 보고 자란 세대가 어른이 되죠. 세대 격차도 줄일 수 있고 어르신부터 어린아이까지 온 가족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장점도 있어요. 2층에는 어린이 자료실이라 아동용 만화를 뒀고 3층과 4층은 청소년 만화와 성인용 만화가 있어요. ‘만화 특화 도서관’인 셈이죠.”

◆마을 안에 마을… 50개가 넘는 소통공간

청소년을 위한 맞춤 공간도 있다. 3층에 있는 ‘청소년힐링캠프’가 바로 그곳이다. 이곳은 세미나, 강연, 영화상영이 가능하고 때로는 모여 왁자지껄 놀 수도 있는 다목적 공간이다.

3층에는 책 읽는 다락방, 거북서가, 모이는 사랑방 등 크고 작은 방들도 있어 청소년들이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면서 미래의 꿈을 가꿔 나간다. 이날도 방마다 책을 보며 또래 친구들과 이야기꽃을 피우는 학생들로 가득 했다. 조금씩 새어 나오는 ‘깔깔’대는 웃음소리도 정겹게 느껴졌다.

5층으로 이뤄진 도서관마을에는 이렇듯 층마다 오밀조밀 아기자기한 방들이 있다. 모두 합쳐 50개가 넘는다. 일반 도서관과는 다른 독특한 구조로 마치 미로와 같다. 단순히 책을 대여해 보는 것을 넘어 주민들이 서로 만나 소통하면서 도서관 이름처럼 또 하나의 마을 모습을 띠고 있었다. 도서관마을은 삭막한 도시에서 따뜻하고 정(情)이 넘치는 ‘마을’을 꿈꾸는 듯했다.

사람을 만난다는 것, 그 매개체가 마음의 양식인 ‘책’이라는 것이 도서관의 존재 이유이자 특별함 아닐까. 박정아 팀장은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책을 멀리하는 경향이 있는데 자칫 삭막할 수 있는 세상에서 도서관이 필요한 것은 책과 사람을 만나는 공간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태생부터 달라… 함께 만든 도서관

도서관마을은 그 태생부터 남다르다. 한마디로 주민들이 만들었다. 이것이 기자가 탐방지로 정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2006년 지역 도서관을 원했던 주민들이 서명에 동참하면서 힘을 보탰고 주민 서명을 받은 은평구청은 2008년 도서관마을 터를 매입했다.

▲ 도서관마을은 주택 벽을 그대로 살려 책꽂이를 설치해 책복도를 형성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건축비 부족으로 공사가 멈춰 고비를 맞았지만 그래도 주민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2012년 서울시 ‘주민참여예산제’ 사업에 참여해 도서관마을 건축예산 24억원을 확보했다.

건립되기까지 총 4년이 더 걸렸다. 여덟 채의 주택을 이어 만들었다. 정확히 여덟 채 중 쓸만한 세 채는 원형으로 보존하고 취약한 다섯 채는 허물었다. 그 자리에 청소년힐링캠프 한 동을 새로 지은 뒤 총 4개의 건물을 외벽으로 둘러 하나의 덩어리로 만들었다.

건물과 건물 사이는 실내 복도로 이었고 주택은 열람실로, 골목은 서가로 변신했다. 주민들은 애정을 갖고 도서관 건립에 적극 나섰다. 자료실에 놓인 책장 하나, 앉은뱅이 탁자 하나, 도서관 가는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 하나까지 주민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은 없었다.

옛 건물의 흔적과 새로 지어진 부분이 조화롭게 하나 된 모습이 도서관 곳곳에 숨은그림찾기처럼 숨어있어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주민들이 원하고 함께 이뤄낸 도서관, 그곳에서 코흘리개 아이들과 은발 휘날리는 어르신들까지 마을 사람 모두가 행복을 만끽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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