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이혜림·장수경 기자] 서울에 있는 다섯 개의 궁궐(宮闕)에 대해 아시나요? 오늘은 조선 왕가 마지막 거처인 창덕궁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창덕궁(昌德宮)’은 구불구불한 길, 제멋대로 뻗어 올라 간 멋스러운 나무, 소박하지만 지형에 따라 배치된 건물.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지어졌습니다.

창덕궁은 1405년(태종 5년) 경복궁의 ‘이궁’으로 창건됐는데요. 전염병이 오거나 궁궐이 불타 버리면 임금이 갈 곳이 없는데, 이를 대비해 만든 게 ‘이궁’입니다.

그럼 조선왕조 숨결을 따라 창덕궁을 함께 거닐어 볼까요?

창덕궁은 우리나라 궁궐 정문 중에 가장 오래된 ‘돈화문(敦化門)’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돈화문으로 지나면 금천교(錦川橋)를 만나는데요. 이 다리는 나이로 치면 약 600살로, 현존하는 5대궁의 다리 중 가장 오래됐습니다.

왕의 즉위식이나 외국사신 접견 등 나라의 공식 행사가 치러지는 ‘인정전(仁政殿)’. 경복궁의 근정전보다 크기는 작지만 예술적으로 빼어난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조정(앞마당)에 깔린 박석이 굉장히 깨끗하죠? 원래 인정전의 박석은 둥글둥글하고 투박스러운 멋이 있었다는데요. 일제 때 이 돌들이 모두 걷어지고 잔디가 깔렸고 1997년 정부가 잔디를 걷어내고 새로 박석을 덮어 지금의 모습이 됐습니다.

임금의 자리 양쪽에는 임금의 말씀과 행동을 기록하던 사관(史官)이 앉아있었는데, 이 기록을 토대로 펴낸 것이 ‘조선왕조실록’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은 472년간의 분량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돼 있으니 정말 자랑스럽죠?

임금의 침전 희정당은 인조반정 때 불타 없어졌다가 인조 25년(1647)에 재건됩니다.

1917년 큰 화재로 소실됐다가 지금은 일제의 만행으로 큰 건물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습니다.

대조전(大造殿)도 마찬가지에요. 화재로 소실된 대조전은 경복궁 ‘교태전’을 헐어지었습니다. 특히 대조전은 ‘한일합병조약’이 이뤄진 곳으로 뼈아픈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덕혜옹주가 생을 마감한 낙선재는 불과 몇 십년 전까지 황실가족이 살았습니다.

광복 후 이승만 정권이 조선왕실의 모든 재산을 압수하려 했을 때 순종황제의 비이자 조선왕조 마지막 중전인 순정효황후 윤씨는 정권에 맞서 꿋꿋이 낙선재를 지켰습니다. 그리고 황실가족을 쓸쓸히 기다리다 1966년 이곳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영친왕과 그의 부인 이방자 여사도 이곳 낙선재를 지켰죠? 덕혜옹주도 일본에서 힘든 세월을 지내다 1962년 낙선재로 돌아왔습니다. 2005년 7월에는 대한제국 마지막 황손 이구의 장례식이 이곳 낙선재에서 행해졌습니다.

지금은 텅 빈 낙선재. 하지만 조선황실의 온기를 기억해 주는 듯 낙선재는 유난히 아름답습니다. 수백년간 창덕궁을 지켜온 자연들도 마치 많은 국민들의 관심을 바라는 듯 푸르른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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