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의 현실이 왜 이 지경이 된 것인가. 인류가 처한 이 안타까운 현실, 눈물 고통 저주 죽음 등이 이 세상의 전부인가. 무엇이 문제인가. 인류의 80% 이상이 믿고 따르고 있는 종교는 대체 무엇인가. 그저 착하고 선하게 살라는 가르침이 종교의 전부인가.

지구촌이 처해 있는 비극의 현실이 바로 인류가 종교를 필요로 하고, 나아가 종교가 존재하는 이유다. 무엇 때문에 이 같은 지구촌의 현실이 왔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고, 결과는 어떻게 되는가를 알려주는 나침반이 바로 종교요 종교가 가지고 있는 경서다. 달리 말하자면 이 세상의 정치와 외교와 힘 즉, 세상의 방법으로는 분쟁과 전쟁의 빌미만 제공할 뿐 전쟁을 해결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인류는 이 종교와 종교마다 가지고 있는 경서에 대해 그저 ‘착하고 선하게 살라는 가르침’인 양 하늘의 뜻을 사람의 뜻으로 왜곡시켜 많은 사람들을 곁길로 인도해 왔다. 하늘에 선과 악이 존재한다면 과연 어느 쪽의 계략이며, 만약 종교를 그와 같이 오해하고 있다면 누구의 조종에 의해서인지를 이제라도 알아야 한다.

‘종교(宗敎)’를 풀이하면 하늘의 것을 보고, 그 본 것을 가르친다는 의미를 가졌다. 즉, 땅(사람)의 것 땅의 생각 땅의 문화로 이현령비현령이 돼 버린 거짓종교가 아닌 ‘하늘(神)의 것’ 즉, 하늘의 가르침이요 하늘의 문화라는 의미다. 그러기 위해선 ‘천택지인(天擇之人)’이라는 말이 있듯이, 반드시 하늘의 것을 보고 들은 하늘이 택한 한 사람이 있어야만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종교가 추구하는 바는 뭔가. 바로 ‘평화’ 나아가 ‘평화의 세계’다. 다시 말해 종교의 목적은 평화다. 지구촌의 다툼과 테러와 분쟁과 전쟁을 끝내고 진정 평화의 세계를 원한다면 종교를 모르고 또 종교를 떠나서는 그 답을 찾을 수 없다. 전쟁과 반하는 평화, 평화를 약속하고 평화의 세계가 언제 어떤 모양으로 우리에게 나타날 것인지를 순리와 이치에 의해 소상히 밝혀 기록해 놓은 책, 하늘의 비밀문서가 바로 경서다. 인류가 진정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원한다면 종교를 알아야 하고, 종교를 모르고서는 평화와 평화의 세계를 맞이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느 종교며 경서든 간에 의미와 가치는 분명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내용으로 볼 때, 종교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몇 가지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먼저는 과연 종교의 주인이 한 분이라면 종교 또한 하나의 종교가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지구촌의 이 많은 종교는 다 어디서 온 것이란 말인가. 창조주(神)의 뜻인가. 아니면 욕심에 의한 사람의 뜻인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어찌 됐든 결과적으로 종교는 하나 돼야 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종교로 하나 돼야 하겠는가. 이 대목에서는 편견 없이 객관적이며 합리적이며 순리적으로 생각해 봐야 한다. 수많은 종교 가운데 누가 보더라도 가장 믿을 만한 종교가 돼야 할 것이다.

지구촌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종교가 있다. 그 가운데서도 우리 동양종교를 대표하는 소위 3대 종교는 ‘유불선’이다. 즉, 유교와 불교와 기독교(과거에는 신선사상에 입각한 도교를 비롯한 오늘날의 민족종교를 일컬음)를 말한다.

종교의 참 의미는 하늘 곧 신의 가르침이라는 사실을 모두(冒頭)에 종교의 근본 뜻을 통해 살펴봤다. 오늘날 지구촌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지하는 바대로 유교를 창시한 공자는 평민의 아들로, 불교를 창시한 석가는 왕자의 신분으로 태어났으니, 곧 사람의 아들로 태어났다. 하지만 예수는 처녀의 몸을 빌려 났지만 분명 하나님 곧 신의 아들이다. 무엇보다 획기적인 사실은 예수는 수많은 선지자들을 통해 그 탄생이 이미 약속돼 있었고 그 약속대로 태어났다는 점이 괄목할 만하다. 그렇다면 하늘의 뜻과 계획을 누가 가장 잘 알 수 있을까에 대해선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지 않을까. 하나님의 아들을 ‘평강의 왕’ 즉, 평화의 왕이라 못 박았고, 오셔서 평화를 외쳤고, 또 평화의 세계를 완성해 종교의 주인 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친히 통치하실 것을 약속으로 남겨 놨다면 그 약속 또한 믿을 수 있지 않을까. 신앙은 믿음을 전제로 한다. 그렇다면 믿을 만한 근거가 있어야 믿을 수 있지 않을까. 성서에는 역사와 족보와 연대와 수명까지 정확히 기록돼 있으며, 나아가 약속과 약속대로 이루어진 실상이 있다면, 남은 약속 또한 믿을 수 있는 근거가 되지 않을까. 이것이 신앙이고 종교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성서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 내용을 모른 채, ‘믿으면 구원’이라는 식의 허황된 신앙이라면 차라리 갖지 않는 것이 나을 것이다.

이처럼 가장 믿을 만한 경서로 종교가 하나가 되는 게 종교의 회복이며 인류의 회복이며 지구촌의 평화가 실현되는 유일한 길이다. 오늘날과 같이 종교에 대한 무지가 종교 말세를 자초했으며, 종교말세를 통해 새 종교에 의한 새 시대가 출현하니 곧 평화의 세계다. 우리는 예부터 문학과 문화 속에 ‘권선징악(勸善懲惡)’을 노래해 왔으니, 악이 멸하고 선이 승리하는 때 바로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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