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항우는 오던 길을 되돌아 나와 방향을 동쪽으로 정하고 동성까지 달아났다. 이때 따르는 자는 28명에 불과했다. 이들을 뒤쫓던 한나라군은 수천명이었다.

“나는 군사를 일으킨 지 팔 년, 칠십여회의 전투에 참전했으나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다. 싸우면 적은 패주했고, 공격하면 적은 항복했다. 그러기에 천하의 패권을 손에 넣을 수가 있었다. 그러던 내가 마지막에는 이 꼴이라니 믿어지지도 않지만 이것은 하늘이 나를 버린 탓이지 내 전술이 서툴렀기 때문은 아니다. 이제 도망칠 길조차 없어졌으니 한바탕 최후의 결전을 치를 생각이다. 적의 포위를 뚫고 적장을 죽이고 군기를 찢어 버림으로써 내가 망하는 것은 내 전술이 허술했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똑똑히 보여줄 테다.”

항우는 소수의 병력을 넷으로 나누어 사방으로 동시에 쳐들어간다는 작전이 정해졌다.

한나라 기병대는 포위망을 더욱 좁혀 오고 있었다.

“보라, 내가 저 적장을 단칼에 죽이겠다.”

항우는 4개의 분대로 돌격을 감행한 뒤 산 동쪽 3개 지점에서 집결하기로 했다.

마침내 항우는 애마에 채찍을 휘두르고 고함을 지르면서 앞으로 내달았다. 한나라의 기병들은 닿는 족족 거꾸러지고 눈 깜짝할 사이에 장수 한 명도 나가 떨어졌다.

이때 한나라의 장수 양희가 항우의 뒤로 다가섰다. 이를 본 항우가 눈을 부릅뜨고 호령을 했다. 그러자 양희는 기겁을 하여 도망치고 말았다.

한나라 기병들을 공격한 항우와 부하들은 예정대로 3개 지점에 모였다. 이들의 소재를 알아내기 위해 한나라군은 다시 포위망을 좁혔다.

항왕은 다시 돌격전을 펼쳤다. 다시 적군의 장수를 죽이고 이어서 백여명에 가까운 적들을 죽였다. 부하들을 소집해 보니 보이지 않는 자는 두 명에 불과했다. 부하들이 감탄하며 말했다.

“과연 대왕께서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항우는 장강 연안의 오강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장강을 건너 동쪽으로 달아날 생각이었다. 도선장에는 오강의 정장이 배 띄울 준비하고 있다가 다가온 항우 일행을 알아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강동의 땅은 그리 넓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사방 천 리고 인구도 수십만을 헤아립니다. 그곳으로 가시면 다시 한번 더 군사를 일으킬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자, 어서 배에 오르십시오. 배는 이 한 척뿐이니까 한나라 병사들이 뒤쫓아 와도 강을 건너지 못합니다.”

뱃사공의 말에 항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만 두겠네. 나는 하늘의 버림을 받은 몸이야. 강을 건넌다고 해서 뾰족한 수가 있겠나? 강동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내가 그곳 젊은이 팔천명을 이끌고 처음으로 일어난 곳이 아닌가. 그 팔천명이 다 죽고 나 혼자 살아남아서 여기까지 온 거야. 죽은 젊은이들의 가족이 설령 나를 반겨준다고 하더라도 나로서는 그들을 대할 낯이 없어. 그들이 나를 용서하더라도 나 자신이 나를 용서할 수 없어.”

항우는 뱃사공 정장에게 부탁을 했다.

“자네를 사나이로 믿고 부탁하겠네. 이 준마는 내가 오년 동안 타고 다니며 아끼는 말일세. 이놈이 내닫는 곳에 적이 없었고, 하루에도 능히 천 리를 달렸어. 차마 내 손으로 죽일 수가 없네. 자네가 좀 맡아 주게.”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