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더 킹’ 스틸. (제공: NEW)

최고의 권력 향한 거대한 설계
주인공 태수 중심으로 보여줘

다소 뻔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연출력·연기로 신명나게 선사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대한민국의 왕은 누구인가. 영화 ‘더 킹(한재림 감독)’은 관객들에게 이 같은 질문을 던지며 시작된다. 피해자들의 입장에서 답답한 시국을 다룬 영화들은 많았다. 문제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식해줬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더 킹’은 자신의 입맛대로 움직이고 싶어 하는 권력을 쥔 자들을 경쾌함으로 풍자한다. 그것이 바로 이 영화의 매력이다.

영화 ‘더 킹’은 무소불위 권력을 쥐고 폼나게 살고 싶었던 ‘태수(조인성분)’가 대한민국을 입맛대로 좌지우지하는 권력의 설계자 ‘한강식(정우성 분)’을 만나 세상의 왕으로 올라서기 위해 펼치는 이야기다.

‘태수’의 아버지는 동네에서 한 주먹하는 깡패이고, 사기꾼이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태수’가 배운 것이라곤 주먹질과 맷집뿐이다. 학교에서 일명 ‘싸움짱’을 하면서 권력을 유지하던 ‘태수’는 어느 날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 같던 아버지가 검사 앞에 무릎 꿇은 모습을 보게 된다.

▲ 영화 ‘더 킹’ 스틸. (제공: NEW)

그 순간 힘을 가진 검사가 되리라고 다짐한다. 하지만 평생 안 하던 공부를 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학교에서는 책만 폈다 하면 잠이 든다. 자신이 시끄럽고 혼잡한 곳에서 공부가 잘되는 특이체질이라는 것을 깨달은 ‘태수’는 패싸움하는 순간에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더니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고, 운 좋게 사법시험에 합격한다.

검사 임명을 받은 ‘태수’는 검사와 재벌의 딸을 연결해주는 마담의 소개로 예쁘고 부유한 집안의 고명딸 ‘임상희(김아중 분)’을 만나 결혼에 성공한다. 지방으로 발령받아 하루 30건의 범죄를 처리하는 중노동을 하던 ‘태수’는 지역 유지의 아들인 성폭행범을 잡아넣으려다가 대학 선배 검사 ‘양동철(배성우 분)’를 만나고, “그냥 넘어가면 검찰 핵심부서로 불러주겠다”는 제안을 받는다. 양심과 출세 사이에서 고민하던 ‘태수’는 제안을 받아들여 서울에서 나라를 주름잡는 권력 설계자 ‘한강식’ 밑으로 들어간다.

20대 초반에 사시 패스에 성공하고, 노태우 정권 시절 ‘범죄와의 전쟁’을 통해 목포를 평정한 ‘한강식’은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하는 실세 중 실세다.

▲ 영화 ‘더 킹’ 스틸. (제공: NEW)

자신이 설계한 목표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밀어붙이는 저돌적인 성격으로 차기 검사장을 노리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고향친구이자 ‘들개파’의 2인자인 조폭 ‘최두일(류준열 분)’을 만나 앞으로 뒤를 봐줄 것을 약속한다. 새로운 판을 짜며 기회를 노리던 이들 앞에 예상치 못한 위기가 닥친다.

영화는 ‘한국만큼 권력자들이 살기 좋은 나라가 있을까’라는 물음에서 시작됐다. ‘연애의 목적’부터 ‘관상’까지 촌철살인의 대사로 돌직구를 던져 영화팬들의 사랑을 받아온 한재림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았다. 한 감독은 권력을 움직이는 핵심 인물들의 뒷모습을 수면 위로 드러냈다. 이미 세상 위를 군림하며 화려한 삶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의 민낯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 모습은 세련됐으면서도 우스꽝스럽다. 권력의 맛을 보고 왕이 되고자 했던 한 남자가 거칠 것 없는 화려한 삶을 누리는 모습은 탄성이 나올 만큼 화려하다. 하지만 그 안에 해학이 담겨 있다.

▲ 영화 ‘더 킹’ 스틸. (제공: NEW)

멋진 정장을 빼입고 범죄자들을 정죄하던 검사 주축 3인방 정우성과 조인성, 배성우가 설계대로 이뤄지자 클론의 노래 ‘난’에 맞춰 군무를 춘다. 또 대선 승리를 위해 굿판을 벌여 진심으로 기도한다. 대한민국 권력 상위 1%에 속한 사람들이라고 볼 수 없을 만큼 가볍고 어이없는 행동이 실소를 자아낸다.

‘태수’의 시점에서 조인성의 내레이션으로 시작과 끝을 맺어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이야기가 술술 전개된다. 198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격동의 현대사를 데칼코마니로 보여준다. 어려운 정치 이야기를 듣는 다기보다 허풍 많은 아저씨들의 시시껄렁한 일대기를 보는 듯하다.

▲ 영화 ‘더 킹’ 스틸. (제공: NEW)

영화 ‘아수라’ ‘내부자들’ 등이 대한민국의 부조리함을 담아냈다면 ‘더 킹’은 세상 위를 군림하는 권력가들의 민낯을 들춰내며 최대한 우아하고 클래식하게 현실을 비꼰다. 여기에서 관객들은 간접경험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영화는 줄거리만 들어도 맥락이 잡힐 만큼 친절하게 연출됐다. 극적인 반전이나 격한 갈등이 없어 “뻔한 영화 아니야”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한재림 감독만의 감각적인 연출력에 한 표를 던져보는 것은 어떨까. 게다가 조인성과 정우성, 배성우, 류준열 등 명배우들이 만났다. 스크린에서 뛰노는 배우들의 연기를 보고 있자면 함께 큰 설계를 해낸 것 같이 신이 난다. 영화는 18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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