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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표] 쓸쓸하고 찬란한 ‘운현궁’… 150년 역사 고스란히 담다
박수란 기자  |  union@newscj.com
2017.02.24 21:4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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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선대원군의 주된 거처였던 ‘노안당’으로 가는 길목에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조선의 역사를 말해주는 듯하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본래 사대부 집… 고종 등극 후
확장 공사 뒤 ‘운현궁’으로 불려
단청 장식 없어 소박한 느낌
노안당·노락당·이로당 위치
6.25 후 일부 팔리며 규모 축소

궁 뒤편에 지어진 양관
일제 회유책으로 지은 건물
김구 선생, 집무실로도 사용
최근 ‘도깨비’ 촬영지로 주목

[천지일보=박수란 기자] 드라마 ‘도깨비’ 주인공 공유의 집. ‘운현궁’의 수식어가 됐다.

최근 인기리에 종영된 도깨비 촬영지가 ‘운현궁’으로 알려지면서 이곳을 찾는 열혈팬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운현궁 양관’이다. 운현궁과 운현궁 양관은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부터 그의 후손들이 살던 집이다.

아마 드라마를 통해 운현궁 양관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운현궁 양관 근처에는 이곳보다 50여년 먼저 지어진 전통한옥 ‘운현궁’이 자리 잡고 있다.

기자는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운니동에 있는 운현궁을 찾았다. 지하철 3호선 안국역 4번 출구로 나와 5분 남짓 걸으니 운현궁을 만날 수 있었다. 조선 말부터 150여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안고 있다. 그 속에는 구한말 일제시대의 뼈아픈 역사도 담겨 있어 씁쓸하기도 하다.

‘운현궁’과 그 뒤편으로는 서양식 건물인 ‘운현궁 양관’이 있다. 운현궁은 조선 26대 임금인 고종이 등극하기 전에 살았던 잠저로,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집이다.

다시 말해 사대부의 집이었던 이곳은 고종이 임금자리에 오른 뒤 대폭 확장 신축하고 ‘궁’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왕이 살았던 궁궐은 아니지만, 한때는 궁궐 못지않은 권력을 자랑했다고 한다. 흥선대원군은 이곳을 무대로 10여년간 어린 아들인 고종을 대신해 집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규모나 격식, 평면 모양으로 볼 때 사대부 집이라기보다는 궁궐 내전에 가깝다고 한다. 지금은 그때의 규모만큼은 아니다. 흥선대원군이 세상을 떠난 후 큰 아들인 이재면을 거쳐 손자 이준용에게 상속됐으나, 한국전쟁 이후 상당 부분이 팔리면서 집의 규모가 크게 줄어든 것이다.

운현궁은 1864년에 노안당과 노락당을 짓고, 1869년에는 이로당을 세웠다.

운현궁은 ‘구름 고개’라는 의미를 지닌다. 전통한옥이 그렇듯 하늘, 구름, 나무 등 자연과의 어우러짐이 한 폭의 그림이다.

운현궁에 들어선 순간, 화려함보다는 소박함이 느껴졌다. 경복궁이나 창경궁처럼 형형색색의 단청 장식이 보이지 않아서다. 왕이 살았던 궁궐이 아니었기 때문에 단청 장식이 없는 것이다. 조선시대에선 단청은 궁궐이나 사찰에만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운현궁은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있다. 때문에 그 당시에는 창덕궁을 쉽게 드나들도록 고종 전용 경근문과 흥선대원군을 위한 공근문을 두었다고 한다.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운현궁 정문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수직사다. 수직사는 운현궁을 지키는 수하들이 사용했던 곳이다. 고종 즉위 후 운현궁의 규모가 확대되고 흥선대원군의 권력이 커지면서 경호가 필요해지자 궁에서 군졸이 파견됐다고 한다. 현재 건물은 1998년 운현궁 복원 공사 때 새로 지어진 것이다.

   
▲  ⓒ천지일보(뉴스천지)

수직사를 지나가면 노안당이 나온다. 이곳은 운현궁의 사랑채로 흥선대원군의 주된 거처로, 흥선대원군이 집정할 당시 국정을 논의하던 곳이었다.

노안은 ‘논어’ 가운데 ‘노자(老子)를 안지(安之)하며’라는 구절에서 따왔는데 ‘노인을 공경하며 편안하게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노안당 옆에는 노락당이 있다. 가족들의 회갑이나 잔치 등 큰 행사 때 주로 사용했던 곳이다. 고종과 명성황후도 이곳에서 가례를 올렸다. 지금도 운현궁에선 전통혼례를 올릴 수 있다고 한다. 이날도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남녀 한 쌍이 추위도 잊은 채 결혼 화보를 찍고 있었다.

노락당은 운현궁 안에서 유일하게 기둥머리에 날개 모양의 장식으로 공포를 달아 높은 위계를 보여준다.

그 옆에는 운현궁 가장 안쪽에 자리 잡은 이로당이 있다. 이로당은 노락당과 함께 운현궁의 안채로 쓰였다. ‘이로’는 흥선대원군과 부인 민씨를 뜻한다.

   
▲  ⓒ천지일보(뉴스천지)

운현궁 뒤편에는 운현궁 양관이 있다. 운현궁을 나와 왼쪽으로 몇 분만 걸으면 덕성여자대학교 종로캠퍼스 정문이 나온다. 정문에 들어서서 길 따라 쭉 걷게 되면 하얀 실루엣의 운현궁 양관이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건물 양식은 프렌치 르네상스식이다. 아치 모양이 많은 이유가 그 때문이다. 정면 중앙에 현관을 두고 좌우의 2층에는 아치로 개방된 베란다를 두었다.

이날도 10명이 넘는 사람들이 도깨비 촬영지를 보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여기가 그 도깨비 집이잖아.” “기념으로 남겨야 돼.”

드라마 도깨비의 팬으로 보이는 4명의 아주머니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건물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건물 내부도 기웃거려 보지만 문이 굳게 닫혀있어 안으로 들어갈 순 없었다. 1948년 덕성학원에 인수돼 본관으로 쓰이다 지금은 비어있는 상태다.

양관이 지어진 시기는 정확하진 않지만 1910년대인 것으로 알려진다. 일제가 회유책의 일환으로 대원군의 손자 이준용(이준으로 개명)에게 지어준 곳이다. 1917년 이준이 돌아가고 순종의 동생 이강의 2남 이우가 계승하면서 한때 ‘이우공저’로 불렸다고 한다. 그러다 1946년 백범 김구 선생이 2층 사무실을 집무실로 사용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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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기사의견(4)
오뚜기
2017-03-02 15:48:00
찬성:0 | 반대:0 찬성하기 반대하기 삭제하기 신고하기
도깨비가 많은 걸 남기고 갔네 ㅎ
도깨비가 많은 걸 남기고 갔네 ㅎ
에리카
2017-02-27 21:10:33
찬성:0 | 반대:0 찬성하기 반대하기 삭제하기 신고하기
나무가 세월을 말해주고 있네요
나무가 세월을 말해주고 있네요
박하진
2017-02-25 21:17:51
찬성:0 | 반대:0 찬성하기 반대하기 삭제하기 신고하기
왠지 쓸쓸함이 묻어나네느낌이 달라 운
왠지 쓸쓸함이 묻어나네
느낌이 달라 운현궁
서른예
2017-02-24 22:03:51
찬성:0 | 반대:0 찬성하기 반대하기 삭제하기 신고하기
도깨비 넘나 잼나게 봤는데...운현궁
도깨비 넘나 잼나게 봤는데...운현궁 양관이라는 곳이 있었다니... 셑트장인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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