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용순 응사가 매사냥 시연회를 하고 있는 모습 (제공: 박용순 응사) ⓒ천지일보(뉴스천지)

인터뷰 | 고려응방 박용순 응사

14번째 매사냥 공개시연회
매사냥 역사성 알리는 자리

“매와의 교감·신뢰 젤 중요”

아픈 모습 절대 보이지 않던
매의 지조, 옛 선비도 좋아해

[천지일보=장수경 기자]“휘~이~휘~이.”

높은 나무 위에 앉은 매 한 마리는 도망가지 않고, 소리를 듣고 잽싸게 날아왔다. 매는 털옷을 입고 털모자를 쓴 남성의 팔 위에 앉았다. 그는 박용순 응사였다. 매는 이곳이 제 자리임을 알고 있는 듯 편안해 보였다.

지난달 18일 대전시 동구 이사동 ‘고려응방’에서 박 응사를 만났다. 그는 ‘한국전통 매사냥 공개 시연회’에 집중하고 있었다. 매를 보기 위해 이미 많은 사람이 고려응방에 찾아왔다. 찬바람이 코끝을 시리는 추운 날씨였지만, 이곳의 열기는 뜨거웠다. 아이들은 처음 보는 참매, 황조롱이 등이 귀여운지 연실 ‘까르르’ 웃어댔다.

매사냥은 훈련된 매를 이용해 꿩 등을 사냥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북방 지역에서 전래된 매사냥이 고조선을 거쳐 삼국 시대로 이어지면서 활성화됐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 박용순 응사가 매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사냥에 쓰는 매를 기르고 사냥하는 사람을 ‘응사’라 부르는 데, 국내에는 2명의 응사가 있다. 그 중 한 명이 바로 고려응방의 박용순 응사다. 이들 모두 시도 무형 문화재 기능 보유자로 지정돼 매사냥의 전통을 잇고 있다. 이곳 고려응방에서 열리는 공개시연회도 올해로 14회째였다.

매사냥을 매년 여는 이유에 대해 박 응사는 “매가 산에서 꿩을 백 마리 잡는다고 해서 의미 있는 게 아닙니다. 역사적인 매사냥을 시민에게 알리고, 즐거움을 나누는 게 중요합니다”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2010년 매사냥이 유네스코 지정문화재로 등재되다 보니 박 응사의 사명은 더욱 막중해 보였다.

▲ 늠름한 모습의 매 ⓒ천지일보(뉴스천지)

◆초등학교 5학년 때 `새끼 매' 처음 접해

박 응사가 처음 매를 접한 건 초등학교 5학년 때다. 우연히 새매 새끼를 발견했는데, 집으로 데려와 길렀다고 한다. 그러면서 차츰차츰 매와 사랑에 빠지게 됐다.

본격적으로 매사냥을 시작한 건 스승님을 만나고서부터다. 25살의 젊은 나이에 금산의 강종석 응사를 찾아갔다. 스승님에게 그는 매를 조련하는 법, 데리고 사냥을 하는 법 등 매사냥의 다양한 기법을 배웠다.

“매사냥을 처음 배울 때는 산에 가서 그물을 치고 야생 매를 잡았습니다. 스승님에게 산자락에서 매사냥 기술을 배웠는데, 그때의 추억이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특히 처음 매사냥에 성공했을 때 그 두근거림은 여전히 제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 아이들이 매를 보며 밝게 웃고 있는 모습.ⓒ천지일보(뉴스천지)

◆매사냥, 매와의 교감이 중요

매사냥은 어떤 매력이 있을까. “매사냥은 결과를 알 수 없다는 게 매력입니다. 자연과 함께하는 게 묘미죠. 매로 꿩을 잡을 때, 꿩이 이길 수도 있고 매가 이길 수도 있습니다. 보통 매사냥의 성공 확률은 30%입니다. 가능성을 두고 꾸준히 도전할 수 있는 게 매사냥입니다.”

매는 옛날 선비들도 좋아하던 동물이었다고 한다. “매는 굶어 죽어도 벼 이삭을 먹지 않습니다. 자신의 아픈 모습을 절대 보이지 않는 새가 매입니다. 선비나 역대 장군은 이런 매의 정신과 지조를 좋아해서 매 그림을 자주 그렸습니다.”

매사냥을 일반인도 쉽게 배울 수 있는지 박 응사에게 묻자 그는 “전문가는 한 달 정도 걸리지만, 비전문가는 수십 년이 흘러도 할 수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왜 그런가 물었더니, 주인과의 호흡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남녀 간에도 상대방에 대한 믿음이 중요합니다. 매사냥도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매와 나와의 관계는 불안합니다. 하지만 꾸준한 연습을 통해 매와 교감, 신뢰를 쌓는 겁니다. 그래야 매를 자연에 풀어 놓아도, 다시 주인에게 돌아올 수 있는 겁니다. 매에 대한 집중과 사랑이 필요합니다.”

▲ 한 아이가 매체험을 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매 데리고 출근한 적도 있어

매를 키우면서 겪은 에피소드는 없을까. “예전에 직장에 다닌 적이 있었죠. 매를 집에 혼자 둘 수가 없어서 매와 함께 출근했습니다. 제 책상 옆에 매를 놓고 일이 끝난 후 매에게 밥을 주고 있는데, ‘왜 매를 가지고 출근하냐’고 상사가 꾸짖더군요. 그때 매에게 더 집중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박 응사는 낮에는 매를 기르고 밤에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한다.

“매사냥은 생업이 되는 분야가 아니라 보니 이것만으로는 사료값을 충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낮에는 매를 기르고, 밤에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은 적도 있습니다.”

그런 자신이 매사냥 보존에 힘쓸 수 있게 믿어준 아내가 정말 고맙다고 말을 건넸다.

▲ 박용순 응사와 10여명의 매사냥 전수·이수자의 모습 (제공: 박용순 응사) ⓒ천지일보(뉴스천지)

◆“매, 훈련 공간 필요해”

현재 박 응사는 매사냥 이수자 배출에도 힘쓰고 있다. 이날 매사냥에서는 10여 명의 전수·이수자들이 소개됐다. 성별·직업 상관없이 그동안 매사냥에 관심 있었던 이들은 자신의 일을 하면서 틈틈이 매사냥을 배워왔다. 박 응사는 전수자들이 시연할 때마다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지켜봤다. 매사냥의 힘찬 미래를 그는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이날 공개시연회에는 문화재청 관계자도 찾았다. 그는 “한국전통 매사냥 발전을 위해 대전시 학생이 매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런가 하면 박 응사는 매와 함께 훈련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현재 매가 맘껏 날 수 있는 공간이 없습니다. 실외이고, 야산을 낀 공간이어야 매가 자유롭게 날 수 있습니다. 적합해 보이는 곳을 우연히 발견해도 사용할 수 없다는 답변을 듣습니다. 매사냥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연습 공간이 절실히 필요한 상태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매는 영원한 동반자는 아닙니다. (매가) 자연에서 왔으니 때가 되면 자연으로 돌려보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년 한 마리씩 매를 자연으로 날려 보냅니다. 매사냥은 매를 사랑해주고 아껴줘야 가능한 겁니다. 매사냥의 참 의미를 국민도 알아줬으면 합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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