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4일 블랙컨슈머 리포트 저자 김종훈 한국자동차품질연합 대표를 만나 지난 20여년간 소비자 분쟁 조정 관련 일을 하며 있었던 일들에 대한 소회를 들었다. 사진은 김 대표가 한국소비자원에 재직할 당시 교통방송 등의 고정 출연 모습 (제공: 김종훈 대표)

‘블랙컨슈머 리포트’ 김종훈 저자
前 한국소비자원 출신 소비자분쟁조정 전문가

[천지일보=손성환 기자] “악성 소비자 ‘블랙컨슈머’는 결국 자동차 회사의 허술한 대응으로 생겨난다고 볼 수 있다. 회사는 빌미를 주지 말아야 하면서도, 문제 해결에 노력해야 한다.”

지난달 서울 서대문구에서 만난 ‘블랙컨슈머 리포트’의 저자 김종훈 한국자동차품질연합 대표는 “소비자와 회사 간의 분쟁에 있어서 양쪽을 균형 있게 봐야 한다”며 소회를 밝혔다.

김 대표는 1988년 한국소비자원에 입사해 생활안전팀장, 분쟁조정1국장 등을 역임하며 20여년간 소비자와 회사 간의 분쟁을 조정해온 인물이다. 특히 자동차 관련 소비자 분쟁에 있어서 전문가다. 그는 양쪽을 균형 있게 보려고 했고, 이를 위해 철저한 청렴도 필수였다.

얼핏 이 책의 제목만 보면 소비자만을 꼬집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김 대표는 “블랙컨슈머 발생의 근본은 오히려 회사에게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회사가 원칙을 갖고 초기 대응을 제대로 하면 블랙컨슈머는 없어지고, 소비자도 불만을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지난달 24일 한 카페에서 만난 '블랙컨슈머 리포트' 저자 김종훈 대표가 저서에서 사례를 찾아주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그에게 대표적인 블랙컨슈머 사례를 물었다. 그는 ‘블랙컨슈머 리포트’에서 정수기·가구·자동차 등을 가리지 않고 불만을 제기한 악성소비자의 사례를 들었다. 이 악성소비자는 정수기 회사를 찾아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 ‘정수기 점검 방문 코디의 서비스가 엉망’이라고 불만을 나타내며, 미리 숙지한 대표이사실에 막무가내로 들어가 면담을 하게 됐다.

하지만 정수기 대표이사는 ‘서비스가 개선되도록 직접 지시하겠다’고 단호히 답변하면서, 소비자는 더 불만을 표출할 이유가 없어졌다. 이에 소비자는 다시 지방에서 본사까지 온 교통비인 항공료를 요구했다. 회사는 이 소비자가 타고 온 항공사가 저가항공임을 확인하고 그에 준하는 수준으로 교통비를 줘서 보냈다. 단호하면서도 문제 제기를 수용한 사례다.

이 소비자는 또 가구회사에 ‘10년 전 구매한 소파의 품질을 문제 삼고 100여만원의 환불’을 요구하며, 사장이 출근하는 오전 7시에 방문해 재빨리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불만을 표출했다. 사장은 2시간여를 시달려 10년 전 구매한 가구의 구입가 전액을 환불해줬다.

김종훈 대표는 이 사례들을 소개하며 “소비자가 회사들을 상대로 불만을 표출했을 때, 회사는 돈을 주며 주먹구구식으로 해결하면 안 되고 원칙을 갖고 응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사례는 회사의 허술한 응대가 소비자의 화를 돋아 일을 크게 만든 경우다.

한 소비자는 자동차를 구매하면서 자동차 회사의 출고장을 직접 방문해 구입한 차를 찾아왔다. 당시 소비자는 차량의 단차를 발견해 출고장에서 바로 다른 차량으로 교체해 차량을 인수했지만 그 차 또한 단차가 발견됐다. 소비자는 자동차회사 서비스센터를 방문해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센터에서는 상세한 설명 없이 ‘별 문제가 없다’며 다른 일을 봤다.

여기에 소비자는 화가 나서 차량 등록을 하지 않고 회사에 불만을 제기했다. 이어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까지 상정됐다. ‘정비를 통한 단차 조정과 이에 대한 보증 연장’으로 심사 결과가 나왔지만, 소비자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급기야 소비자가 영업담당 직원 등을 고소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김 대표는 “블랙컨슈머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자동차회사가 원칙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며 “소비자 불만의 문제 해결 주체는 소비자가 아니라 회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또한 김 대표는 “소비자와 회사 간 분쟁조정 일을 해오면서 쌓인 많은 경험들을 사회에 환원하고 싶은데 정부나 회사들이 이러한 것을 고려치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최근 현대·기아차는 소비자 불만을 적극 수용하겠다며 관련 조직도 꾸렸지만, 객관적인 외부 인사가 아닌 내부 인원으로 구성하면서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한계에 부딪혔다.

회사들이 김 대표와 같이 객관적으로 평가·지적할 외부 인사를 영입한다면, 소비자들은 공정성을 유지하려는 회사의 진정성을 알아주지 않을까 아쉽다.

그런 의미에서 김 대표를 간략 소개하면, 그는 한국소비자원을 정년퇴임하고 지금은 한국자동차품질연합이라는 소비자단체를 세워 재능기부 형식으로 봉사를 하고 있다. 누구 하나 급여를 주는 것도 아니지만 소비자와 회사 간의 분쟁을 해결하고 있다. 그는 또 어느 한쪽에만 치우쳐서 말하지 않는다. 일각에선 실질적으로 정부기관보다 낫다는 말도 한다.

반면 최근 공정거래위원회 산하 한국소비자원에 대한 평가는 부정적이었다. 특히 자동차 관련 소비자들 몇 명은 소비자원에 접수를 해서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며 어려움을 토로하는 이들이 있었다. 경험 많고 전문 지식이 있는 이들을 재수용해 자문역으로 활용하면 어떨까. 김 대표는 “전문성이 없으면 적극적이지도 않고,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 한다”고 꼬집었다.

▲ '블랙컨슈머 리포트(출판사 청어)'. 한국소비자원에서 20여년간 재직한 김종훈 한국자동차품질연합 대표의 저서. ⓒ천지일보(뉴스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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