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지막 황제가 선조들의 품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침묵하고 있던 사람들의 마음은 증오와 절망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3·1운동이 실패로 끝나고 수천 명이 목숨을 잃어서가 아니라 후계자도 남기지 못한 황제의 죽음과 더불어 자유에 대한 마지막 희망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었다.”(앨버트 테일러 씨의 고종장례행렬. 1919년)

[뉴스천지=이현정 기자] 특파원 앨버트 테일러(Albert W. Taylor), 군인 프레드 다익스(Fred W. Dykes), 구호활동가 노무라 모토유키(野村基之) 이 세 명의 외국인이 전하는 서울은 과연 어떤 도시일까?

광주시립민속박물관(관장 이병렬)은 서울역사박물관(관장 강홍빈)과 공동주최로 서울-광주 교류전 ‘세 이방인의 서울 회상’을 6일 개최했다.

이번 사진전에서는 세 명의 외국인이 각각 1919년·1947년·1973년에 서울모습을 촬영한 사진 120여 점을 전시했다.

 

▲ 프레드 다익스 씨의 동대문 전차정거장. (1947년)

앨버트 테일러 씨는 1919년 서울에 거주한 UPA(UPI의 전신) 한국 특파원으로, 주로 고종장례 행렬의 분위기와 종로통에 운집한 백성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 외에도 1920년대 말의 다양한 서울 모습을 그의 사진에서 살펴볼 수 있다.

1946년 12월부터 1948년 5월까지 미 7사단 보병으로 서울에서 근무한 프레드 다익스 씨는 유엔군을 환영하는 구호탑과 이승만 지지집회 등 당시의 혼란한 정치상황을 고스란히 사진으로 담아냈다.

 

▲ 노무라 모토유키 씨의 청계천 판자촌. (1973년)

1970년대 초 청계천 일원의 판자촌에서 빈민구제활동을 벌였던 노무라 모토유키 씨는 봉사활동 중 틈틈이 서울시내와 청계천 일대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가 담은 사진 속에는 1970년대 눈부신 경제성장을 경험하던 활기에 찬 도시민들의 모습과 소위 무허가 불량가옥으로 치부되었던 청계천 판자촌 서민들의 모습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 

사진전은 30여 년의 간격으로 서울을 기록하고 있으며,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관심을 끌지 못했던 우리 주변의 변화들을 외국인의 시선으로 전달하고 있다. 전시는 내달 9일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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