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5월 9일 치러지는 조기 대선이 다자 대결 구도로 치닫고 있다. 아직은 5당의 대선후보들이 열심히 뛰고 있다. 후보 간 합종연횡은 가시화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어느 대선주자 한 사람도 압도적인 판세를 이끌지 못하는 형국이다. 전국 평균지지율 1위를 기록중인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30%를 상회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과반수는 턱도 없다. 지지율을 40%까지 끌어올리기도 만만찮을 것 같다. 그 뒤를 뒤쫓고 있는 안희정 안철수 이재명 홍준표 김진태 심상정 유승민 손학규 남경필 후보의 지지율은 20~1% 사이에 머문다. 가정에 불과하지만 문 후보를 제외한 나머지 군소후보들이 똘똘 뭉쳐 과반수에 이를 가능성이 이론적으로는 얼마든지 있다. 문 후보가 성급한 ‘문 대세론’에 절대 안주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런 가운데 야권의 심장부인 호남 표심이 확인되고 있는 부분은 주목해야 한다. 27일 발표된 더불어민주당의 호남지역 경선에서 문재인 전 대표가 60.2%의 득표율로 안희정 충남지사(20.0%)와 이재명 성남시장(19.4%)을 제쳤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도 25∼26일 광주, 전남·북, 제주 경선에서 압승하며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두 후보가 각각 민주당과 국민의당의 최종후보가 될 공산이 커지고 있다. 적폐청산을 주장한 문 전 대표가 대연정을 내세운 안희정 지사를 압도하고 있는 것이나 안 전 대표가 자강론을 앞세우고도 초반 기선제압에 성공한 것은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두 후보는 머리가 차가워야 한다. 우선 문 전 대표의 승리에는 여론조사 방식이 크게 기여했지만 이 여론 조사 방식은 부정확성 혹은 편파성 논란을 잠재우지 못하고 있다. 영국의 브렉시트 투표나 미국 대선을 보더라도 여론 조사 결과는 맹신할 게 못된다. 더욱이 민주당 호남 경선은 호남 유권 전체의 뜻이라기보다는 선거인단 내부의 의사 표현일 뿐이라는 대목은 무시할 수 없다. ‘호남의 사위’임을 내세우는 등 그간 공 들인 결과로 호남 경선에서 주목을 끈 안 전 대표도 계속 연대론을 외면하기만 한다면 문 후보를 추월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차제에 두 후보는 허리 굽혀 우물을 내려다보듯 스스로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혹시라도 대통령 후보로서 국민을 이끌 비전, 자질, 정책 등에 부족함은 없나하고 냉철히 점검해볼 일이다.

머지않아 이합집산 시나리오가 본격화될지도 모른다. 다만 그 평가에 대해 대선에서 국민적 표심으로 판단할 뿐이다. 후보들 혹은 당 대 당 합종연횡을 정치공학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갈등 요소를 치유하며 새 정권을 창출하기 위한 필연으로 볼 것인지는 유권자 판단에 달렸다.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철학을 달리하면서도 집권을 위해 오월동주하는 것을 야합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DJP연합처럼 물과 기름 같은 한 세력과 또 다른 세력이 뭉쳐 새 정권을 만들어낸 예에서 보듯 그것이 정치요, 그것이 현실이라면 어떡할 것인가. 중국 춘추전국시대에도 그랬고, 한반도의 삼국시대에도 그랬다면 어쩔 것인가. 생존을 위해서라면 비난을 무릅쓰고라도 현실적으로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접점을 얼마든지 모색할 수 있는 것이 정치 아니겠는가 말이다. 내각제 전도사 김종인 전 민주당 비대위 대표의 결단도 만만찮은 변수다. 국회의원직까지 헌신짝처럼 던져 버린 후 개헌을 고리로 한 반문 빅텐트 구상 실천에 나선 그에게서 우선 절실함과 진정성 같은 체취가 묻어나는 듯하다.

“재판부는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에 따라 이루어지는 오늘의 선고로 더 이상의 국론분열과 혼란이 종식되기를 바랍니다.…”

10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선고 결정에서 헌재가 밝힌 판결문 내용이다. 헌재가 제시한 방향타는 국민대통합이라는 명제다. 이보다 더 큰 명분과 원칙이 또 있을까. 대통령 파면에 따른 헌정사 초유의 국정 공백과 혼란기에 빚어진 갈등이다. 정치권은 열린 자세로 이를 치유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대통령 한 사람의 개인기에 너무 의존하는 권력구조부터 민주성·시스템위주로 뜯어고쳐야 한다. 그 액션플랜이 첫째, 개헌이요, 둘째, 국회와의 협치·여야연정(聯政)이다. 지지율 높은 문 후보이건 안 후보이건 그 누구라도 승자독식의 오만한 패권주의에 걸려 넘어지면 실패한다. 과도한 자신감과 배타성이 ‘반문 단일화’ 등 대선구도의 지축을 흔드는 반작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열강의 각축 속에서 구한말처럼 긴장감과 위기의식이 높아지고 있는 한반도호(號). 대선후보가 구태의연한 흑백논리와 아집에 매달린다면 이는 어느 후보의 패배를 넘어 국가이익과 역사 발전까지 가로막는 비극의 전주곡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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