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그 배 세월호는 영락없는 ‘악마(惡魔; demon)’였다. 수학여행에 나선 꽃봉오리들을 포함해 300여명의 소중한 목숨을 무참히 앗아갔다. 그때 눈물이 마르도록 울지 않은 사람이 우리 가운데는 없었다. 무심한 산천도 통곡하는 것 같았다. 그런 끔직한 기억들이 지금도 오늘 금방 당한 일처럼 우리 모두의 가슴을 저리게 한다. 그 악마 같은 세월호가 드디어 길고 힘든 작업 끝에 수면 위로 덩그러니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렇다면 이제 세월호의 침몰과 관련돼 우리를 괴롭히던 갖은 억측과 수수께끼들이 속 시원히 풀려 우리 모두에게 다시 마음의 평화가 안겨지려나. 동시에 이런 비극이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을런지. 제발 그랬으면 한다. 

유속이 빠르고 물살이 소용돌이치는 진도의 맹골수도(孟骨水道)는 자자하게 소문난 사나운 물길이다. 그만큼 위험한 뱃길이기도 하다. 역시나 물살 빠르기로 유명한 울돌목 못지않다. 이런 곳에서 세월호는 승객과 화물을 과적(過積)한 채 제주도를 향해 가던 2014년 4월 16일 오전, 갑자기 선체가 기우뚱 하면서 물에 잠기기 시작했다. 외형적으로는 과적으로 인한 침몰인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과적과 같은 위험천만한 불법과 위규(違規)가 태연하게 저질러질 수 있었던 것은 업체와 당국의 내밀하고 고질적인 유착(癒着) 비리와 안전불감증 탓이라는 질타가 빗발쳤다. 뿐만 아니라 영리 목적의 불법 선박 개보수까지도 묵인될 만큼 당국의 해사(海事) 행정이 엉망진창인 것도 신랄하게 비판의 도마에 올랐었다. 어떻든 이렇게 보나 저렇게 보나 사태의 궁극적인 책임은 정부가 떠맡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의 참사 현장은 TV에 의해 경쟁적으로 생중계 됐었다. 그 현장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무간지옥(無間地獄)과 같았다고나 할까. 침수가 시작된 배와 함께 서서히 물밑으로 사라져 가는 승객들의 울부짖음과 황망한 표정들을 바라보면서 국민들의 가슴에 치민 것은 터질 듯한 슬픔뿐이 아니었다. 그것 못지않게 노도(怒濤)처럼 이는 분노 또한 감당하기 어려웠다. 발만 동동 구를 뿐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봐야 하는 심경은 진짜 사람을 돌아버리게 할 것만 같았다. 이 협소한 나라에서 그들은 결코 남일 수가 없다. 하나같이 우리의 부모형제 자매 아들 딸 손자 손녀들과 다름없지 않은가. 꼭 그래서 하는 말이 아니라 참사현장을 지켜보는 우리 모두는 비유컨대 심정적으로 그들과 함께 그 사나운 바다에 덩달아 같이 서서히 가라않으며 질식되는 느낌을 가져야 했다고한들 결코 과장일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 세월호 사태가 우리에게 안긴 것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슬픔과 분노 말고도 너무나 많은 시련과 혼란, 갈등이었다. 기실 그것에 우리가 매몰되어 헤매는 동안 우리의 정치와 국가 사회 운영 시스템은 거의 마비 상태에 이르렀었다. 빗대어 표현하면 세월호가 맹골수도에 잠겨있던 기간, 우리 모두도 세월호와 함께 맹골수도의 바다 밑에 잠겨 꼼짝할 수 없었던 기간을 보낸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세월호의 침몰은 바로 정권의 침몰이었으며 정부의 침몰이었을 뿐만 아니라 결국엔 우리 모두의 침몰로 귀결됐다고나 할까 뭐 그렇다. 그렇지만 필연적으로 유발될 수밖에 없었던 두드러진 현상은 식물 정권, 식물 정부의 대두다. 그것은 정부가 초동 대처부터 허둥대고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미적거린 데서 출발한다. 정부가 불신을 자초한 것이다. 더 말할 것 없이 이렇게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겠다고 장담하던 정부의 진면목인가 하는 의구심을 국민들로 하여금 갖게 했다. 불신 받는 정권과 정부가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 것인가.

더구나 정부 책임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이 사건 발생 초기 인명구조와 사건 수습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7시간 동안 지휘는커녕 국민에 얼굴조차 비치지 않았다. 거기에 조난당한 배에서 최후로 탈출해야 할 선장은 침몰하는 배와 승객을 버려둔 채 홀로 일찍 배를 탈출했다. 인면수심(人面獸心)의 가짜 선장이었다. 이것까지 정부가 비난을 뒤집어쓰기에는 억울하다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결국에 정부로 향할 국민들의 불타는 분노에 기름을 부어 그것을 키워놓은 것만은 틀림없다. 한마디로 세월호 사태는 범국가적이고 국민적인 해결 노력이 전개돼야만 하는 범국가적이고 국민적인 심각한 재난이었다. 그렇기에 정부의 고군분투는 어쩔 수 없었다 하더라도 국민 역시 나름의 도리를 다했어야 한다. 최소한의 국민적 도리는 특정 정권에 대한 자신의 선호와 상관없다. 따라서 우리 모두가 정부의 그 같은 해결 노력에 얼마라도 힘이 되어 주었는가를 생각한다면 자괴감이 앞설 수 있다. 각 정파(政派) 역시 마찬가지다. 어느 정파든 주요 정파라면 사회적으로 ‘누리는 사람들’로서 사회의 고질적인 썩은 비리에 대한 책임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음에도 정략적 책략과 접근으로 정부만을 몰아붙였다. 국가 사회적인 현안마다 따따부따 감 놔라 대추 놔라 하는 사회 제(諸)단체들도 다르지 않았다. 한 술 더 뜨는 정말 엉뚱한 트러블메이커(trouble maker)들도 있었다. 이들은 무슨 연유에서인지 가지가지의 괴담과 억측을 들고 나와 전파시킴으로써 세월호 침몰로 입은 우리의 트라우마(trauma)를 덧나게 했다. 이들 때문에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었으며 마음 편할 날도 없었다. 

군(軍) 잠수함이 세월호 좌현을 받았느니 어쨌느니 하는 괴담이 그중 하나다. 배가 건져 올려져 명백히 근거 없는 주장임이 밝혀졌는데도 그들은 사과는커녕 끝까지 꼬리를 내리려 하지 않았다. 도대체 왜인가. 의도된 도발인가. 아니면 심리학에서 말하는 ‘속성이론(屬性理論; attributive theory)’에서와 같이 그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다른 무슨 심리적 원인이 있는 것인가. 분명한 것은 이 같은 주장과 주장의 제기자들은 과거 광우병 사태와 천안함 폭침을 괴이하게 비틀어 괴담을 퍼뜨렸을 때의 경우와 일관되게 일치된 계통을 이어오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의 말은 ‘아니면 말고’ 식이지만 진짜보다 더 솔깃할 때가 있다. 현혹되기 쉽다. 이래서 이들 때문에 적어도 세월호가 바다 밑에 잠겨있을 동안은 가짜 전문가와 가짜 정보, 가짜기사(fake news)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국민이 냉철해져 이를 철저히 배격할 때 이들과 이들의 주장은 설 자리를 잃는다. 뿐만 아니라 국민이 그 정도로 냉철해지면 탄핵으로 쫓겨나는 가짜 대통령을 뽑거나 가짜 정치인에 속아 그들을 공복으로 뽑는 일도 없을 것이라는 것이 자명해진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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