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학박사

 

생후 6개월이 되면서 아이는 낯가림을 보이기 시작한다. 이는 아이에게 타인을 구별하는 능력이 생겨나고 있음을 의미한다. 즉 나를 늘 보살펴주고 옆에 있는 엄마와 그렇지 않은 다른 어른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울러서 본능적인 두려움의 표현이기도 하다. 엄마는 분명히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지만, 지금 처음 보는 사람은 나를 해칠지 모른다는 불안이 숨어 있다. 실제로 아이는 자기 방어 능력이 전혀 없기 때문에 상대방의 눈에 뜨이지 않게끔 시선을 피하거나 혹은 울음을 터뜨림으로써 자신의 위험한 상황을 엄마에게 알리는 것이다. 아이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도 효율적인 신호인 셈이다. 따라서 부모는 이러한 현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시간이 지나 아이가 더 컸어도 여전히 낯을 많이 가리고 늘 수줍어하는 아이가 있다. 여기에는 부모의 양육 태도도 상당 부분 작용한다. 부모가 아이에게 세상을 위험한 곳으로 인지시키거나(예: “사람들이 너를 잡아갈 수 있어. 집밖에서는 다칠 수 있으니까 항상 조심해야 해” 등), 실제로 아이에게 사건 사고가 날까 봐 지나치게 과잉보호를 하거나, 엄마 자신이 불안해서 아이를 잘 떨어뜨려 놓지 못하는 경우다. 그러다 보면 아이의 활동 반경이 좁아지고, 적극성, 능동성, 자기 주도 등의 성격적 측면이 발전하기 어렵다. 대인관계에서도 제한된 관계를 맺게 되기 쉽다. 또한 낯을 가리는 것이 인사를 잘 하지 않거나 혹은 상대방에게 사회적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처럼 인식될 수 있어서 예의가 없다거나 혹은 사회성이 떨어진다는 식의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낯가림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낯가림의 장점도 분명히 있다. 낯을 가리면서 아이는 동시에 주변을 살피게 된다.

또한 자신의 말과 행동을 자제하기 때문에 신중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다. 낯가림이 있는 아이들은 안전사고를 당할 위험이 줄어든다. 새로운 환경에서 무턱대고 달려가거나 혹은 처음 보는 사람을 따라가는 행동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관찰이 많기 때문에 상대방의 특성이나 성격을 파악하는 능력이 올라갈 수 있다. 게다가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잘 알기에 이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해서 스스로 다양한 시도(예: 이 상황을 빨리 벗어나자, 말보다는 고갯짓으로 반응을 보이자, 다른 생각을 하자, 혼자서 놀자 등)를 하게 된다. 감정 인식 및 처리 능력이 어느 정도 향상이 된다. 그렇지만 심한 낯가림은 아이와 부모가 서로 노력해서 개선시켜 주는 것이 좋다.

부모는 아이의 낯가림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일단 낯가림에 대한 비난은 절대 금물이다. 오히려 아이의 낯가림에 대해서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해 주고, 이 상황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면 더 좋겠다는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아이가 낯가림을 보이는 순간 “마음이 불편해? 그렇구나.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나아질 것이야.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좋은 사람들이야” 등의 말을 해 주면서 이해, 공감, 안심시키기 등을 해준다. 그러면서 엄마가 다른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혹은 편안한 표정으로 즐거운 분위기에서 인사를 건네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준다. 이때 아이에게 너도 엄마를 따라 할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 비록 오늘은 아이가 따라 하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엄마를 따라 하게끔 모델링을 보여주는 의미가 더욱 크다. 아이는 나중에 지연된 모방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습 이론에 의하면 ‘보고 배우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기에 부모의 언행 하나하나가 아이에게 큰 영향을 준다는 점을 기억한다. 좋아하는 친구들이 적극적으로 인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도 지켜보게끔 하되 절대로 그들과 비교하지 않는다. 아이의 자존감이 떨어지거나 자기비하에 빠지지 않게끔 만들기 위함이다.

한편, 아이의 낯가림이 매우 심해서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거나, 불안에 떨거나, 공포에 휩싸이는 것으로 판단되면, 엄마는 반드시 개입해서 아이를 달래고 안심시켜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낯가림을 줄여나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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