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느닷없는 비행기 소음에 시민들은 전쟁이 터진 줄 알고 놀랐다. 드디어 올 것이 왔나 했을지 모른다. 시민들을 놀라게 한 것은 우리 공군의 에어쇼 비행 팀인 정예 ‘블랙 이글스’의 연습 비행 소음이었다. 서울 일부 지역에서 펼쳐질 연습 비행에 대한 사전 공지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던 탓에 일어난 해프닝이었다. 비행폭음에 놀란 시민들은 황급히 실외로 뛰쳐나와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했단다. 어떤 초등학교는 수업을 중단하기도 했었다. 다행히 굉음을 내며 하늘을 누비는 비행체들은 폭격기나 전투기가 아닌 우리의 사랑을 흠뻑 받아오고 있는 ‘블랙 이글스’ 팀인 것을 식별해냄으로써 놀란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이는 잠깐 동안의 소동이었지만 자나 깨나 우리 국민들의 가슴 속에 꿈틀거리는 고민거리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데는 추호의 부족함도 없었다. 

더 말할 것 없이 그것은 안보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다. 우리의 일상이 겉으로는 태연해보여도 언제나 우리의 마음속 깊숙이에 잠재해 있는 것은 안보 불안이며 안보 걱정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는 북에 의한 피침(被侵)의 아픈 역사적 경험과 그 후로도 중단되지 않는 그들의 도발 책동에서 기인한다. 더구나 블랙 이글스의 비행이 그 잠재된 불안을 돌발적으로 일깨웠던 것은 마침 북에 의한 또 한 번의 도발 책동이 초읽기에 들어갔던 상황과 연습 비행이 겹쳤기 때문이다. 바로 서울 시민이 크게 놀란 그날 4월 25일은 북한군 창설 기념일로 북이 핵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발사 실험을 할 가능성이 내다보이는 날이었다. 이래서 이 날을 주목해 북의 핵시설에 대한 선제타격이나 무력응징을 배제하지 않은 채 미국의 가공할 전략자산들이 한반도로 몰려들고 있었다.  

핵 항모 칼빈슨 호와 항모 전단을 이루는 핵잠함 이지스구축함 순양함 등이 주축을 이루었지만 배후에는 일본과 태평양 괌 기지의 무인정찰기와 F22 및 F35 스텔스 전폭기, B2 B1B B52 등의 전략 폭격기 등도 대기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 만약 북이 핵이나 미사일 도발을 했다면 이 무시무시한 전략자산들이 절대로 이를 방관만 하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 아닌가. 무슨 일이 나도 났을 것이며 저들의 보복에 의해 우리 땅에도 화약 냄새가 진동했을지 모른다. 그것을 웅변하는 것은 북에 대해 연거푸 이루어진 중국의 이례적인 경고다. 그들은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교감에 따른 것으로 보이지만 북에 도발하지 말 것을 여러 차례 강력히 경고했었다. 이런 경고를 중국이 북에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미국에 의한 무력응징의 낌새를 포착했거나 트럼프로부터 귀띔 받았기 때문이라고 짐작하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들은 심지어 관영언론을 내세워 한국군과 미군이 38선을 넘지 않는 한 북 핵시설에 대해 외과수술식 정밀타격을 가하는 것은 용인할 수 있음을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었다. 입맛이 다소 개운치 않은 점을 제쳐둔다면 중국은 많이 변한 듯 보인다. 1950년 한국전쟁 때도 그들은 인민해방군의 참전 구실을 38선을 넘는 한국군과 미군의 북진(北進)에서 찾았었다. 그때도 그들은 한국군과 미군이 38선을 넘어 북진하면 인민해방군이 참전할 것이라고 공언했었으며 실제로 이를 실행에 옮겼다. 지금에 와서도 그때와 비슷한 얘기를 하는 것으로 미루어 중국은 많이 변한 듯 보이나 그들 속마음까지 변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그들은 아직 북한을 그들의 영향권과 손아귀로부터 내어줄 생각이 없음을 여실히 드러내었다.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이 냉엄한 현실을 우리는 직시하고 대비책을 강구하고 있어야만 한다. 

한편 북은 예견되던 핵이나 미사일 도발 대신 원산 일대에서 300여문의 각종 포를 동원한 재래식 화력시범을 보이는 저강도(低强度) 도발로 위기를 피해갔다. 저들은 그 사이 항모를 수장시키겠다느니 뭐니 하고 미국을 향해 온갖 공갈 협박을 퍼부어왔지만 내심으론 많이 떨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더구나 중국과의 국경엔 15만~30만의 중국군이 장병들의 휴가 및 외박 외출을 금지시킨 채 경계태세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서해 발해만에서도 그들의 해공군 군사훈련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와의 국경지대에는 러시아군 병력과 장비가 이동해와 대기하고 있었다. 이들의 군사적 기동은 한반도에 전략자산들을 대거 투입하고 있는 미군의 그것에 대응하는 것이 아닐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북에 꼭 우호적이거나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북은 미군 중국군 러시아군 등 열강의 강군에 의해 사방에서 포위당한 형국에 처했던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이런 형편에 저들이 아무리 무모한 집단이라 해도 핵도발이나 미사일 도발에 나설 엄두는 낼 수 없었을 것이 자명하다. 그렇다고 저들이 6차 핵실험이나 탄도미사일 발사와 같은 도발 책동을 아주 포기했다고 볼 수는 없다. 따라서 우리의 조마조마한 마음도 여전하다. 바로 이렇게 조마조마한 마음들을 ‘블랙 이글스’의 비행 소음이 건드려 터뜨렸다고 볼 수 있다.

국민의 안보 불안 안보 걱정은 현재와 같은 일촉즉발의 긴장 상태가 생길 때 이를 우리 자체의 힘만으로 제어하거나 풀거나 관리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욱 심각하다. 가령 지금과 같이 한반도 주변에 몰려든 강대국들의 군대를 우리 맘대로 불러들이거나 필요에 따라 멀리 쫓아 낼 수 없지 않은가. 그들은 그들 스스로의 전략적 셈법에 의해 행동한다. 우리 맘대로 오라 하거나 가라 할 수 없다. 동맹인 미군의 움직임도 그들의 전략적 이익이 우리의 것과 부합하지 않으면 따로 움직일 수 있다. 이럴 때 우리를 제쳐두고 벌어지는 강대국들끼리의 어깨너머 흥정 이른바 세칭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이 일어난다. 우리는 자칫 그들 ‘흥정의 열차’가 머물러 가는 간이역도 못될 수 있다. 그냥 지나쳐야 된다거나 지나쳐가고 싶다면 지나쳐 간다. 이런 꼴을 당하지 않으려면 우리 스스로 강해지고 부국이 되고 분열되지 않고 얕잡히지 않는 안보 역량, 바람직하기로는 압도적인 안보 역량을 갖추는 길 뿐이다. 그러려면 갈 길이 얼마나 먼가. 이런 때에 대선에서의 승리를 예감한 어느 대선 후보가 자신은 ‘요즘 행복하다’고 했다던가. 혼자만 행복하면 되는가. ‘블랙 이글스’의 비행에도 놀라는 국민의 마음을 그는 아는가. 승리가 예감된다면 오히려 대통령직에 대한 걱정과 중압감으로 밤잠을 설쳐야 되지 않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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