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지일보(뉴스천지)

김동희 건축가
채울 수 있다는 것은 비어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비어있는 것을 일컬어 공간이라고 한다.

그 공간이 어떤 것들로 채워질지는 모르지만, 비어있기 때문에 다양한 가능성을 갖는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머리가 생각으로 가득 차 있을 때는 쉬이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별 생각 없이 시작한 일이 더 쉽게 풀리는 경우가 많다.

공간은 무색무취의 순수함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성격이 부여된다. 반대로 공간이 만들어질 때는 사용 목적과 대상의 특성을 고려해 계획된다. 병원은 병원다운 편안함으로 채워지고 학교는 배움에 적합한 환경으로 만들어져왔을 것이다.

하지만 공간을 규정지을 수 있는 것은 단지 그 공간의 목적만을 위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공간을 비어있는 용기의 속이라고 본다면 용기 안에 무엇이 담겨있는지도 중요하지만 용기의 형태나 규모, 의미 또한 충분한 관심이 될 수 있다.

공간을 에워싼 용기는 건축에서 건축물의 형태를 뜻한다. 공간의 성격에 따라 넓거나 좁게, 높거나 낮게 계획되기도 한다.

우리가 머무를 공간은 참으로 다양한 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 굽어졌거나 뾰족하고 기울어진 공간 또한 만들어질 수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형태인 사각형에 담겨져 왔기 때문에 다른 것은 없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마치 과자반죽을 찍어낼 때 세모난 틀을 사용하면 세모난 과자가, 별모양 틀을 사용하면 별모양 과자가 나오듯 원하는 틀을 그려내는 것은 재미있는 일일 것이다.

마치 어린왕자에 나오는 세 개의 구멍이 뚫린 상자 안에 원하는 어린 양을 둔 것처럼 다양한 상상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이 공간이다.

내가 좋아했던 공간은 어떤 형상이며 어떤 곳이었을까? 좁은 창이나 문틈 사이로 키가 길쭉한 빛이 구석까지 밀고 들어와서 그 존재감이 겨우 인지되지만 그것이 꼭 희망처럼 느껴져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때로는 너무 좁은 틈을 타고 들어오는 빛이 회절 되어 그 끄트머리에 무지개를 남긴다.

마치 오래전부터 빛이 색을 품고 있었던 것을 알아차리는 되는 순간, 공간을 채우는 빛이 색을 통해 공간과 우리를 변화시킬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마치 그림을 정상적으로 그리지 않아도 재미있는 그림이라고 느끼는 순간, 그림은 스스로 신이 나서 자기 나름의 그림으로 자기영역을 만드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낯선 그림도 빛을 발할지도 모른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