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우리 모두에게 ‘잔인한 계절’이 될 것 같던 4월도 그럭저럭 넘겼다. 김정은은 잘 준비된 핵 버튼을 누르지 않았고, 트럼프 역시 군사적 옵션을 자제했다. 결국 두 미치광이의 대결은 싱겁게 끝난 셈이다. 아무래도 굳이 심판을 내린다면 김정은이 아직 ‘배짱’이 성숙되지 못했고 슬그머니 꼬리를 내림으로써 한반도의 결투는 잽을 날려보는 선에서 막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의 축적된 준비상태들을 볼 때 과연 2017년을 무난하게 넘길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지난 4월 말로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100일이 지나면서 북핵 문제를 둘러싼 미국과 북한의 ‘기싸움’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양상이다.

트럼프 정부가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최대의 압박과 관여’로 불리는 새로운 대북정책을 발표했지만, 북한은 이에 귀 기울이기는커녕 즉각 29일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며 해볼 테면 해 보자는 식으로 응수했다. 트럼프 정부가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과 댄 코츠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의 합동성명을 통해 발표한 새 대북정책은 중국을 움직여 원유 차단 등 경제제재를 통해 북한을 전방위로 압박하는 ‘채찍’과 북한의 비핵화 의지 확인 시 협상할 수 있다는 ‘당근’을 포괄하고 있다. 미국이 ‘당근’까지 옵션에 포함한 것은 트럼프 정권 등장 이후 처음 듣는 것 같다.

이와 같은 미국의 대북정책은 틸러슨 국무장관이 4월 28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안전보장이사회 북핵 장관급회의를 주재하며 내놓은 대안제시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확인된다. 틸러슨 국무장관은 중국 기업·금융기관 등을 겨냥한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의 즉각 이행 의지를 드러내는 한편 유엔 회원국들이 북한과의 외교관계를 격하해야 한다고 촉구하며 북한에 대한 전방위 압박전략을 촉구했다.

그러나 동시에 “미국의 목표는 북한의 ‘레짐 체인지(정권교체)’가 아니다”면서 미국이 1995년 이후로 13억 달러(약 1조 5천억원)을 북한에 원조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북한이 핵·미사일 프로그램의 해체를 시작하면 다시 그런 도움을 줄 수도 있다”고 말하며 손을 내미는 모습도 보였다.

21세기 들어와 미국이 ‘당근’을 제시하는 일은 처음인 것 같다. 더불어 “모든 옵션을 검토하고 있다”는 등 대북 선제타격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은 미국 측에서 더는 나오지 않는 분위기다. 그러나 북한은 미국의 새 대북정책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김정은식 고유브랜드인 ‘마이웨이’식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북한은 4월 29일 새벽 탄도미사일 1발을 발사했는데 이달 들어서만 3번째 발사다. 물론 세 번 모두 실패였다. 29일 발사는 한반도를 향해 접근 중인 미국의 항공모함 칼빈슨호를 겨냥한 무력시위로 여겨지지만, 미국의 압박에 굴하지 않겠다는 의지로도 읽힌다.

동시에 북한은 한국과 미국 등 국제사회가 원하는 ‘비핵화’ 대화에는 나서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의 김인룡 차석대사는 28일 AP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핵무기를 “군사 위협과 제재로 제거하려는 것은 허황된 꿈”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북한의 핵무기는 “정치적 흥정이나 경제적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면서 “우리의 핵무기 포기를 논의하는 어떤 형태의 대화에도 참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북한은 비슷한 맥락에서 중국이 제안한 비핵화 프로세스와 북미 평화협정 협상의 병행 추진(쌍궤병행, 雙軌竝行)에 대해서도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 철회가 먼저(김인룡 차석대사 17일 발언)”라며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 한미는 중국의 협조를 끌어내 원유수출 차단 등의 카드로 북한을 압박, 비핵화 대화에 나오도록 하겠다는 구상이지만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특히 북한은 핵·미사일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몸값을 높인 뒤 미국에 대해 ‘비핵화 대화’가 아닌 ‘핵 군축협상’을 하자고 나설 가능성도 있다. 이날 이뤄진 탄도미사일 발사도 새 미사일 개발의 하나로 여겨진다. 미국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이날 발사한 미사일이 신형 스커드 계열의 중거리 대함 탄도미사일인 KN-17일 것으로 추정했다. 다만, 북한이 중국을 크게 자극할 수 있는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는 당분간 자제하고 상황을 살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많다. 이에 따라 당분간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압박에 북한은 저강도 무력시위로 대응하는 팽팽한 기싸움이 계속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칼빈슨호가 돌아가고 제재의 칼끝이 잠시 예봉을 돌리는 순간에 김정은은 다시 6차 핵실험 버튼을 누르게 될 것이다. 비공식 핵보유국이 그의 ‘마지막 꿈’이기 때문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