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의학교(야학교)’ 교장 나영철 한의사. ⓒ천지일보(뉴스천지)

배움터 ‘사랑의학교(야학교)’ 교장 나영철 한의사를 만나다

“고등학생 시절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다”
대학생 형·누나들과 함께 봉사 “생각의 폭 넓어져”
희생·숭고한 삶 사신 어르신들 돕는 야학봉사 보람
학교는 인성교육의 장… 불행한 청소년에게 희망을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배움의 기회를 놓친 이들이 우리 주변에는 의외로 많다. 집안의 맏딸로 태어나 부모님을 도와 동생들을 보듬고 살피느라 초등학교 이후 공부는 엄두도 내지 못한 어르신들. 가난한 집안의 가장으로 식구를 먹여 살려야 했던 이들이 교복을 입고 책을 읽는 평범한 학생의 꿈을 접어야 했다.

수십년의 세월이 흘러, 지워질 만도 하건만 ‘배움의 꿈’은 점점 더 짙어진다. 가족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며 배움의 한(恨)을 평생 가슴에 담고 사는 이들의 꿈을 돕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야간학교(야학) 봉사자들이다.

20여년간 야학 교사(교장)로 이웃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넨 서울 강남 황금사과한의원 나영철 원장을 만나 사랑의학교(야학교)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랑의학교는 다시금 교육의 기회를 얻고 배움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는 곳이자, 새로운 삶과 희망을 되찾는 배움터다.

◆고2 봉사를 배우다… 친구에게 건넨 도움의 손길

나 원장이 봉사를 처음 경험한 시절은 고등학교 때이다. 그는 “학생시절 사람들과 어울리고 부대끼는 것을 좋아했다. 고등학교 급우나 동창들이 일이 생기면 나도 모르게 돕던 기억이 난다. 실장(반장)을 했는데 그 영향이 컸다”며 “2학년 시절부터 봉사하는 곳을 스스로 찾아다녔다. 친구들은 알지 못했다. 지역 관공서 등에 문의해서 갔다. 그곳에서 봉사하는 대학생 형과 누나들을 만나 많은 대화 속에서 생각이 넓어졌다”고 학생 시절의 추억을 더듬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1980년 고등학교 3년 급우를 돕던 것이다. 박주정이란 친구가 공부하던 중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산꼭대기에 있던 학교에서 차 타는 곳까지 약 1㎞, 선생님의 허락을 맡고 그 친구를 업고 정류장에 도착 후 버스를 타고 병원까지 갔다. 병원 진찰 결과에 충격을 받았다. ‘영양실조’로 쓰러졌다는 것이다.

부산에 부모님이 계셨던 친구였다. 집안의 사정을 알고 싶어 부산에 내려갔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친구는 공사장 숙소에서 자고, 학교에 다녔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알았다. 집안에서 생활비를 보태지 못해 공사장 야간 경비를 하면서, 학교생활을 했던 친구의 사정을 알고 마음이 너무 아팠던 나 원장은 이후 친구와 같이 지냈다.

그 친구가 잘 돼서 현재는 전라남도 교육청에서 공무원을 하고 있다. 남다른 봉사 활동으로 대한민국 공무원상까지 받고, 지금도 많은 청소년과 불우한 이웃을 돕고 있다는 친구의 소식을 들은 나 원장은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배움의 길에 들어선 늦깎이 학생과의 만남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 원장은 대전대학교 한의학과에 입학한다. 대학 시절에도 꾸준히 봉사 일을 찾아다녔다. 대학시절 군복무를 다 마치고 대전대학교(한방 병리학 전공) 석·박사 과정을 이수하고 안산에 둥지를 틀었다. ‘나영철 한의원’을 개원한다. 한의사의 실력뿐 아니라 봉사심을 인정받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안산시 한의사 회장, 대전대학교(한의과대학, 물리치료학과) 외래교수 등 바쁜 시간도 보냈다.

1996년 ‘안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안사모)’ 회원으로 활동하던 나 원장은 안사모 회원들의 뜻을 모아 ‘늘푸른학교’라는 야학을 시작한다. 2년제 중학교 형식을 갖추고 고입 검정고시 과정을 가르치는 야학이었다.

이후 2011년 몇 명의 교사 봉사자들과 마음을 모아 지금의 ‘사랑의학교(야학교)’를 개설한다. 사랑의학교는 나영철 원장 외 수명의 교사가 봉사하고 있다. 대표교사가 상주하고 몇 분의 현직 교사들이 야학 봉사자로 나서고 있다. 중학교 1년과 고등학교 1년 총 2학년 교육과정으로 운영되고 있다. 중학교 성인반에 30여명, 고등반 18명, 청소년반 12명의 학생이 다닌다. 단기 한글반도 운영한다.

예전에서 야학을 젊은 사람들이 다녔다. 가정과 직장 생활로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한 10~20대 청소년이 주로 야학에서 공부했다. 현재는 50~70대 늦은 나이에 배움의 길로 들어선 늦깎이 학생들이 70%를 차지한다. 젊은 층도 개인의 사정으로 검정고시를 치러 고등학교 졸업장을 얻고자 찾아온다. 사랑의학교는 정부나 외부로부터 지원금을 한 푼 받지 않고 나영철 원장의 사비로 운영되고 있다. 교사들도 무료 자원봉사자다. 교사들은 야학이 ‘힐링의 공간’이라고 한결같이 말한다.

 

◆사랑의 배움터 대안학교를 꿈꾸다

학업의 기회를 주는 야학은 지금도 전국에 100여곳이 남아있다. 나 원장은 월·수·금 운영하는 사랑의학교에서 주 1~2회 교사로 뛰고 있다. 야학 봉사자들은 자신들의 작은 도움으로 검정고시를 봤던 학생들이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을 때의 벅찬 감동을 잊지 못한다. 해마다 하는 졸업식은 눈물바다가 된다.

나 원장은 늦깎이 학생들을 존경하는 마음을 잊지 않았다. 그는 “본인의 의지가 아니라 환경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희생해야 하는, 정말 숭고한 사람들”이라며 “잘된 자식들이 많은데도 ‘남들에게 배우지 못한 것’을 감추고 고통스러워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이러한 사연에도 어르신들의 배우고자 하는 열정은 교사들에게 늘 벅찬 감동을 선사한다”고 말했다.

나 원장은 “학교는 인성교육을 하는 곳”이라며 “기본교육뿐 아니라 학생들에게 인생의 가치관, 사고방식, 행동하는 양식, 말하는 표현 등을 가르치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끝으로 청소년들을 향한 애틋한 마음을 표현하며 “요즘 청소년들이 불행하다. 흙을 밟고 자연을 알아야 한다. 하늘의 별을 보고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며 “힘들어하는 청소년들을 위해 서울 근교에 또 다른 교육시스템을 갖춘 인증받은 대안학교를 만들고 싶다. 누구에게나 개방된 힐링의 공간, 사랑의 배움터를 준비하는 데 정성을 다하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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