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해안 두른 ‘천리포 수목원’
이국적인 허브농장 ‘팜카밀레’

[천지일보=이지영 기자] 바다와 숲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다는 태안 탐방길에 올랐다. 연휴로 엄청난 차들 속에서 브레이크만 신나게 밟아 두 시간 거리를 두 배로 늘려 도착한 충남 태안.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니 일행이 추천한 3000원짜리 시장 국수 한 그릇부터 먹기로 했다. 값에서 우선 놀랐는데, 국수에 들어간 싱싱한 조개의 양이 조금 과장하면 ‘조개반 국수반’이다.

모든 상 위에 먹고쌓인 조개껍데기가 작은 패총을 이뤘다. 따끈하고 진한 국물 맛에 수제비 같이 통통하고 쫄깃한 면발. 점수는 별점 다섯 개에 4개쯤은 아깝지 않다. 맛과 음식에 쏟은 태안 시장 인심 덕분인지 정체 길에 다운된 몸과 마음이 회복됐다. 역시 여행의 반은 음식이다.

일행이 천리포수목원에 도착한 시간은 거의 정오가 지나서였다. 이곳을 다녀간 적이 있는 일행은 새벽 일찍 방문하지 못한 걸 못내 아쉬워했다. 서해바다를 끼고 있는 이곳의 지리적 특성상 새벽 일찍 물안개가 뒤덮은 수목원의 정경이 기가 막히게 좋았다는 것이다. 일행 기자의 소개대로 새벽녘에 와보면 완전히 딴 세상이 펼쳐질 거란 기대감이 들었다.

태안해안가의 운무가 수목원을 덮으면 가로등 불빛과 어우러진 습기 먹은 식물들의 싱그러움이며, 또 그렇게 거닐며 먹는 커피 맛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는 일행의 귀띔.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 산티아고가 이른 새벽 바다에 나가기 전 연유깡통에 받아 마신 커피 맛이 떠오른다. 헤밍웨이가 표현한 대로 최고의 그런 커피 맛이 상상이 간다.

▲ 천리포 수목원에 민병갈 기념관이 보이고 앞 연못가에 황토돛단배가 떠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DB

하지만 이곳은 새벽이 아니라도 볼거리가 많고 의미를 가진 식물원이다. 서해안 태안반도 만리포 해변 옆에 자리한 ‘바다 옆 수목원’이라는 것도 특이점이고 우리나라 최초 사립수목원이란 점도 그렇다. 특히 수목원 중앙자리에 위치한 토담느낌의 기념관은 천리포수목원을 세운 故민병갈 설립자(Carl Ferris Miller)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그를 소개하는 문구는 “아름다운 삶의 향기를 남긴 푸른 눈의 한국인 민병갈”이었다. 미국 펜실베니아주에서 태어난 민병갈 설립자는 외국인이지만 자신의 사재를 털어 당시 충남 태안의 헐벗은 산림을 세계적인 수목원으로 바꿔놓았다. 식물 전문가도 아닌 그는 결혼도 하지 않고 오로지 식물에 대한 열정과 노력, 헌신을 기울이며 수목원 조성 사업에 자신의 삶을 바쳤다. 그의 그런 삶을 기리기 위해 타계 후 2005년 그는 ‘숲의 명예전당’ 에 헌정됐다. 이는 박정희 전 대통령, 현신규 박사, 임종국 독립가, 김이만 나무할아버지에 이어 5번째다.

특히 이곳은 지리적 위치상 중부지역이면서 남부식물이 월동할 수 있는 자연조건을 타고나 국내에서 가장 많은 15600여 종류의 식물들을 보유하고 있다. 그래서 천리포수목원은 ‘서해안의 푸른 보석’이라고도 불려지기도 한다. 조성된 정원도 암석원, 동백나무원, 수국원, 습지원, 모란원, 호랑가시나무원 등 식물군에 따라 느낌이 다양했다.

서해 바다를 멀리서 조망할 수 있는 해안산책 구간도 있었는데, 동해와 남해와는 또 다른 바다였다. 이곳은 벚꽃이 아직 채 지지 않아 해안가 벚나무에도 꽃송이들이 많이 피어있었는데, 서해바다와 꽃은 꽤 잘 어울렸다.

▲ 팜카밀레에 피어있는 튤립. ⓒ천지일보(뉴스천지)DB

더 늦기 전에 다음 예정지인 ‘팜카밀레’ 식물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천리포 식물원과 자동차로 약 20분 떨어져 위치한 곳인데 이름에서부터 이국적인 냄새가 난다.

도착해 들어서자마자 정원의 아기자기함이 눈에 들어왔다. 조형물들이 많았는데 어린왕자가 특히 눈에 들어오는 것을 보니, 아마 동심을 찾는 정원이라는 의미를 담은 것 같다. 늦은 오후라 햇볕도 잦아들고 바람도 선선해져 더 외국인 듯 외국 아닌 이곳.

▲  ⓒ천지일보(뉴스천지)

정원 들판 저 끝에 큰 풍차가 있었는데 풍차 꼭대기는 전망대로 전체 농원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일행은 조형물인줄 알고 지나쳐버려 아쉬움이 남았다. 저쪽에서 자꾸 기괴한 동물 소리가 들려서 가보니 당나귀와 염소를 가둬놓은 우리가 보였다.

당나귀 두 마리 중 한 마리가 유독 그로테스크한 울음소리를 낸다 하였더니, 이유인즉슨 관광객이 주는 먹이를 등치 큰 옆 당나귀에게 자꾸 빼앗겨서이다. 한 마리가 먹이를 독식하는데 자기는 빼앗을 수 없으니 그 원통함이 오죽했을까. 당나귀의 울음소리가 농장 전체가 들썩이게 했다. 그 배경을 알게 되니 시끄럽다 울지 말라 할 수도 없는 노릇.

반면 옆 염소 우리에는 붉은색 흙 위에 하얀 아기 염소가 바위 그늘 아래 평온히 쉬고 있었다. 동물 종류는 이 외에도 많았다. 연못 하나를 통째로 쓰는 한 쌍의 오리도 보이고 유독 새끼를 많이 낳아 바글거리는 토끼우리도 있었다. 꽃이며 동물이며 이곳의 모든 것들이 농원 주인의 보호 아래 아늑하고 평온하게 자라가고 있는 것 같았다.

바람에 스치는 나뭇잎들이 늦은 오후 햇살과 함께 반짝이는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하다. 나무들이 시원하게 제 모습대로 자라 있었는데, 가지가 이리저리 잘린 도심의 가로수에 비한다면 행복한 나무구나 싶다. 돌아와서 보니 무엇보다 사진이 아주 잘 나왔다. 실물보다 사진발이 더 좋은 자연은 드문데 말이다.

▲ 팜카밀레 농원에 사는 새끼염소. ⓒ천지일보(뉴스천지)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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