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숙 사무처장이 고려인문화센터 너머에 마련된 전시관에서 고려인 역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올해로 강제이주 80주년
대다수 독립운동가 후손인데
고국에 와서도 이방인 취급

연해주서 사회적기업하다
고려인 접한 후 국내 돌아와
2011년부터 한글야학 시작

지원 사각지대 국내 고려인
“고려인 국내 체류 문제
고려인특별법 개정 노력”

[천지일보=박수란 기자] 일제치하 당시 임시정부가 처음으로 세워진 곳 연해주. 우리 민족은 1864년부터 이곳으로 이주했다. 이들이 고려인 1세대다. 그 후 일제시대 때 독립운동을 위해 건너간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삼았던 곳이 됐다. 고려인의 상당수가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다.

고려인은 1937년 옛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했다. 올해로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이 됐다. 고려인 후손들은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고 힘들게 살아오다 ‘잘사는 할아버지의 나라’ 한국으로 왔지만, 여기서도 이방인 취급을 받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들을 위한 지원책도 거의 없다.

시민단체들은 올해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이 되는 만큼, 이 같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 가운데 ‘고려인 타운’이라 할 정도로 고려인이 많이 사는 안산의 땟골 지역에 있는 고려인문화센터 ‘너머’의 김영숙 사무처장을 만났다. 현재 한국에 거주하는 고려인은 4만여명으로 추정된다. 이중 1만 2000명이 안산지역에 살고 있다.

김영숙 사무처장은 “고려인들은 우리 민족이에요. 한국말만 못하는 것뿐이지 우리 동포에요. 하지만 이들에 대한 정부의 지원책은 너무나 미미해요”라고 말했다.

조국을 그리워했던 할아버지, 할머니를 따라 한국에 온 고려인 3, 4세들은 한국말을 거의 할 줄 모른다. 가장 시급한 것이 한국말을 배우는 것이다.

피부색, 생긴 모습은 똑같지만 말을 할 줄 모르다보니 외국인노동자쯤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너머’는 고려인을 대상으로 한글야학을 운영하고 보육, 의료, 임금체불 등의 각종 민원상담을 담당하는 단체다.

김영숙 사무처장은 “수년 전에 연해주에서 콩, 된장을 만드는 사회적기업을 운영했어요. 이때 자연스레 고려인들을 접하게 됐죠. 그러다 다시 한국에 들어오게 됐고 한국에 거주하는 고려인들이 말이 서툴러 어려움을 많이 겪는 것을 보고 2011년 안산에서 한글야학을 시작하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고려인들은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공장 등에서 일을 하고도 작업복 차림으로 와서 밤 10시에 한글을 배우기 위해 야학당에 나온다고 했다.

말이 안 통하는 언어 문제뿐만이 아니다. 김 사무처장은 비자 문제도 하루빨리 해결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려인이 재외동포로 인정된 것은 1992년 재외동포법이 제정되면서다. 하지만 재외동포법 시행령에 따라 고려인 3세까지만 동포로 인정되며 고려인 4세는 재외동포비자(F4)를 받을 수 없다. 고려인 4세는 부모를 따라 동반비자로 입국해 살고 있지만 성인이 되면 국내에 체류할 수 없게 된다.

김 사무처장은 “고려인 3세가 F4비자를 받아 한국에 들어오면 전문직에만 취업하도록 하는 등 제약이 많다. 그래서 돈을 벌기 위해 방문취업비자(H2)로 들어오면 체류기간(최장 4년 10개월)이 제한되는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고려인 4세는 이마저도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데다, 성인이 되면 국내에서 추방당하게 된다. 그나마 대학을 가면 유학비자로 좀 더 한국에 머물 수 있지만, 대학 진학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처럼 고려인 4세 청소년은 안산에만 400여명이 있으며 전국적으로는 1000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 사무처장은 “재외동포법 개정이 어렵다면 고려인에게 영주권 기준이라도 완화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에 대한 보육지원도 전무하다. 고려인은 우리나라 국적이 아니기 때문에 다문화가정에 지원되는 혜택만큼도 받지 못한다.

때문에 고려인특별법을 개정해 보육지원 등의 정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시민단체의 움직임들이 일고 있다.

김 사무처장은 “지원근거를 마련해야 됩니다. 고려인특별법은 1999년에 만들어졌는데 이는 해외에 있는 고려인들을 위한 지원이고 한국에 거주하는 고려인들에 대한 지원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지난달 ‘너머’를 비롯해 관련 인사들과 함께 ‘고려인 강제이주 80년 국민위원회’가 출범됐다. 이 단체는 앞으로 고려인특별법(고려인 동포 합법적 체류자격 취득 및 정착 지원을 위한 특별법) 개정 등에 나설 계획이다. 이를 위해 ‘고려인특별법 개정 국민 캠페인’과 ‘고려인 역사 알기 국민 캠페인’ 등을 펼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이달에는 너머와 동북아평화연대 등 여러 단체들이 모여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 ‘기억과 동행 위원회’ 출범을 알리며 고려인 역사 바로알기 운동과 고려인특별법 개정, 의료, 교육 등 다문화수준의 지원과 정착지원 등의 활동을 할 방침이다.

그는 “오히려 제가 고려인들에게 많이 배웁니다. 고려인들이 경제적으론 굉장히 어렵지만, 마치 70~80년대 때와 같이 우리가 잊고 있었던 가족공동체의 정서와 따뜻한 정을 느낍니다”라고 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