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힘든 일이지만 오늘은 북한에 대한 체제진단을 좀 해보고자 한다. 좀 오래된 일이지만 북한의 사회주의는 소련군의 북한 진주로 이식됐다. 북한의 소비에트화-이것은 러시아군의 북한 진주의 기본 목적이었다. 김일성이 북한의 지도자로 선택된 것도 그가 소련군 대위 출신으로 당시 소련 점령군의 말을 가장 잘 들었기 때문이었다. 기독교인이며 민족주의자인 조만식 선생은 소련군의 점령정치에 저항하다 맥없이 주저앉았다. 역사에 가정은 무의미하지만 당시 조만식 선생이 소련군과 타협하면서 소비에트화 전략을 지혜롭게 발휘했더라면 오늘의 김씨 왕조 72년은 없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최근 중국이 미국과 협력해 대북 압박을 강화하는 가운데 북한 매체가 사회주의를 김씨 일가와 동일시하며 연일 ‘사회주의 수호’를 강조하고 있어 눈길이 쏠린다. 북한 노동신문은 5월 24일 ‘사랑하노라 우리의 사회주의’라는 제목의 정론에서 “사회주의는 수령님(김일성) 손길 아래 인민이 안긴 첫 요람, 첫 집이었다”라며 “사회주의를 세워주신 수령님 품에서 인민은 비로소 행복이란 말을 알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신문은 김정일에 대해서는 “사회주의 우리 집의 더 큰 행복을 위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혹한 속의 야전 열차에 계셨다”며 사회주의를 위한 ‘헌신’을 부각했다.

계속하여 노동신문은 또 “사회주의와 끝까지 운명을 같이하리라, 이는 본질에 있어서 ‘원수님(김정은)과 끝까지 운명을 같이하리라’이다”라며 사회주의와 김정은을 동일시했다. 그러면서 “사회주의가 없으면 우리도 없다”며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우리의 사회주의를 몸과 맘 다 바쳐 빛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신문은 “오늘의 정세는 준엄하다. 우리를 도와주겠다는 나라도 없고, 우리가 잘살기를 바라는 나라도 없다”며 “우리가 살아갈 길, 승리하는 길은 오직 자력자강의 한 길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한때 ‘혈맹’이었던 중국마저 미국과 협력해 대북 압박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대외 정세를 의식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에 앞서 노동신문은 23일에도 ‘주체혁명의 새 시대의 요구에 맞게 혁명전통 교양을 더욱 강화하자’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수령님의 혁명역사, 장군님(김정일)의 혁명역사는 곧 사회주의 조선의 역사이고 우리가 가야 할 진로”라며 사회주의를 치켜세웠다. 신문은 이날 ‘사상을 양보하면 사회주의를 지킬 수 없다’라는 제목의 논설에서는 “사회주의 나라들이 사상을 홀대하면서 경제성장으로 사회주의 승리를 이룩하겠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며 시장경제를 선택한 중국을 우회적으로 비난했다.

이어 “사상의 위력으로 세상이 부러워하는 사회주의 강국을 건설하려는 것은 우리의 확고한 의지이며 신념”이라며 ‘사회주의 수호’를 다짐했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이 같은 ‘사회주의 예찬론’이 미국의 최근 ‘체제보장’ 약속과 연관이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사회주의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통해 체제 수호 의지를 보여줌으로써 미국의 대북정책에 영향을 주려는 의도라는 분석이다. 앞서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부 장관은 18일(현지시간) 홍석현 대미 특사와 면담한 자리에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기조와 관련해 “북한에 대해 정권교체도 안 하고, 침략도 안 하고, 체제를 보장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북한의 ‘사회주의 타령’은 그만큼 사회주의가 위기의 절정에 도달했다는 북한 당국 스스로의 독백이며, 이제 사회주의 관성이 다 되가는 조건에서 어떻게든 그 관성의 동력을 되살려 보겠다는 마지막 몸부림으로 평가할 수 있다.

묻건대, 누가 북한 사회주의를 위기로 몰아갔는가? 60~70년대까지 그럭저럭 잘 굴러가던 북한 사회주의를 어느 누가 침몰의 늪으로 끌고 갔는가 말이다. 다름 아닌 족벌세습이다. 김정일이란 2대 세습이 없었다면 북한의 사회주의는 제때에 낡은 두루마기를 갈아입고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새로운 개혁 개방의 궤도에 올라서 오늘처럼 인민이 굶어죽는 인간생지옥으로 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말이다. 김정은의 3대 세습은 또 어떤가? ‘단번도약’의 슬로건을 내걸고 출발한 5년 전의 김정은 정권이 오늘 처한 환경은 연일되는 미사일 시험과 핵무기 개발로 벼랑 끝에 서 있는 상황이다. 북한 주민들은 ‘단번도약’을 ‘단번파멸’로 비판하고 있으며 인민의 지지와 성원을 떠난 김정은 정권이 갈 길은 벼랑 끝이 저만치 보이고 있다. 김정은이여! 제발 사회주의 노래 그만 부르시라. 인민들은 모두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장마당경제로 옷을 갈아입었는데 저 혼자만 사회주의 낡은 두루마기를 걸치고 있는 김정은은 거울도 안 본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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