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로 초록산책단의 70대 해설사가 시민들에게 서울로7017의 각 곳의 식물과 역사, 문화 등을 설명해주고 있다. 인동초를 설명하는 모습.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박선아 기자] 복잡하게 얽힌 도로 위에 세워진 869m ‘공중정원’ 위로 구름 하나 없는 하늘이 펼쳐졌다. 옮겨 심은 지 얼마 안 된 묘목을 대신해 고층빌딩이 만든 그늘과 안개분수가 더위를 식혔다. 지난 24일 해설사와 함께 서울로7017을 걸었다.

“여기 꽃봉오리가 올라온 게 보이시죠. 이 풀은 넝쿨이 올라가며 자라는데 겨울을 이긴다고 해서 ‘인동(忍冬)초’라고 해요. 김대중 전 대통령을 상징하기도 하죠.”

백발의 ‘서울로 초록산책단’ 해설사의 이야기에 참가자들이 눈과 귀를 기울였다. 서울로 초록산책단은 다양한 연령대 각계각층의 시민 144명으로 구성된 자원봉사단이다. 크게 식물 유지관리를 하는 ‘가드너’와 안전, 안내, 계도 등을 하는 분야로 나눠진다. 70대 해설사는 점잖은 복장 대신 캐주얼한 녹색 줄무늬 반소매 티에 초록색 야구모자 유니폼을 입고 참가자들을 이끌었다. 참가자 옆에서 해설을 보조하던 자원봉사자 강삼석(63, 서울 마포구)씨는 “자원봉사자 중에는 80이 가까운 분도 계시다”고 말했다. 고령의 해설사는 손주에게 옛이야기를 들려주듯 서울로의 식물과 역사,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10여명의 참가자들은 남대문 회현역 4번 출구에서 출발해 서울로를 걸었다.
 

▲ 도심을 관통하는 서울역 고가를 시민 보행길로 재탄생시킨 서울로7017. 평일 낮에도 많은 시민들이 찾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고가에 오르자 둥그런 콘크리트 화분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밤이 되면 화분 아래에서 빛이 나서 조명의 역할을 한다. 화분은 50개 과 228종 식물 2만 4000여 그루인데, 각 구간을 지날 때마다 식물의 모습이나 생태가 확연히 달라졌다.

함께 걷던 정용숙 서울로 사업운영팀장은 “각 수목은 과별로 회현역의 가지과부터 만리동 방향의 회양목과까지 가나다순으로 식재돼 있다. 이를 통해 과별 특징을 살펴보는 교육문화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노출된 공간에서 직사광선을 받는 환경이라 식물 관리가 우려됐지만 50~60명의 가드너들이 매일 식물을 돌보고, 화분별로 급수·배수 시스템이 설치돼있다고 하니 장마가 오지 않는 한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화분 중 기증을 받은 것에는 작은 팻말이 세워져 있었다. 손바닥 반만 한 팻말에 기업, 팬클럽, 개인 등 기증자의 이름과 함께 메시지가 적혀있는데 사연을 읽는 재미도 쏠쏠했다.

걷다 보니 삐죽하게 솟은 ‘조명폴’에 눈길이 갔다. 언뜻 잠망경 같기도 한데 밤이 되면 푸른빛으로 서울로7017을 도심 속 은하수로 만든다. 조명폴은 조명의 역할 외에도 스피커, CCTV, 비상벨, 태양광시설 등이 설치돼 24시간 안전한 걷기를 돕는다. 또 안전을 위해 16명의 경비 인원이 상시 대기하고, 희망지원센터나 주변 경찰서와 협력이 잘 돼 있다고 한다.

증강현실을 이용한 ‘호기심화분’이나 바닥을 뚫어 볼 수 있게 만든 체험공간도 설치돼 있었다. 다만 기자가 서울로를 찾을 당시에는 마무리 공사를 진행하느라 전시관, 무대, 가게, 공연장 등은 문을 열지 않고 있었다. 마감이 덜 된 계단이나 안전테이프로 막아놓은 공간은 다소 불안해 보였다.

고가에는 쓰레기통이 없다. 관광객이나 시민 인파가 몰리다보면 쓰레기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궁금했다. 정 팀장은 “개장 전에 (쓰레기)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쓰레기가 안 나온다”며 “아침에 출근해 걸으며 쓰레기를 줍는데 별로 없다. 사람들의 시민의식에 놀랐다”고 답했다.
 

▲ 유리 너머로 서울로 고가 아래를 지나는 시민과 차를 볼 수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해설사를 따라 걷다보니 어느새 만리동에 다다랐다. 예정했던 1시간보다 30분이나 빨리 도착했다. 해설사가 긴장한 듯 빠르게 참가자를 이끌다 보니 식물을 여유롭게 관찰하며 걷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자원봉사자 강삼석씨는 “아직 개장 초기라 미흡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참가자 중 자녀의 체험학습을 위해 서울로를 찾은 이선주(44, 서울 양천구)씨는 “생각보다 갖가지 나무가 심어져 있고, 새로운 것들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며 “안개분수가 더위를 식혀 주고, 무대나 ‘호기심 화분’ ‘족욕탕’ 등이 있어 흥미롭다”고 소감을 말했다. 유동준(양명초등학교 6학년)군도 “그동안 식물에 대해 무지했던 것 같다”며 “일상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나무나 풀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서 좋다”고 답했다.
 

▲ 서울로에는 둥근 콘크리트 화분에 각종 식물이 식재돼 있다. 활짝 핀 빨간 수국. ⓒ천지일보(뉴스천지)

◆서울로7017은?

‘서울로7017’에서 ‘7017’은 1970년에 세워진 서울역 고가가 2017년에 재탄생했다는 의미다. ‘17’은 ‘차량길’에서 17개의 ‘사람길’로 재탄생했다는 의미와 고가의 높이 17m를 뜻하기도 한다.

1970년 개장한 서울역 고가는 2006년 안전등급 D 판정을 받았다. 서울시는 고가를 철거하는 대신 미국 ‘하이라인파크’를 롤모델 삼아 시민 보행길로 재활용했다. ‘하이라인파크’는 철거 고가에 꽃과 나무를 심어 공원으로 재활용해 만든 곳으로 공원이 생기자 주변 부동산개발이 활발해졌다.

지난 20일 개장한 서울로는 특별행사로 ▲로테르담 필하모닉 팝업콘서트(6월 2일, 장미무대) ▲Green Bridge to EU(6월 3~4일, 서울로 일대) ▲농부의 시장(6월 2·9·17·24일, 만리동 광장) ▲한평시민책시장(6월 10일, 만리동 광장) ▲시낭독 공감운영(6월 17일, 장미무대) ▲서울로7017 거리예술시즌제 ‘봄’(6월 2·3주 목~일, 만리동광장·목련마당) 등이 열리고 평일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예술상담소(6월 22일, 목련마당) ▲낮잠의 여유(6월 13·20·27일, 목련마당) ▲노천보드게임카페(6월 13·20·27일, 목련마당) 등이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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