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중국 역사를 보면 ‘얼떨결에 황제’가 된 장군이 있다. 송(宋)나라 태조인 조광윤(927~976)을 두고 하는 말이다. 가난한 군인의 맏이로 태어난 조광윤은 21세 때 집을 나와 천하를 떠돌아다니다가 곽위라는 절도사의 부하가 됐는데, 곽위가 후한을 무너뜨리고 후주의 태조가 되는 바람에 벼락출세 길이 열렸다. 전쟁터에서 연승하는 운도 따라줘서 절도사로 임명됐고, 마침내 자연스럽게 양위(讓位)를 받아 황제가 됐다. 스무살 때만 해도 하루를 어떻게 살아갈지 기약조차 없었던 그가 ‘얼떨결에 황제’까지 올랐으니 사람팔자 정말 알 수 없는 일이다.  

조광윤은 비록 학문의 깊이는 없었으나 밤낮 싸움터에서 지내는 동안 책 보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아 황제가 된 후 정사에 큰 보탬이 됐다. 과거제도를 적극 실시해 관리들을 뽑고 종래 세습 귀족들을 대체했고, 전장에서 그를 도왔던 무관들에게 권력을 직접 행사할 수 없도록 하는 등 조정의 일대 변화를 꾀했다. 또한 평소 몸에 밴 절약정신으로 자신의 생일상도 백성 수준으로 잔칫상을 차리게 하는 등 검소함으로 민심을 얻었다. 황실 혈육으로서 미리 집권을 준비해온 것도 아닌데 백성 우위 정책으로 송나라 개국 발판을 잘 만들어 나갔다.

그가 명군(名君)인 점은 ‘약법(約法) 3조’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 조항은 당시 8살에 불과한 유약한 황제로서는 나라를 이끌어가지 못할 것이니 제발 황제가 돼달라고 수하 장졸들이 나서서 간청할 때에 조광윤이 받아들이면서 붙인 조건 세 가지다. 즉, ‘첫째는 어린 황제와 황태후는 내가 모신 분들이라 그분들을 해치면 안된다. 둘째 조정의 모든 관료들은 나의 동료들이니 누구하나 죽이면 안된다. 셋째 이 나라의 무고한 백성을 건드리면 안된다. 누구라도 이것을 어기면 3대를 멸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가운데 무고한 백성에게 해를 끼치면 안 된다는 조항은 조광윤이 전쟁터를 다니면서 몸에 익힌 보국위민(保國爲民)의 행동철학이었던 것이다.

흔히 전쟁에서 이기게 되면 병사들은 전리품(戰利品) 잡기에 혈안이 되기 마련이다. 이는 동서고금의 전사(戰史)에서도 알 수 있는바 승전 병사들은 패전지역의 백성들에게 몹쓸 짓을 하고 재물을 함부로 빼앗는 등 막무가내 행동을 보였다. 이러한 폐해들이 민심을 흉흉하게 만드는 동기가 되기도 했는데 그 점을 잘 알고 있던 조광윤은 전쟁에 나가 승리 때마다 병사들에게 백성의 생명과 재물을 빼앗으면 참수한다는 엄한 군율을 내렸고, 그 덕분에 민심을 얻었다.

전쟁에서 비롯된 전리품 내용에 관해서는 국제포로협약 등에서 그 내용이 엄격히 규율되고 있다. 전리품은 교전자가 전장(戰場), 점령지에서 적법하게 압수하거나 몰수한 적의 동산(動産)을 말하는 것으로 국가의 수입이 된다. 사유재산은 원칙적으로 몰수할 수 없고, 설령 몰수 가능한 것이라 해도 탈취자 자신의 소유로 하면 약탈이 되는 것이다. 그러한 전리품이 근대에 들어와서는 전쟁에만 국한되지 않고 정치 상황에서 번져나고 있는바, 민주주의하에서 대통령 또는 내각제의 수상이 갖는 선거 승리의 결과물, 즉 권력 집권이 전리품으로 자리매김 됐다.

‘전리품은 승리자에 속한다(To the victor belong to spoils).’ 이 말은 미국의 마시(Marcy) 상원의원이 남긴 명언이다. 이 말로 인해 전리품이 전쟁에서 정치로 이어지게 됐고, 선거에서 이긴 잭슨 대통령이 선거운동에 공로가 컸던 정당인에게 공직을 나누어줌으로써 엽관제(躐官制)라는 미국의 인사제도가 태동이 됐다. 잭슨 대통령이 권력집권의 당위성으로 본 엽관제는 민주정치의 기초가 되는 정당제도를 유지 발전시켜왔던 동력으로서 자리 잡기도 했다.

엽관제의 배경에는 ‘전리품’ 개념이 자리 잡고 있었던바 그것은 당시 행정업무는 단순해 건전한 상식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업무 수행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엽관제가 정당 이념의 철저한 실현이 가능하고 평등 이념에 부합되며 공직 경질을 통해 관료주의를 방지할 수 있는 등 이점 못지않게 그 폐해도 만만치 않아 실적주의 토양을 만들어내는 원인이 됐다. 그러한 정치적 전리품이 한국에서도 나타나 대선에서 승리한 정당의 관직 배분권은 당연시 됐고, 지금도 대통령 측근에서는 대선 승리자의 몫이라며 전리품 이야기가 당연한 것처럼 나오는 중이다. 

각설하고, 요즘 국내정치가 혼돈에 싸여있다.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가 승리함으로써 여야가 뒤바뀐 처지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한 달이 지났어도 문 대통령 스스로 적폐라 규정했던 박근혜 정부의 일부 각료와 동거하는 어정쩡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바, 내각 구성이 시급한 현실이지만 일부 장관 후보자의 자질 시비로 야당의 질책이 드세다. 이를 보면서 송(宋)태조 조광윤이 민심 안정 수단으로 엄하게 다루었고, 미국 잭슨 대통령이 민주주의의 발전 동력으로 호도했던 전리품의 본질을 다시금 생각해본다. 전리품은 승리자에 속하는 것이긴 해도 원칙에 따라야 뒤탈이 없는 법. 자칫 정치권의 합의에 의하지 아니하고 절대 권력으로 짓누른다면 약탈이 되거나 민의에 거슬리게 마련이니 때론 전리품도 혹 같은 존재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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