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470~399 B.C.)는 ‘악법도 법’이라는 명언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신성모독 혐의와 청년을 현혹했다는 죄목으로 감옥에 갇혔을 때 제자들이 그에게 강권한 것은 탈옥과 목숨 보전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를 거부하고 태연히 실정법에 의한 죽음을 받아들였다. 바로 이런 배경에서 ‘악법도 법’이라는 명언이 태어났다.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라서가 아니라 법과 규정은 지켜져야 존재의 의미가 있다. 지키지 못할 법과 규정은 굳이 존재할 필요가 없다. 

고위 공직 후보자를 대상으로 펼쳐지는 국회의 청문회는 대통령의 고위공직 임명에 대한 강제적인 필요충분조건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필요조건은 된다. 그렇더라도 대통령의 고위공직 임명에 대해 굳이 국회의 청문회를 거치게 한 의의를 살리기로 한다면 청문회의 결정은 대통령에 의해 존중되는 것이 온당하다. 국회 청문회의 판정이 불공정한 정파적 편견이 개입할 소지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럴지라도 청문회를 통과해야 하는 것이 실재(實在)하는 필요적 임명 요건이라면 청문회의 판정이 가볍게 무시되면 권력의 견제와 균형 원칙을 무시하는 오만이 되고 만다. 

더구나 대선 기간에 공약으로 내걸어 아직 입김도 마르지 않은 고위공직 임명 불가 5대 원칙이 엄연히 살아있다. 물론 청문회가 선과 악의 심판장이 아니며 고위공직을 임명하는 행위가 도덕군자를 뽑는 것은 아닐지라도 태연히 규정이 무시되는 것은 법치(法治)가 아니다. 아무리 갈 길이 멀고 급하며 할 일이 태산 같은 정권 초기의 특수 사정과 세상만사에 예외가 없을 수 없음을 감안한다 해도 그러하다. 더 말할 것 없이 지금까지 이루어진 고위공직 임명에서 국회에서 적출된 하자가 결코 가볍지 않음에도 임명이 강행된 경우가 반대의 경우보다 훨씬 더 많다. 솔직히 아무 것도 걸리지 않고 청문회를 무사통과한 경우는 눈을 씻고도 보기 어려울 지경이다. 왜 그런 것인가. 

후보를 선정할 때의 검증이 부실해서인가. 아니면 고위공직임명 불가 원칙이 너무 이상적이어서 현실성이 떨어져서인가. 아니면 청문회가 잘못된 것인가. 다른 한편 검증이 완벽하고도 충실히 이루어진다고 할 때 금기 사항에 저촉되지 않을 인재가 과연 이 나라에는 없는 것인가. 청와대나 관계 기관이 서류로서 보관하고 있는 ‘인재 풀(pool)’이 좁은지 넓은지는 잘 몰라도 설마 그 안에나 이 넓은 세상 천지에 그런 인재가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검증의 문제나 규정의 현실성 여부, 청문회의 문제 등으로 원인을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는데 이런 것들의 완벽성을 주장하기는 물론 어렵다. 

그렇다 하더라도 고위 공직 임명과 관련한 인사 사고는 언제나 능력이나 규정에 맞추어 인재를 발탁하기보다 사람 자체를 보아 인격을 믿고 인재를 뽑으려 하는 경향 때문에 일어나기 마련이다. 다시 말해 임명권자의 취향이나 신념 또는 정치적 개인적 선호에 의한 인물 선택이 화를 부른다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견제가 있음에도 임명이 강행될 수 있는 데에 잡음과 정쟁의 소음이 끼이게 되는 것이다. 어떻든 누구의 정권인가를 가릴 것도 없이 번번이 인사문제로 불필요한 소음이 일며 국정이 발목 잡혀 아까운 시간이 낭비되는 것은 안타까운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이를 바로잡아 나라를 평화롭게 하기 위해 애초의 인사 검증과 국회 청문회, 임명권자의 임명 행위 전반에 대한 성찰과 그것을 토대로 한 수리 보수가 필요한 때가 됐다고 할 수 있다. 지켜지지도 않을 법과 규정은 없는 것이 낫다. 반대로 실재하는 법과 규정이라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정치 신예 마크롱 대통령이 이끄는 프랑스의 사례가 타산지석이 될 수 있다. 그 역시 인사사고로 곤경에 빠졌다. 그가 임명한 신임 장관 4명이 비리 의혹이 일자 줄줄이 사퇴했다. 그 자신이 60퍼센트 이상의 압도적 득표로 당선됐으며 정당을 새로 만들어 최근의 의회 선거에서도 과반을 넘는 의석을 확보해 국민의 두터운 인기를 누리고 있음에도 그는 이들을 감싸고 돌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다. 우리에겐 심심찮게 잘도 통하는 밥에 뉘 같은 예외도 그곳에서는 통하지 않는 것 같다. 심지어 그 자신도 대통령으로서 살아있는 권력이지만 과거 장관 시절 특정 기업에 특혜를 준 비리 혐의로 프랑스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는 지경이다. 이로 미루어 실정법과 법치 시스템, 법 집행의 준엄함이 선진 사회의 척도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제인 대통령의 인기는 아직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고위공직 임명을 포함해 여기저기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며 덜컹거리듯 원만하지 못한 운전 솜씨가 나타나기도 하는  것은 걱정스런 시선을 보내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대통령 중심제의 나라에서는 대통령의 성공이 곧 나라의 성공이다. 다시 초심을 생각하며 각오를 다지고 전열을 재정비하는 것이 옳다. 특히 외교 안보 측면에서의 운전 솜씨는 신중해야 하며 세련돼야 한다. 5년 단임 정부가 손바닥 뒤집듯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뿌리 내린 과거의 정책을 바꾸려 하는 것은 국민으로 하여금 멀미나게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미 간에 마찰이 빚어지는 듯한 모습은 국민의 우려를 사기에 부족함이 없다. 안보와 동맹은 죽고 사는 문제다. 그렇다고 먹고 사는 경제 문제가 중요치 않은 것은 아니지만 안보와 동맹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은 원천적인 안위의 문제를 제기하게 한다. 고고도미사일방어시스템(THAAD)에 대한 이견을 두고 정부에 직을 둔 어떤 학자가 미국에 가서 대통령과 조율이 안 된 섣부른 소리를 해 대통령과 정부가 심각한 오해를 받게 했다. 말썽이 일자 개인적인 견해라며 빠져나가려 했지만 이 민감한 기기에 그게 될 일인가. 일단 이렇게 돌출 발언으로 사고를 치면 원만한 수습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외교 안보 이슈다. 문재인 대통령 정부는 갑자기 출현한 이 난기류를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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