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남 나주시 금성관 관문부에 위치한 마을미술작품 문양(왼쪽)과 국보 제155호 무령왕비 금제관식.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천지일보(뉴스천지)

시민 “마한 침략한 백제 왕관 조형물 이해 안 돼”
시 “작가와 합의했으니 곧 철거할 예정”
문체부 “주민요구 반영, 빠른 기간 내 개선할 것”

[천지일보 나주=이진욱 기자] 전남 나주시 금성관 옆 ‘사매기길’ 입구에 세워진 조형물의 왕관 모양 작품 문양이 고대 마한(나주)을 침략한 백제 근초고왕의 후대 왕인 무령왕의 왕비 관식과 흡사하다는 논란이 제기됐다.

나주시는 지난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재)아름다운 맵과 함께 2016년 마을미술프로젝트 공모사업(주최 문화체육관광부)으로 ‘밀레날레문-천년고도의 부활’이란 작품을 원도심 읍성권 일원에서 진행했다.

이런 과정에서 나주시 금남동 일대에 밀레날레교-금성교의 부활, 사색의 둥지 등 30여명의 작가가 참여한 총 23점의 작품이 곳곳에 전시됐다.

하지만 당시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에서 선정하고 나주에 설치된 작품 중 ‘밀레날레문-천년고도의 부활’이란 작품이 나주의 보물인 신촌리 금동관이 아닌, 다른 왕관의 문양을 모티브로 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나주시 금남동에 사는 김모씨는 “나주역 앞에도 금동관 조형물이 있고 동신대로 가는 길목에도 똑같은 금동관 문양이 있는데 여기 문양은 다른 왕관 문양”이라며 “아무리 작품이 좋아도 주민의 이해와 공감이 우선 아니겠느냐”고 주장했다.

금계동에 사는 임모씨도 “우리 나주에 금동관이 없다면 모르겠지만 있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모양을 사용한 것은 이해가 안 된다”면서 “작가나 작품의 문제보다는 애초에 이런 나주지역 역사를 모르고 위에서 작품을 선정한 것 같다”고 말했다.

더욱이 이번 작품의 문양이 자칫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왕비 관식을 연상시킨다는 지적이 나왔다.

시민 김경신(여)씨는 “나주는 고대 마한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마한 축제도 하지 않느냐”며 “나주를 대표하는 금성관 근처에 세워진 조형물은 당연히 마한 금동관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자칫 잘못하면 아이에게도 잘못된 역사를 가르칠 수도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특히 이 작품이 세워진 곳은 나주 시민에게 역사적 의미와 자부심이 높다. 나주 마을로 향하는 이곳은 지난 1011년 고려 현종이 거란의 침입을 피해 나주로 몽진을 왔다가 개경으로 돌아갈 때 네 마리의 말이 끄는 수레를 타고 건넜다고 해서 붙여진 ‘사마교’ 자리이기도 하다.

황보창서 나주국립박물관 학예사는 조형물 이미지에 대해 “조형물 무늬가 백제의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왕비의 관식으로 보인다”면서 “지금은 나주박물관 표지판이 태극무늬다. 하지만 이전 표지판 로고는 나주시 신촌리 9호분에서 출토된 금동관의 문양이었다”면서 마한시대 왕관 문양과 백제시대 문양을 비교해 설명했다.

이에 대한 나주시의 입장은 다르다.

나주시 문화관광과 관계자는 “당시 전국 공모사업으로 진행됐고 시민단체가 주체적으로 진행했으며 서울 문체부 관계자가 심사했던 작품”이라며 “작가는 특정국가가 아닌 가장 일반적인 왕관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지만, 작품이 세워지면서 일부 논란이 있어 작가와 의논한 결과 철거에도 합의한 사항”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예술작품의 특성상 해석의 차이에서 작가의 고유영역이 있는 만큼 어려운 부분도 있다”며 “작품이 이미 설치된 상황에서 당장 철거나 교체는 어렵지만, 문체부와 합의해 곧 작품을 철거할 예정”이라고 했다.

작품을 선정한 문체부도 일부 잘못을 인정하며 고심하고 있는 입장이다.

문체부 마을미술사업 관계자는 “이 내용은 당시 사업 종료 후부터 얘기가 나와 수정하려고 진행 중인 사항”이라며 “마을 미술의 경우 주민과 여러 차례 의논을 나눠 하는 건데 저희가 지식이 조금 부족했다. 주민이 짚어 주신 만큼 최대한 빨리 개선하겠으니 지켜봐 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 따르면 백제국의 세력권에 포함되지 않은 남부지역의 마한은 비록 세력권이 줄어들기는 했으나, 상당한 변화를 거치면서 4세기 후반 백제 근초고왕에 의해 병합되기까지 종래의 기반을 토대로 독자적인 세력권을 유지했다.

이러한 마한의 역사를 간직한 나주시가 추진하는 ‘천년고도의 부활, 나주의 옛 명성 회복’이라는 취지와 금성관 근처에 세워진 이 조형물이 과연 부합한지 시민의 우려가 커진 가운데 이번 논란이 종식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 전남 나주 반남면 신촌리 9호분에서 출토된 국보 제295호 금동관(왼쪽)과 (구)국립나주박물관 로고. (제공: 국립나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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