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흐렸다 갰다 날씨가 변덕을 부린다. 장마철이다. 긴 가뭄에 속을 태웠으나 이내 장마가 왔다. 소망하던 비가 실컷 왔다. 생기를 잃어가던 작물이 소생하고 바닥이 쩍쩍 갈라지던 저수지에 물이 넘실거린다. 지역에 따라서는 홍수가 나고 피해가 속출하기도 했다. 저수지에 물이 마르면 가물치 장어 붕어 등 각종 물고기들은 진흙 속에 파고들어 힘들게 연명한다. 그것들에게 장마는 생명수를 제공한다. 물을 만난 그 생명들이 필시 신나는 유영(遊泳)과 먹이 활동을 다시 시작했을 것이라 생각해보라. 막혔던 숨이 뻥 뚫리는 기분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하지만 장마철의 비는 꼭 적당하게만 와주는 것은 아니다. 자연의 법칙에 절대적으로 충실한 장마철의 비는 부족함만 못한 과유불급(過猶不及)이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일부러 사람들을 골탕 먹이려 그러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흔히 이에 불평하지만 두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터무니도 없고 아무 소용도 없는 일이다. 자연의 변화와 위력을 다스리는 것은 절대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버릇처럼 불평하며 날씨의 변덕을 탓한다. 사람은 자연에 기대어 산다. 먹고 입고 자고 숨 쉬는 것 모두가 자연이 베푸는 오묘한 생존 조건이 있어 가능하다. 그럼에도 온갖 불평이 차고 넘쳐 사람의 마음에는 그런 자연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자리 잡을 틈이 없다. 

자연의 ‘과유불급’이 낳는 재앙은 미리 대비하고 피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것 말고는 그것으로부터의 피해를 막을 방법이 달리는 없다. 뿐만 아니라 자연의 재앙을 지혜롭게 극복해 피해를 입지 않아야 사람의 마음에 자연에 대한 고마움도 자리 잡을 틈이 넓게 생길 수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자연 재앙으로부터의 피해가 되풀이 되는 것은 금방 당하고 나서 뒤돌아서면 대비를 잊는 사람의 건망증과 변덕 때문이다. ‘변덕(變德)’으로 말하면 사람은 결코 날씨 변덕을 탓할 처지가 못 된다. 사람의 변덕보다 더 심한 변덕은 이 세상에 없다. 가뭄에 목이 타 울던 사람들이 물이 흔한 장마가 오면 그 물에 고마워하기는커녕 도리어 장대비에 불평하게 되는 것을 보라. 그것이 변덕이다. 가뭄 피해를 말하다 언제 그랬냐는 듯 비 피해를 불평하는 것, 바로 그것이 사람의 망각의 변덕이 아니고 뭔가.

사람이 한 치 앞도 못 내다보는 존재인 것은 자고로 크게 다르지 않다. 이렇게 굵은 장대비가 연일 쏟아질 장마가 가뭄 뒤에 딱 달라붙어 오는 줄도 모르고 사람들은 가뭄이 길다고 신경들이 날카로워졌었다. 명심보감에 이르기를 ‘한순간의 화를 참으면 오랫동안의 근심을 면할 수 있다(忍一時之忿 免百日之憂/인일시지분 면백일지우)’라고 했다. 타들어가는 들판에서는 흔히 생명수 같은 물을 내 논에 먼저 대려는 욕심 때문에 가까운 이웃끼리도 심각한 물싸움, 몸싸움, 말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머지않아 장마가 홍수를 내어 물이 이렇게 지천으로 짜증스런 존재가 되고 말 것을 모르고서 말이다. 그때 ‘욱’하는 ‘일시지분’을 참아 멀리 사는 부모 형제 자식보다도 더 중요한 이웃사촌 간에 애초 후회하는 마음을 남기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남태평양 미크로네시아의 산호초 인공 섬에 UN의 문화유산에 등재된 난마돌(Nanmadol)이라는 이름의 고대 유적지가 있는 모양이다. 그 이름을 따서 붙인, 태풍 난마돌이 필리핀과 중국 연안 및 타이완을 거쳐 오른쪽 시계 방향으로 큰 호를 그리며 북상하다 제주도 남쪽 멀리에서 동쪽 일본으로 방향을 급격히 꺾어 한반도는 그 피해에서 무사할 수 있었다. 태풍과 지진 화산 쓰나미(tsunami)의 나라인 일본은 자연 재난에 대한 대비가 세계에서 가장 잘 돼있는 나라다. 남태평양에서 여름철에 발생하는 태풍이 가끔 한반도를 할퀴지 않는 것은 아니로되 그것마저도 대부분은 일본을 최종 목적지로 상륙해 강타하지 않는 경우가 거의 없다. 위력 있는 열대 태풍들의 단골 공격 목표는 항상 일본이다. 그런 점에서 한반도는 곁다리다. 

난마돌 역시 한반도를 비켜 일본을 직격(直擊)했다. 워낙 위력이 커 아무리 대비가 잘 된 일본이라 해도 완전히 무사할 수는 없었다. 그렇더라도 사상자와 이재민 도괴 유실 수몰 등 각종 수재피해가 최소화될 수 있었던 것은 철저한 사전 대비와 피난 훈련 덕분이었다. 거대한 용오름 현상인 토네이도(tornado)는 주택이나 자동차까지도 거뜬히 공중에 빨아올려 산산조각 낸다. 미국은 매년 그 토네이도의 피해에 시달린다. 당하고 또 당한다. 그렇다면 미국은 재난에 대한 대비에 있어 일본을 따라가지 못하는 나라인 것이 분명하다. 중국의 경우 역시 남부 내륙을 중심으로 큰 지진과 물난리 가뭄 피해 등이 연례행사이듯 속수무책으로 되풀이 된다.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가끔은 재난으로부터 호된 교훈이 남겨짐에도 방심과 망각의 변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것이 문제다. 재난을 당하면 당장은 펄펄 끓지만 금방 식어 사전 대비 의지와 용의주도한 대비책의 실행이 흐지부지 된다. 이래서 다리가 끊어지고 대형 건물이 폭삭 무너지는 등의 엉뚱한 인재(人災)가 일어나는가 하면 자연재해가 터지기도 한다. 한반도는 일본처럼 상시 재난 지대가 아니어서 사람들을 방심에 빠지게 하기에 딱 알맞다. 만일 우리가 그 방심에 빠지지 않고 망각의 변덕에 넋을 잃지만 않는다면 한반도는 말하자면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낙토(樂土)’가 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러니까 해를 건너뛰지 않고 되풀이되는 가뭄과 수재, 산불 피해는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눈 뜨고 볼 수 없는 가축의 대량 살(殺)처분과 생매장을 되풀이해야 하는 조류 독감 AI의 피해로부터도 졸업하지 못할 까닭이 없다. 

한편 변덕은 악이라고 말하기 쉽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왜냐하면 나쁜 변덕에서 과감히 돌아서는 그런 변덕은 권장돼야 하는 선(good)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에게 절실한 것이 그런 선을 향해가는 변덕이다. 정쟁에 등 돌리고 화합과 협치(協治)로 가는 변덕을 당장 부려야 한다. 대통령 당선에 기여한 몫을 내놓으라며 연일 가투(街鬪)에 매달리는 세력들에게도 회심(回心)의 변덕이 필요하다. 나라가 새 지평을 지향해간다. 그렇다면 이런 마당에 그 같은 신선한 변덕이 필요한 것은 이 나라의 모든 지도자들과 국민들에게도 마찬가지인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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