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로비에서 열린 조재연, 박정화 대법관 취임식에서 양승태 대법원장이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출처: 뉴시스)

‘판사 블랙리스트’ 진상규명 요구
“국민 앞에 사과하고 즉각 사퇴”

적폐청산 예외상태 사법부 지적

[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전국 183개 인권·시민단체가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면서 이 의혹에 대한 추가 조사 요구를 거부한 양승태 대법원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새사회연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등은 21일 ‘법관 블랙리스트, 민주주의 문제. 양승태 대법원장 사퇴하고 진상규명 해야한다’라는 공동성명을 내고 “사법부 위기사태에 최종책임을 지고 양승태 대법원장이 국민 앞에 사과하고 즉각 사퇴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지난 2월 이모 판사가 법원행정처 보직인사 발령 당일 인사발령이 취소되는 인사문제가 불거졌을 때도, 대법원 산하 연구회 소속 판사들의 성향에 대한 뒷조사와 외부 발표행사 저지를 위한 외압이 드러났을 때도, 대법원은 축소하기에 급했다고 지적했다.

또 지난달 19일 전국법관대표회의(법관회의)가 열려 법관회의 상설화와 ‘판사 블랙리스트’ 추가 조사를 의결했던 부분과 관련해 이들은 “지난달 28일 양 대법원장은 법관회의 상설화는 수용하되 판사 블랙리스트 추가조사는 없다고 공식 표명했다”며 “개혁과 변화를 요구하던 법원 내부는 깊은 침잠과 혼돈에 빠져들었다”고 설명했다.

단체는 “법관 블랙리스트는 박근혜 정권의 말기에 드러난 것처럼 모든 농단 세력의 마지노선에서야 드러나는 적폐의 상징이자 결정체”라며 “양 대법원장이 법관 블랙리스트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법원행정처 컴퓨터 조사를 거부하며 적극적으로 숨기려는 정황에서 법원적폐 청산의 핵심이 바로 법관 블랙리스트임을 재확인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사법부에 대해 적폐청산과 개혁에 박차를 가하는 사회적 흐름에서 철저히 예외상태에 있다고도 지적했다. 사법부가 민주주의 견제 원리인 권력분립의 ‘독립’이 ‘독점’인양 철저히 내부 문제로 치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단체는 “국민의 신뢰를 염두에 두지 않고, 국민과 함께하지 않고, 국민의 통제를 거부하는 사법부는 결코 어떠한 외부권력으로부터도 독립성을 지킬 수 없다”며 “법관들 스스로 헌법수호 의지와 민주적 실천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사법 불신은 더욱 높아지고 사법부의 민주적 정당성과 존재 의의에 대한 회의는 더욱 커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헌법과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국회 국정조사와 검찰 수사를 촉구할 수밖에 없다”며 “이것은 우리의 의무이며 동시에 모두가 준수해야 할 헌정 질서와 민주주의 원리를 사법부 스스로 포기해 자초한 결과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최한돈 인천지법 부장판사(52)는 전날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규명을 촉구하며 사표를 제출했다. 현직 판사가 대법원에 항의해 공개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한 것은 지난 2003년 이후 처음이다.

최 부장판사는 사의 표명 당일 법원 내부 인터넷망에 ‘판사직에서 물러나면서’라는 제목의 글을 게시하고 “오늘날 우리 사법부는 사법행정권이라는 미명 아래 더욱더 조직화된 형태로 법관들의 자유로운 연구 활동까지 감시당하는 현실 앞에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은밀히 이뤄지는 법관에 대한 동향파악은 그 어떤 이유를 내세워 변명하더라도 명백히 법관독립에 대한 침해”라며 “현재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무너진 신뢰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그 의혹이 해소돼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의 제도 개선은 한낱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며 “마지막 남은 노력을 다하고자 법원장님께 사직서를 제출했다”며 “이는 오로지 저의 충정을 통해 대법원장님의 입장 변화를 기대하는 한 가닥 희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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