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용 칼럼니스트

 

필자의 친구 중에 학창시절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은 친구가 있다. 법대에 진학했기에 누구나 사법시험에 합격해 판사나 변호사를 할 것으로 알았다. 하지만 1차에 합격하고 번번이 2차에서 낙방의 고배를 마시더니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으로 20년 가까이 근무 중이다. 친구는 변호사보다 더 많은 일을 하고 변호사에 못지않은 법률 지식을 갖고 있음에도 ‘변호사’ 자격을 달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엄연히 사법시험이란 제도가 존재하고 자신은 그 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걸 수긍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학교에서 이와 반대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임용고시에 합격해 교사가 되는 제도가 있음에도 기간제 교사들이 “정규직 교사와 같이 상시·지속적 업무에 종사하니 정규직 교사로 전환시켜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사법시험에 합격하지 못했지만 몇 년간 변호사 사무장을 했으니 변호사 자격을 달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2016년 교육 기본통계’에 따르면 전국의 기간제 교사는 4만 6천여명으로 전체 교사의 9.5%, 담임교사 비율도 9% 정도 차지한다. 정교사들이 임신, 육아, 질병으로 어쩔 수 없이 휴직해야 할 때 고용하는 임시직 교사라서 완전히 없앨 수도 없다. 이들은 기간제가 좋아서 하기보다는 임용고시에 합격하지 못했거나 임용고시 준비 자체를 하지 않아서 한다.

퇴직 전 같이 근무했던 기간제 교사에게 “베이비부머 세대의 교사들이 대거 명퇴나 정년퇴직할 시기가 되어 신규교사 임용이 늘어날 것이다. 임용고시 준비를 하는 게 어떠냐?”고 말을 하자 “임용고시 너무 어려워요. 기간제 자리도 많은데 뭐 하러 힘들게 공부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기간제 자리가 많아 평생 기간제로 호봉을 인정받으며 근무할 수 있는 게 현실이다.

담임까지 맡았던 군 장교 출신의 한 기간제 교사는 학급을 제대로 통솔하지 못해 아이들에게 조차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왜 저렇게 지도하지?’라는 의문이 생길 정도로 아이들에게 반감 살 행동을 스스로 자처해 교사로서 자질마저 의심스러웠다.

전국기간제교사연합회 대표는 “5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기간제 교사의 경우 이미 교사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정규직으로 전환해도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5년 이상 근무해서 교사로서 능력을 누구에게 인정받았다는 건지 궁금하다.

학교에서도 중요한 책임 있는 업무는 기간제 교사에게 맡기지 않고 정교사들이 한다. 담임을 맡길 정교사가 부족한 학교만 젊은 기간제 교사에게 담임을 맡기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 정교사와 차별화된 쉬운 업무와 수업만 한다.

수많은 임용고시 준비생들이 노량진을 비롯한 학원가와 고시촌에서 ‘컵밥’으로 끼니를 때우며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것을 뻔히 알면서 ‘기간제 교사로 몇 년 근무했다고 정교사로 무임승차 시켜 달라’는 논리는 백번 양보해도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심지어 임용고시에 합격하고도 편의점이나 식당 알바를 하며 발령 대기 중인 예비교사도 5천여명에 달한다. 이런 실상을 모르지 않을 텐데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에 편승해 기간제의 신분을 갑자기 정규직 교사로 전환시켜 달라는 요구는 무례하기까지 하다.

오죽하면 전교조 대변인마저 “임용고시를 5~6년씩 준비하는 예비교사들도 있는데 기간제 교사 경력만으로 바로 정규직 교사가 되는 것은 기회균등의 원리를 침해하게 된다”며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정규직 교사나 임용고시 준비생이나 기간제 교사나 교원 자격증을 가진 사람은 교사의 역할을 수행할 기본 자격을 얻은 사람이다. 시험에 합격한 정교사는 유능하고 1점차로 낙방한 기간제 교사는 무능하다고 차이를 두는 게 아니다. 교사 선발의 공정성을 위해 임용고시란 제도를 거쳐야 한다고 사회적 합의를 했기 때문이다. 그걸 지켜야 진정한 평등이다. 차별이 아닌 차이를 인정해야 정의로운 사회가 된다. 더군다나 학생들에게 노력의 가치와 공정한 과정과 그에 따른 결과를 가르쳐야 할 학교에서 떳떳하지 못한 억지 논리로 교사가 되려 해서는 안 된다. 이번 기회에 정교사 임용을 대폭 늘려 기간제 교사를 최소화 시키고, 준교사인 ‘시간제 교사’ 제도를 도입해 자질 있는 기간제 교사만 채용하는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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