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근래 최고의 네이밍은 무얼까. 단어를 처음 들어도 딱 고개가 끄덕여지는 작명. 그것은 ‘착한 가격’이 아닐까 싶다. 이는 서민적이고 저렴한 가격, 또는 적당히 싼 가격을 의미한다. 착하다는 뜻의 순우리말은 파괴됐다. 세종대왕이 듣고 눈살을 찌푸릴 일이다.

필자 생각에 식당 이름으로는 ‘곧 망할 집’이 최고의 네이밍 바통을 이어받았다는 느낌이다. 전국에 산재한 식당 ‘곧 망할 집’이 처음에는 ‘곧 망할’ 줄 알았지만 대박 성업중이다. 월미도의 한 횟집 ‘곧 망할 집’은 20년째 장사를 하고 있다. 손님들은 간판을 보고 배꼽부터 잡는다. 이름이 손님들에게 웃음부터 선사한다. 이색적인 이름으로 손님의 시선을 끄는 맛집들이 많다. ‘고쟁이부인 속 터졌네’ ‘자라부인 뒤집어졌네’와 같은 재미있는 이름들도 있다.

면발로 승부를 거는 음식점 중에는 면사무소를 사용한 상호가 많다. ‘면사무소’ ‘이태리면사무소’ ‘육전면사무소’ 등이다. 빵집은 ‘브레드 피트’가 재치 넘치는 이름. 영화배우 브래드 핏(Brad Pitt)과 글자는 다른 브레드 피트(Bread Fit)이지만 인기를 끌고 있는 ‘콩글리시’이다. 이름 덕에 빵도 세련되고 감각적인 맛이 빛날 것만 같은 인상을 안겨주는 빵집이다. 떡볶이는 징그러운 느낌에도 불구, 의외로 ‘대장균집’이 잘 된다고 한다.

생각건대 부르기 좋고 듣기 좋은 이름이 좋은 이름일 것이다. 전국적인 조사결과가 발표된 적이 있다. 남자 아이 이름으로 가장 인기 있는 이름이 ‘민준’, 여자 아이 이름으로 최고 인기 있는 이름이 ‘서연’이라고 한다. 부르기 좋고 듣기 좋지만 인기몰이와 함께 흔한 이름이 된 셈이다.

강서구 마곡 지구를 지나다보면 ‘이로운 부동산 컨설팅’이라는 상호가 눈에 띈다. 부동산 상담과 소개로 고객을 이롭게 한다는 뜻일 게다. 쉬우면서도 좋은 느낌으로 가슴에 다가온다.

이름이 어려운 사람은 인생도 힘들고 어렵다는 말이 있다. 싫어도 ‘학’ ‘섭’ ‘병’ ‘환’ ‘곤’ ‘래’ ‘배’ ‘희’ ‘묵’과 같은 항렬·돌림자를 써야 한다는 집안의 엄명 탓에 평생 이름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 이도 많다. 무릇 몸에 맞는 옷이 좋은 옷이듯 이름도 자신에게 맞는 이름이 좋은 이름이다.

역리학연구가들은 타고난 자신의 사주팔자를 보완해주는 이름이 좋은 이름이라고 한다. 예컨대 더운 여름에 태어나면 사주가 조열하다. 메마른 땅에는 물이 필요하다. 그래서 한여름에 신생아작명을 할 때는 음오행에 수와 금 오행을 쓴 이름이 많다. 수 오행은 말 그대로 물, 금 오행은 물이 발원되는 수원지를 의미한다. 발음을 기준으로 분류되는 음오행이란 소리의 파동이 만들어내는 ‘영동력’을 말한다. 수 오행 글자는 ㅁ ㅂ ㅍ, 금 오행 글자는 ㅅ ㅈ ㅊ이다.

이에 따라 ‘민준’이라는 이름의 ‘민’은 음오행이 수, ‘준’은 금 오행이다. ‘민준’이라는 이름은 어떨까. 여름철 화 기운이 강한 사주에는 좋은 이름이 되지만, 겨울철에 태어나 차갑게 꽁꽁 얼어붙은 동토와 같은 사주에는 좋은 이름이 될 수 없다는 얘기다. 이처럼 이름이란 평생을 함께하며 앞날을 윤택하게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돕는 인생의 이정표가 될 수도 있다. 신생아 이름 작명이 소중한 이유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가 고소득자 및 대기업에 대한 증세를 ‘명예과세’라 부르고 싶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김태년 정책위의장은 ‘존경과세’ ‘사랑과세’라고 명명했다. 우원식 원내대표는 ‘조세 정상화’라는 등의 뜬금없는 이름 짓기가 온종일 이어졌다. 쓴웃음이 절로 나오게 만드는 허접한 수준의 말장난이다.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는 정부 증세정책을 ‘세금폭탄’이라 규정했고, 김태흠 최고위원은 ‘징벌적 증세’라며 공세에 나섰다. 바른정당은 “국민들에게 사과부터 먼저 해야 한다”고 대통령을 공격했다.

우리 정치권에 협치나 연정은 없다. 본질을 호도하는 여당이나 반대를 위한 반대·정쟁에만 함몰된 야당이나 모두 한심하다. 이름만 바꾼다고 해서 고소득층·대기업의 희생을 전제로 한 표적 증세라는 원래 얼굴이 가려지지 않는다. 현재의 저부담·저복지 구조는 장래 중부담·중복지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국민들 입장에선 속이 뒤집어진다. 증세가 필요한 이유에 대한 대국민 설득이 생략됐다. 여기엔 깊은 심사숙고와 알맹이 있는 정책 토론, 그리고 사회적 합의 과정이 꼭 필요하다. 여당 정치인 몇몇의 말장난과 포퓰리즘적 여론전으로 끝내려 한다면 이른바 ‘착한’ 정책이 될 수 있겠는가. ‘그들만의 말잔치’. 이는 국민을 졸(卒)로 아는 편법적 발상에 의한 속임수요, 꼼수 내지 잔꾀일 뿐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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