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도 ㈔겨레얼 살리기 국민운동본부 이사, 답게살겠습니다 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

 

나라를 일제 침략에 강탈당하며 희생양으로 끌려간 원한 맺힌 영혼들이 광복 72년 만에 고국의 품에 안겼다.

‘일제 강제징용 희생자 유해봉환위원회(봉환위)’는 일본 도쿄(東京) 히가시무라야마시(東村山市) 하기야마조(萩山町) 소재 재일동포 사찰인 국평사(國平寺)에 안치돼 있는 일제강점기 조선인 무연고 유골 약 300구 중 신원 파악이 된 101구를 한국에 모시기로 하고, 지난 8월 6일 1차로 국평사로부터 33구의 유골함을 전달받아 7일 모시고 왔다.

이들은 어린 나이에 일제에 의해 강제 징집돼 이국땅에서 갖은 고통을 겪으며 노예 같은 삶을 살아오다 꿈에도 그리웠던 땅, 살아생전에 꼭 가겠다는 내 고향, 내 조국에 유골이 되어 돌아왔다. 희생자들의 생년이 거의 1900~1920년대 생인 것으로 보아 어린 나이에 강제 징집돼 간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봉환위’의 유해(遺骸) 송환식 행사에서 ‘재일동포 할아버지, 할머니를 지원하는 모임’의 대표 미즈시리 후꾸코씨의 인사는 참석자 모두의 마음을 울렸다. 희생자 가운데 박성룡씨는 사할린(카라후토)에 강제 연행돼 탄광에서 죽도록 일을 했고, 태평양전쟁이 끝나면서 모든 일본인들은 귀국했으나 조선인들은 그냥 내버려져 이에 절망한 조선 청년들은 자살도 했는데, 다행히 그는 현지 여성과 결혼해 겨우 일본으로 돌아 올 수 있었다고 했다. 그후 하수도 공사장에서 뼈 빠지게 일했으나 아내와 자식은 조선인 차별로 떠나 버리고 늙어 홀로 전기, 가스가 끊어진 곳에 사는 것을 이웃에서 통보해 병원으로 오게 됐다고 한다.

조선인 희생자들의 유해를 안치해온 국평사(國平寺)는 글자 그대로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사찰이다. 주지(윤벽암)스님은 국평사를 절이라기보다 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한다. 이 사찰은 무주고혼(無主孤魂) 희생자들의 유해와 위패, 납골당이 가득 들어차 있는 혼백이 거처하는 임시 고향 같은 곳이라니 나라 잃은 설움이 고스라니 담겨져 있는 역사적 현장이기도 했다. 이 절은 370년 전에 세워진 사찰로 은퇴한 스님들이 여생을 보내며 수행하던 곳이었으나 절을 이어받은 난암(煖岩) 유종묵(1893~1983) 스님은 일제에 의해 강제 징집, 징용돼 희생된 조선인 유골을 이곳에 모시면서 절의 명칭을 국평사로 바꾸었고 납골당을 만들었다.

유종묵 스님은 일본으로 끌려온 조선인 200여만명의 안위를 걱정하며 광복 후에도 이곳에 남아 1965년 한일조약 후 국평사로 개칭하고 3층으로 된 다보탑 모양의 납골당을 지었다고 한다. 유명한 사찰은 고승(高僧)이 맡는 것이 관례인데 일본인 중에 절을 맡을 고승이 없어 유종묵 스님이 맡았다고 한다. 법당에는 남과 북에서 보낸 대장경이 있는데 남한에서는 해인사 고려대장경(1972)을, 북한은 팔만대장경(1992)을 보내와 모셔져 있고, 납골당의 유골은 1500여기로 유가족이 있는 1200기와 무연고 유골 300기가 있다. 희생자들의 평생소원이 죽어서도 고향에 간다는 것이었기에 납골당은 묘 같지만 임시 보관소인 것이다. 유종묵 스님은 광복 후 관리를 하지 않은 유골들을 홋카이도, 오키나와, 규슈 지방 등 일본 각지에 흩어져 방치된 민단·총련 관계없이 조선인 희생자들의 유골을 모은 것이다.

일본의 3천개 사찰 중 한국 절은 소수로, 도쿄에 국평사와 만수사 그리고 6만 6115㎡ 부지의 고려사가 있고, 오사카에 통국사(옛 백제사로 조국 통일을 기원하는 절), 고베에 대승사가 있는데 절의 공통점은 조선인 희생자들의 유골을 모시고 있다고 한다.

국평사는 유종묵 스님의 제자 윤일산 스님이 해인사에서 정진하다 일본 유학 중 1930년에 유종묵 스님을 만나 제자가 되어 뒤를 잇고, 윤일산 스님의 자제 윤벽암 스님이 지금 주지로 유종묵 스님의 유지를 받들고 있다. 유종묵 스님은 통일이 되면 조국으로 유골들을 모시고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국평사를 없앤다’고 하셨다고 한다. 유종묵 스님은 스님이면서도 애국지사로 빼앗긴 조국, 짐승처럼 버림받은 조선인들을 한없이 사랑하며 분단된 조국의 평화통일을 위해 힘쓰다 입적하신 민족의 큰 스승이시다.

국평사로부터 무연고 33인의 유해를 모시고 온 봉안위는 서대문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에 임시 안치했고, 8월 15일 11시 광화문에서 ‘광복 72주년 일제강제징용 희생자 유해봉환 국민추모제’ 행사를 여는데, 이 행사에는 박원순 서울시장과 7대 종교 수장들과 각계각층의 국민들이 참석한다. 추모제를 마친 뒤 33구의 유해는 서울시립 승화원에 영구 안치된다. 이들이 그토록 바라던 조국, 광복의 땅에서 못난 후손들은 광복 72주년이 되도록 후손된 도리를 하지 못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강압에 의해 동원된 군인, 노무자, 위안부 피해자 등 약 200만명의 희생자 중 지금까지 일본 땅에서 그리운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천주의 한이 맺혀 구천을 헤매고 있을 100여만의 유해를 이제라도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해 이 분들의 사무친 원한을 풀어드려야 할 것이다.

봉안위로 국평사를 다녀오면서 세 번이나 눈물을 삼켜야만 했다. 나라 잃은 백성으로 살아서 버림받고 처절했을 삶, 죽어서는 방치돼 나뒹굴어야 했을 유해를 보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이러한 조선인 희생자들의 유해를 각지에 수소문해 고이 모셔준 뜨거운 동포애의 유종묵 스님께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유해를 모시면서 그토록 그리던 고향 땅에 여태껏 모셔오지 못한 죄스러움으로 또 눈물을 흘렸다.

일제는 1938년부터는 강제 징용을 합법화시켜 ‘국가 총동원법’ ‘국민 징용령’ ‘근로보국대’ 등을 편성해 식민치하의 조선인들을 강제로 끌고 가 도로, 철도, 비행장, 탄광, 신사(神社) 등에 강제노역을 시켰고, 일본 국내는 물론 사할린, 남양군도, 쿠릴열도, 오키나와 등에서 탄광, 광산, 교량, 군수공장에 투입하여 가혹한 노역을 시켰다. 일본인들에 멸시, 억압, 차별의 대상이 된 조센징은 사람이 아니라 짐승 취급으로 집단학살과 전쟁도구로, 병마와 굶주림, 지옥 같은 가혹한 노역의 현장에서 “어머니 보고 싶어요, 배가 고파요, 고향에 가고 싶다”는 글귀가 이들이 할 수 있었던 한계였을 나라 잃은 이 땅의 선조들이 당해야만 했던 끔찍한 아픔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것은 또다시 나라를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임을 비장한 마음으로 새겨 볼일이다. 관동대지진(關東大地震)때 자국민 불만 무마용으로 조선인 폭동날조를 퍼뜨려 조선인 6000여명을 학살한 사건, 최근 영화로도 상영된 군함도 사건, 광복 직후 징용 조선인 7000여명을 태우고 부산항으로 출항한 우키시마호 폭침사건(浮島丸號爆沈事件) 등 일본은 인간적 이성이 상실된 잔악한 만행으로 무고한 조선인들을 무참히 학살했고, 전쟁의 도구로 이용했다. 그동안 군인, 군속 유골 중 일부는 송환했으나 민간인 희생자들은 광복 72년에서야 비로소 고국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일제 때 강제 동원된 한국인들은 약 200만명으로 민간인 희생자 유골 송환은 이제 시작인 것이다.

광복 72주년을 맞이해 한일 두 나라 관계가 불행했던 과거로부터 벗어나 미래지향적으로 발전하고, 외세에 의해 분단된 민족의 아픔을 치유해 진정한 광복의 완성인 평화통일의 염원을 간절히 기원해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동북아 평화와 공동번영을 가로막는 일본 과거사 문제의 해결과 북한과 미국의 군사적 위협이 평화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먼저 일본은 과거 역사를 올바로 인식하여 침략행위와 식민지 지배에 대한 진정한 반성과 사죄의 토대위에 실질적인 조치로 독도 영유권 문제, 역사교과서 왜곡문제, 야스쿠니 신사참배, 일본군위안부, 무연고 강제징집유해 송환문제 등의 해결을 통해 우리 선조들의 억울했던 원을 풀어내어야만 진정한 한일의 상생 관계로 발전할 것이다.

‘광복 72주년 일제강제징용 희생자 유해봉환’을 통해 나라를 강탈하고 선량한 이 땅의 백성들에게 행한 침략자들의 잔악성과 비인간적 만행을 꾸짖고 탓하자는 것은 아니나 그들로 하여금 진정 마음속 깊은 사죄와 반성을 이끌어 내어 용서로 쌓인 원(冤)을 풀어내고 상생(相生)의 공존 미래를 열어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선조들의 처절한 아픔을 딛고 이 땅에 사는 후손이 결코 잊어서는, 일어나게 해서는 안 될 민족수난의 역사로 상기시킴과 동시에 이제 다시는 힘없는 나라의 처참한 비애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결기를 다져본다.

▲ 국평사 윤벽암 주지스님으로부터 유해를 모시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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