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눈 자리 그대

이수영(1953~  )

 

아버지 자리, 꽃눈 자리
암갈색 빈 가지에서 숨소리 들립니다
신생아 잠 같은 고단한 잠,
손사래 치는 어여쁜 손가락으로 문득
내 앞에 와 있군요, 그대
마알간 얼굴빛은 미리내로 은은하고
새의 혀끝으로 지금 막 말하기 시작하는
꽃눈 자리 그대.

 

[시평] 

아버지께서 이제 연세가 높아 노환으로 누워계신다. 사람은, 아니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가게 되면 늙고 병들고, 그래서 옴짝도 못하고 누워만 있다가는 그렇게 가는 것이지만, 가는 것이지만. 그래도 아버지만큼은 그렇지 않으시리라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저렇듯 꼼짝도 못하시고 누워만 계시는구나. 

그 아버지가 누워계신 자리는 꽃눈 자리, 암갈색 빈 가지에서 숨소리 들리는 듯한 그러한 자리. 아버지 지금 손사래 치는 어여쁜 손가락으로 문득, 이렇게 내 앞에 와 계시는구나. 마치 신생아의 깊은 잠 마냥, 깊고 깊은 잠에 빠지신 아버지. 마알간 얼굴은 저 밤하늘에 흐르는 은하수 마냥 은은하기만 한데, 이제 막 말을 하기 시작하는 신생아 마냥, 아버지는 새의 혀 같은 작은 입술, 다만 그렇게 달작일 뿐이로구나.

아버지, 이러한 모습으로 내 앞에 누워 계시는 아버지. 자라서 꽃이 될, 그 꽃눈의 자리로 계시는 아버지. 아버지 이제 새로운 꽃으로 그렇게 내 앞에서 피어나시고 계시는군요. 망연히 서 있는 내 앞에서, 아버지 그렇게 이제 마악 새로운 꽃으로 피어나시는군요.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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