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국회 본회의에서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이 부결됐다. 293명 의원들이 행사한 투표에서 과반수(147표)에 2표 모자라는 결과로 헌법기관의 수장 임명이 또 시간을 끌게 됐고, 문재인 정부의 인사 구상이 또 한번 흐트러지게 됐다. 여소야대가 보여준 현상이긴 하지만 여당인 민주당의 원내 전략과 청와대의 판단이 보다 정확했더라면 이와 같은 초유의 사태가 예방될 수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헌법기관 기능의 비정상화는 여권의 책임이 크다.

김이수 헌재소장 임명 불발에 대해 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 야3당은 공조 연대에서 자기들의 셈법이 맞았다고 안도하는 가운데, 정부·여당 내에서는 후폭풍이 몰아치고 있다. 이번 헌재소장 임명 불발 사태의 일차적인 책임은 어디까지나 여당에게 있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과반수 통과에 모자라는 표를 야당에서 끌어와야 하는 현실에서 철저하게 표 계산하지 않고 정세균 국회의장에게 직권상정을 요구했으니 유구무언(有口無言)이 딱 맞을 법하다.

국회는 정치의 장(場)이다. 임명동의안 처리도 마찬가지다. 헌재소장 후보자 임명동의 처리를 두고 여야 원내대표들은 여러 차례 협상을 벌였다. 여의치 못해 민주당은 국민의당에 협조를 부탁했고,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더 이상 인사 참사는 안 된다, 협치를 보이라며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에게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임명 철회와 말썽 많고 자격 없는 식약처장 해임을 요구했다. 우 원내대표가 그 내용을 청와대에 전달해 국회 본회의 개회시간까지 답하기로 약속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던지라 국민의당에서는 자율 투표 방침을 정했던 것이다.

헌재소장 후보자의 면면에 대해 야당의원들이 부적격 인사로 보았기 때문에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건 사실이다. 헌법기관 구성이 늦어지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정부인사에 대한 임명동의 권한은 전적으로 국회의원에게 있다. 그 결과를 두고 여당이 원내 전략에 대한 성찰 없이 야당을 비난하는 건 정도(正道)가 아니다. 그간 문재인 정부의 코드 인사가 국민에게 어떻게 각인됐으며 야당과의 협치 문화가 제대로 작동된 것인지를 생각해보면 헌재소장의 임명 불발을 남의 탓으로 돌릴 게 아니다. 정부·여당은 이번 기회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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