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수정 한베평화재단 상임이사가 지난 7일 서울 성동구 옥수동에 위치한 재단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구수정 한베평화재단 상임이사 인터뷰

개인·민간 차원에서 끌고 가기 벅차… 재단 설립 결심
“어느덧 50대… 20년 가까이 베트남전 진실 규명 작업”
평화 공로로 ‘제1회 길원옥 여성평화상’ 수상자로 선정
“평화기행 참가자들, 재단 출범에 물심양면으로 큰 힘”
내년 4월 서울 또는 제주서 국가 상대로 시민법정 예정

[천지일보=유영선 기자]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문제는 과거사 문제인데 개인이나 민간 차원에서 해결까지 풀어나가기에는 벅찬 문제잖아요. 조직의 틀이 없이 이 문제를 오랫동안 지속 가능하게 이어가기에는 한계를 많이 느꼈어요.”

구수정 한베평화재단(이사장 강우일 천주교 제주교구장) 상임이사는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재단을 출범하게 된 배경을 이같이 설명했다.

구 상임이사는 “제가 이 문제(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를 만났던 때가 30대 초반이었는데 어느덧 50대가 됐다”며 “20년 가까이 이 문제를 끌어안고 있는데 제 개인이 계속 이어갈 수는 없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1999년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사건을 한국 사회에 알리면서 베트남전의 진실 규명을 위한 작업을 진행해왔다. 구 상임이사는 20년 가까이 베트남 현지에서 사회적 기업 ‘아맙’을 통해 피해자 지원, 위령비 건립, 의료봉사 등 한국과 베트남을 잇는 다양한 평화교류 역할을 하다가 올해 귀국했다.

그는 지난 7월 2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제1294차 수요집회’에서 제1회 길원옥 여성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현재 구 상임이사는 오는 18일 열릴 한베평화재단 출범식 준비로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올해 2월 재단 설립 인가를 받은 한베평화재단은 한국군이 저지른 베트남 민간인 학살의 진실을 규명하고 진정한 사과와 반성을 통해 화해로 나아가자는 취지로 창립됐다.

구 상임이사가 재단 출범을 계획한 것은 지난 2015년이다. 그해는 베트남전쟁 종전 40년, 한국군 전투병 파병 50년으로 베트남 언론이 한국군에 대해 주목하는 등 변화의 조짐이 있었다고 구 상임이사는 밝혔다. 그는 “베트남 역시 분단을 경험했고, 그것을 전쟁이란 무력을 통해 극복한 만큼 민족의 통합이 최우선이었다”며 “30~40년간 어느 정도 통합을 이뤘고, 언론의 논조에 변화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과거사를 닫고 미래로 가자’에서 ‘과거를 망각하고 잊겠다는 것이 아니다’로 베트남 언론의 논조가 바뀌면서 한국과 베트남 간의 과거사 문제의 뚜껑이 열리기 시작했다는 것을 직감했다는 게 구 상임이사의 설명이다. 이에 그는 “한국 사회도 이 과거사 문제를 베트남과 풀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단체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고 말했다.

한베평화재단은 이달에 정식 출범하지만, 1999년부터 지속해온 ‘미안해요 베트남’ 운동을 계승하고 있다. 구 상임이사는 “이미 한국 사회에서 주목을 받고 있고, 언론의 노출도 많았고, 사업과 활동을 활발하게 진행해왔다”며 “출범식을 한다니깐 주변에서 뜬금없다는 반응”이라고 웃음 지었다.

▲ 구수정 한베평화재단 상임이사가 지난 7일 재단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한 뒤 ‘미안해요 베트남’이란 엽서가 붙어 있는 벽면 앞에서 재단 브로셔와 제1회 길원옥 여성평화상 트로피를 들고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그는 지난 2000년부터 베트남 사회적기업 ‘아맙’을 통해 수백 회가 넘는 평화기행을 진행하면서 베트남전의 진실을 지속해서 알려왔다.

베트남 평화기행의 시작은 일본의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만든 ‘피스보트’라는 국제비영리단체로부터 비롯됐다. ‘피트보트’는 1982년 한일 교과서 파동을 계기로 일본에서 배운 역사가 사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문을 가진 일본의 젊은이들이 직접 현지에 가서 역사문제를 확인해보자는 것이 결성의 시작이었다.

이처럼 베트남 평화기행도 한국군이 베트남전에서 범죄를 저지른 사실을 알게 되면서 현지에서 직접 대면하는 과정을 겪는 것으로 1999년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베트남 평화기행에 다녀간 한국인이 수천명에 달한다.

특히 수많은 평화기행 참가자들은 이번 한베평화재단 설립에 큰 힘이 됐다. 구 상임이사는 “한베평화재단을 통해 마음의 빚을 갚고 싶다는 많은 분이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베트남 평화기행을 다녀오면 우리의 과거를 대면하는 순간들이 강하게 남는 것 같다”며 “가해자의 입장에서 피해자를 만나는 것이 흔한 경험은 아니다. 어떤 분은 15년 전 잠깐의 경험으로 아낌없이 재단을 후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한베평화재단은 지난 4월 26일 제주 서귀포시 강정마을의 성프란치스코 평화센터에 한국군에 살해당한 아기와 엄마를 상장하는 조형물인 ‘베트남 피에타’ 동상을 세웠다. 베트남전 종전 42주년을 맞아 베트남전에서 한국군에 희생된 어머니와 아기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동상으로, 위안부 소녀상을 만든 김서경·김운경 작가가 제작했다.

어머니가 아기에게 자장가를 불러주는 모습으로 ‘베트남 피에타’의 베트남어 이름은 ‘마지막 자장가’이다. 1966년 청룡부대가 남베트남 꽝응아이성 빈호아에서 자행한 학살이 ‘마지막 자장가’ 제작의 배경이 됐다. 당시의 학살로 발생한 희생자는 430명이었다. 구 상임이사는 “앞으로 베트남과 서울에도 ‘베트남 피에타’ 동상을 세울 계획”이라며 “최근에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베트남 대사관을 방문해 대사를 만나기도 했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군에 의해 희생된 베트남전 민간인 사망자는 90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져졌다.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 학살은 80여건으로, 전투부대가 파병된 1966~68년 사이에 집중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아직까지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에 대해 인정하지 않고 있다.

현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산하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TF’는 국가를 상대로 시민 법정과 소송을 준비 중이다.

구 상임이사는 “내년 4월 피해자들을 모시고 서울이나 제주에서 시민 법정을 개최할 예정”이라며 “한국군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사건에 대해 20년간 얘기해왔지만, 아직 모르는 분들이 많아 로고송도 만들고 전 국민 캠페인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한베평화재단은 오는 18일 출범식에 이어 다음 날인 19일 2시에는 ‘만만만 캠페인’ 선포식을 개최한다. 만만만 캠페인은 ‘만일의 전쟁, 만인의 희생, 만인의 연대’를 뜻한다.

구 상임이사는 “한국군이 베트남전에 보내진 과정 자체가 국가의 폭력이었다. 이들은 사람들을 죽이고 불태우라고 국가에 의해 보내진 것”이라면서 “이 과정에서 일어난 민간인 학살이나 전시 성폭력 등 여러 가지 문제들은 결국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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