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이 지난 5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학교 성교육 표준안’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인터뷰
청소년 성문화센터 다수 있지만 협업·연대 없어
교육부에 표준안 폐기 요청하고 정책 제안서 제출

[천지일보=강병용 기자] “교육부의 학교성교육표준안은 학생을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는 한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2015년 교육부는 연령대별 성교육 체계화를 목적으로 성교육 표준안을 마련했다. 표준안에는 ‘여자는 무드에, 남자는 누드에 약하다’ ‘성폭력을 예방하려면 단둘이 여행을 가지 않는다’ 등 왜곡된 성인식과 잘못된 성폭력 대처법이 담겨 논란이 일었다.

이후 수정된 성교육 표준안을 바탕으로 초·중·고교 성교육자료와 교사지도서가 만들어졌지만 여전히 성폭력 피해자에게 원인을 돌리는 ‘피해자 유발론’ ‘미혼모·미혼부 폄하’ 등이 실려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본지는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 근처 한 카페에서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을 만나 학교성교육표준안과 관련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 소장은 2015년에 인권단체이자 교육단체인 한국다양성연구소를 설립하고 다양성·인권 연구, 정책제안, 권리옹호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다양성 전문교육기관이기도 한 한국다양성연구소는 인간의 다양한 사회적 정체성과 사회적 특권·억압에 대한 연구·교육·캠페인 등을 진행해 사회구조와 문화의 근본적인 변화를 유도한다.

김 소장은 성교육표준안이 학생을 ‘독립적인 주체’ 즉 ‘존엄한 개체’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건 맞고 저건 틀리다’를 애초에 정해서 가르쳐주고 모든 것을 정해놓고 규범 내에서 획일화해서 알려주는 방식이 첫 번째로 잘못된 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학교 성교육뿐 아니라 모든 교육 전반에서 일어나는 주입식 교육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는 또 국가차원의 학교성교육표준안이 누가, 왜, 어떤 요구에 의해서 만들어졌는지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김 소장은 “교육부 국정과제팀의 학생건강정책과에서 국정성교육표준안을 담당했지만, 여러 가지 비밀에 부쳐져 있다”고 설명했다.

김 소장은 “많은 청소년 성문화센터가 있는데 그런 곳과는 협업과 연대조차 없었고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나 기존에 성교육·성문화를 담당했던 곳과도 별개로 진행됐다”고 말했다.

▲ 한국다양성연구소 활동 모습. (제공: 한국다양성연구소) ⓒ천지일보(뉴스천지)

앞서 김 소장은 지난달 11일 세종정부청사 교육부에 찾아가 학교성교육표준안 폐기를 요청하고 정책 제안서를 전달·제출했다.

김 소장의 제안서에는 ▲아동·청소년들도 자신의 신체와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는 주체로 인정할 것 ▲무조건적인 금욕주의 교육이 아니라 학생 스스로 성적 결정권을 가진 주체인 점을 인정할 것 ▲모든 성소수자들을 포함한 교육을 할 것 등 가이드라인이 제시됐다.

대학교와 사회복지센터에서 인권교육을 하는 김 소장은 학교성교육으로 성소수자들이 차별받지 않는 평등한 사회가 만들어지도록 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김 소장은 예비 교사나 현직 교사에게도 차별금지 교육을 실시해 학생이 성숙한 성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학교뿐 아니라 직장 등 전 영역에 걸쳐 차별하는 내용이나 혐오 섞인 표현이 오가는 것은 잘못됐다며 이를 바로잡기 위해선 차별금지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차별금지법 제정은 가해자 처벌을 목적으로 하는 것보다 사람들이 처벌을 받지 않기 위해 사전에 조심하도록 하는 교육적인 측면이 더 크다”며 “이 법을 바탕으로 여성·성소수자·장애인 등 모두를 포함하는 성교육이 실시된다면 학생과 교사에게도 교육적 효과가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김 소장은 앞으로도 우리사회가 다양성이 인정되는 사회로 변화하기 위한 법과 제도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캠페인과 교육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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