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세계 최강 인물의 빈정대는 말솜씨도 그야말로 최강이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유엔이 금지한 핵실험과 핵을 실어 나를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를 계속하는 김정은을 ‘로켓맨(rocket man)’이라 딱지 붙였다. ‘로켓맨’이 누구라고 콕 집어서 말하지 않아도 그게 누구를 말하는지는 세상 소식에 ‘먹통’이 아니라면 금방 안다. 그리고 실로 트럼프의 ‘딱지’ 붙이는 솜씨는 감탄을 자아낼 만하다. 마키아벨리즘(Machiavellism)에 흠뻑 젖은 정치인들도 따라 잡기 어려운 솜씨다. 더구나 김정은을 빈정대는 이런 연설이 세계의 각국 원수들과 외교 수장들이 모여 경청한 유엔총회장에서 공개적으로 나왔다. 물론 그가 처음 쓴 표현은 아니었지만 연설 자리가 자리였던 이상 파장은 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김정은도 닭싸움 하듯 트럼프를 빈정대왔지만 그의 솜씨는 트럼프의 그것에 비해 조족지혈이다. 트럼프는 그 김정은을 빈정댄 이번 유엔 연설에 엄청난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무진이 초안을 잡아온 연설문안을 꼼꼼이 들여다보고 손질했으며 잔 워딩(wording)까지도 직접 고쳤을 정도라고 했다. 그러니 연설의 무게감이 더욱 느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연설에서 트럼프는 김정은이 들어 모골이 송연해질 것으로 짐작되는 무시무시한 위압적 수사(修辭)를 거침없이 쏟아내었다. 평소 언행으로 보아 김정은이 진짜 겁이 없는 건지, 없는 척 하는 건지는 몰라도 정신이 멀쩡한 사람이라면 모골이 송연하지 않다면 그것이 이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트럼프는 말하기를 “북한은 전 세계를 위협하는 타락한 정권”이라며 그 북이 “미국과 동맹국을 위협한다면 북을 완전히 파괴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정은은 “자살임무를 수행 중(on a suicide mission)”이라고 촌철살인(寸鐵殺人)식 수사를 구사했다. 그 자리에 있던 북한 대사는 초반에 일찌감치 뭔가를 예감했듯 자리를 떠버렸지만 그 자리에 남아 경청하던 인사들의 표정이 돌연 긴장하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연설의 무게감 때문이다. 

트럼프의 연설이 끝나자 숱한 논평자들은 트럼프 연설의 엄중한 깊이와 무게를 재어 볼 생각보다는 연작(燕雀)과 같은 구변으로 입방아들을 찧기에 바빴다. ‘평화적인 해결 방법을 외면하고 정말 전쟁을 하겠다는 것이냐’ 또는 ‘협상은 물 건너 간 것이냐’ ‘연설이 너무 위협적이지 않느냐’는 등 그들의 의견은 가닥을 잡을 수 없을 만큼 어지럽다. 심지어 중국이 제안하고 있는 ‘북은 핵실험을 않는 대신 남은 한미군사훈련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는 이른바 인과(cause and effect)가 도치된 쌍중단(雙中斷)과 같은 반쪽짜리 협상안에 호감을 갖는 국내 인사들도 입을 열었다. 핵을 가진 뒤부터 북은 ‘서울을 단숨에 타고 앉아 남을 어떻게 해버려야 한다’며 부쩍 무력통일을 더 떠들어댄다. 이런 마당에 미군 철수를 배경에 깔고 있는 ‘쌍중단을 놓고 협상하는 것은 북의 무력통일 노선에 양탄자를 깔아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이는 철저히 북과 중국의 국익에 편중된 협상안이지 한미가 받아들일 협상 테마(theme)는 못 된다는 것이 자명하다. 

전쟁과 평화는 동전의 앞뒷면과 같이 항상 동시에 만져진다. 또한 평화는 공짜가 아니다. 그렇더라도 무력이나 전쟁의 공포가 평화를 지켜주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irony)다. 지구상 핵강대국들이 가진 핵 무력은 전 인류 한 사람 한 사람을 10번 죽이고도 남을 정도라 한다. 얼마나 무서운가. 이런 공포가 작은 전쟁이 없는 것은 아니로되 도리어 큰 전쟁은 막아 지구에 비교적 긴 평화를 가져왔다. 이래서 전쟁이나 전쟁에 관한 협박은 한쪽의 준비없는 취약성과 유약성이 불러온다고 봐도 무방하다. 어떻든 이런 인식을 토대로 누가 전쟁을 말한다고 해서 꼭 전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며 그렇다고 평화를 말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꼭 전쟁을 모르는 평화 추구자만은 아니다. 한마디로 전쟁은 그때그때의 상황(situation)이 만든다. 그렇게 볼 때 북의 김정은이 유엔과 세계의 만류에도 아랑곳없이 핵과 대류간탄도미사일을 갖고 놀기를 즐기며 그것으로 미국과 한국 일본을 향한 위협의 강도를 높여가는 지금 상황은 아주 위험하다. 트럼프의 유엔 연설에 때맞추어 매티스 미국 국무장관이 “서울에 중대 위험이 없는 대북(對北) 군사 옵션(option)이 있다”고 밝힌 것도 심상찮다. 곧 무슨 일이 터지고야 말 것 같은 불안감을 아주 떨쳐버리기는 쉽지 않은 마당이다. 

그렇긴 하지만 공은 김정은에게 넘어갔다. 그가 정말 핵 집착을 버리지 않는다면 군사력 사용이 없다고 장담하기가 어렵다. 국내의 어떤 사람들은 미국이 끝에 가면 절대로 전쟁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대북 압박보다는 대화를 해야 한다고 엇박자를 놓고 있다. 그렇지만 그 사람들인들 무슨 수로 족집게처럼 앞일을 짚어낼 수 있는가. 손에 장이라도 지질수 있는가. 

그런데 이렇지 않은가. 북은 핵무력 완성을 위해, 미국과 유엔은 그것을 저지하기에 시간이 없으며 초조하다. 피차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한마디로 전쟁이냐 평화냐의 갈림길에 봉착했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미국은 군사옵션을 실행할 준비를 마쳤다고 봐야 한다. 트럼프는 유엔 연설에서도 미국 최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외쳤다. 무슨 말인가. 미국이 위협받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말이다. 이쯤 되면 이제는 김정은이 마음을 돌려 결단해야 할 때다. 전쟁과 평화가 그의 하기에 달렸다. 

사실 트럼프 연설에서 얼마간의 전율이 느껴지지 않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트럼프의 전율할 연설이 꼭 전쟁을 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면 그것 또한 나이브(naive)한 것이다. 그의 연설이 강한 만큼 전쟁 없는 북핵 문제의 해결, 전쟁 없는 평화에 대한 열망도 그만큼 강하다고 봐야 합리적이며 이성적인 해석이 아닐 것인가. 누가 전쟁을 좋아하는가. 이런 취지에서도 김정은이 미국이라는 바위에 계란 던지지 말고 제발 냉정해져야 한다. 이렇든 저렇든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자강(自强)노력이 가장 절박하며 입방아보다는 전쟁도 대비하고 평화도 대비하는 철저하고 실질적인 준비라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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