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철 한국기술금융협회 IT 전문위원

 

1970년대 이전의 영한사전에서 ‘프로토콜(Protocol)’의 의미를 찾아보면 ‘의례’ ‘관습’ ‘조약’ ‘실시요강’ 등으로 번역돼 있는데, 이후 컴퓨터가 보편화되고 이들 간의 통신을 위해 구성된 네트워크인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통신규약’이라는 사전적 의미가 추가됐다. 이제 프로토콜이란 단어는 외교적 용어라기보다는 ‘통신회선을 이용해 컴퓨터 간 혹은 컴퓨터와 단말기계 간의 데이터를 주고받기 위해 정한 통신규약’이라는 정의를 가지고 있는 통신기술 용어로 더 많이 이해되고 사용되고 있다.

국가 간 관계에서 상호 국가에 파견, 상주하는 대사는 파견 전에 동의라는 의미의 영어 ‘Agreement’의 불어인 ‘아그레망’을 받고서야 해당국에서 자국을 대표하는 대사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되는데, 컴퓨터와 컴퓨터 간의 데이터 교환도 이와 마찬가지 과정을 거쳐 통신하게 되며, 데이터를 수신할 때 수신 컴퓨터의 데이터 입력 동의를 얻고서야 자신이 보내려는 데이터를 상대방에 보낼 수 있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신의(信義)’이듯이 기계 간의 통신교환을 위해서도 기기 상호간의 합의에 의해 이루어지며, 감성과 이성을 갖추고 있지 않은 기기들 간의 통신을 위해서는 통신을 통제하는 규칙을 모아놓은 규약, 즉 프로토콜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즉 기기 상호간 무엇을 주고받을 것이며, 어떻게 그리고 언제 통신할 것인지를 정의해 놓은 규약이 바로 프로토콜인 것이다.

컴퓨터는 ‘1’과 ‘0’의 비트로 이루어진 정보를 저장, 송·수신, 계산 및 분석 등 작업을 하는 기기이며, 컴퓨터 간의 통신을 ‘데이터 통신’이라고 하는 것은 대다수 독자들도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다. 컴퓨터는 CPU, 메모리, 미들웨어, 디스플레이, 소프트웨어 등 여러 부품들로 구성돼 있으며, 이들은 제조사마다 각각 자사의 장점을 강조해 생산된다. 또한 컴퓨터에는 자사 제품들 간의 통신을 위해 프로토콜을 심는데, 여기서 각 사의 프로토콜이 다를 경우 이종 제품들 간의 데이터통신이 곤란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즉 각 기업이 독자적으로 개발하고 제품화해 생산한 컴퓨터 등 정보처리기기나 소프트웨어 간의 상호 운용성이 제한된 상태에서는 광대역 정보처리망의 구축이 불가능해 정보기기의 범용성 및 확장성에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표준화기구인 ISO는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의 논리상의 변경 없이 서로 다른 시스템 간의 통신을 개방시키고자 하는 목적으로 개방형 시스템 상호 연결(OSI; Open Systems Inter-connection) 모델을 제시했다. 이는 20세기 중반을 거치면서 급속도로 발전하는 기술 개발 시대에 있어서 본사, 공장, 학교, 연구기관 간 상호 지속적인 실시간 온라인 교류가 필요했던 시점에서, 각 컴퓨터 제조업체의 독자적 망 구조 하에서는 이종 장비들 간의 상호접속이 곤란하다는 현실을 극복하고자 제안된 방안이었던 것이다.

아울러 제조업체의 벽을 초월한 시스템 간의 상호접속은 국내적, 국제적 표준방식 수립이 기본 사항이었으며, 기능적으로도 기본적인 통신에서부터 고도의 데이터교환까지 가능해야 했기 때문에 전 세계 국가 및 주요 IT업체들이 참여해 만든 OSI모델 제정은 필수 불가결한 산물이었던 것이다. 결국 OSI 제정은 인터넷 탄생의 중요한 계기를 제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같이 모든 종류의 컴퓨터시스템 간의 통신을 허용하는 네트워크 설계용 계층구조인 OSI모델은 물리층부터 응용층까지 총 7개 계층으로 구성돼 있는데, 각 계층들은 데이터 통신이 이루어지는 기기의 동일한 부분을 대등하게 연결해 데이터를 주고받게 된다.

통신 프로토콜에 의해서 협약된 규칙과 규약에 의해 동일한 계층 부분이 제어되는 이러한 프로세스를 대등 프로세스(peer-to-peer process)라 한다. 제 1계층인 물리층은 광케이블과 같은 물리적 매체를 통해 비트 흐름을 전송하기 위한 기능을 조정하는데 만약 장치 A에서 장치 B로 비트를 순서대로 보낼 경우, 송신하는 장치 A는 응용계층인 7계층에서 정보를 생성하고 비트화해 역순으로 내려가 최종 1계층인 물리층에서 비트를 정리하여 수신장치인 B에게 보내고, 수신측 B에서는 A와 역순으로 1계층에서 비트를 받아 2계층부터 순서대로 최종 7계층에 비트를 전달해 정보를 확인할 수 있게끔 하는 과정이다. 사람이 만든 컴퓨터 또한 사람 간의 소통과 같이 절차와 의식이 기반이 돼 소통이 이루어지게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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