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개가 짖어도 열차는 달린다.” 북한이 우리 한국이나 미국을 비난할 때 흔히 쓰는 말이다. “김정은이 버티어도 통일은 온다.” 이 말은 어떤가? 북-미 간의 말폭탄과 군사경쟁이 시간이 흐를수록 점입가경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북한의 완전 파괴’를 언급하자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국무위원장 김정은’ 명의의 성명에서 ‘사상 최고의 대응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위협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은 미치광이(madman)”라며 “이제까지 겪어보지 못한 시험에 들 것”이라고 격하게 반응했다. 미국과 북한의 지도자가 UN이란 국제회장으로 그라운드를 옮겨 육성으로 ‘말폭탄’을 주고받는 초유의 상황이다.

김정은의 성명은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2일(한국시간) 뉴욕에서 오찬회동을 하면서 ‘최고 강도의 압박’을 다짐한 날 나왔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김정은 동지께서 북한의 완전 파괴를 언급한 미 합중국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과 관련해 21일 당 중앙위원회 청사에서 성명을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22일자 노동신문 1면에는 마이크 앞에 앉아 성명을 읽는 김정은의 사진도 실렸다. 북한 역사상 최고 지도자 김정은이 자기 명의로 성명을 낸 건 처음이다. 아버지 김정일이나 할아버지 김일성도 본인 명의로 성명을 낸 적은 없다.

더욱이 김정은은 ‘국무위원회’라는 국가 최고기관의 위원장 자격을 부각했다. 주목되는 것은 국무위원장의 권한이다. 국무위원장은 다른 나라와의 조약 비준·폐기권, 국가의 전시상태 선포 등의 권한을 갖고 있다. 북한 관영 언론들은 22일 일제히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성명’ 발표 소식을 톱뉴스로 내보냈다. 북한 언론들은 김정은의 직책을 “조선노동당 위원장,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우리(북한) 당과 국가·군대의 최고영도자”로 소개했다. 이전과 같은 순서였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에서 주석단 발표 순서는 형식상 권력 서열을 의미한다”며 “김정은의 직책을 언급하는 순서 역시 내부적인 중요도를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당 우위 국가인 북한에서 법·제도적으로도 노동당 위원장이 가장 비중이 크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북한이 이날 공개한 김정은의 성명은 노동당 위원장이 아닌 국무위원장 명의였다. 노동당 위원장은 북한 내부적으로 가장 무게를 두는 직책이고 사회주의권 국가들끼리는 인정을 받을 수 있지만, 대외적인 직함으로는 한계가 있어 2000년과 2007년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노동당 위원장의 전신) 대신 국방위원장(국무위원장 전신)을 사용했다. 북한이 최고지도자의 직책으로 첫 성명을 내면서 내부적인 격(格)은 오히려 노동당 위원장보다 낮지만 미국이나 국제사회를 의식해 국무위원장을 선택했다는 분석이다. 국가를 대표하는 국무위원장 자격으로 국제무대에 나선 셈이다.

북한은 2016년 6월 헌법 개정을 통해 국무위원회를 신설하고 국무위원장을 “최고영도자”(100조)로 규정했다. “인민무력의 최고사령관이자 국가의 일체 무력을 지휘통솔”(102조)하는 역할도 줬다. 특히 북한은 국무위원장의 임무와 권한(103조)에 대해 ▲국가의 전반 사업 지도 ▲국가 중요 간부 임명 또는 해임 ▲외국과의 조약 비준·폐기 ▲비상사태와 전시상태, 동원령 선포 ▲전시 국가방위위원회 조직 지도로 명기했다. 국가의 수반으로 대통령제 국가의 대통령과 유사한 임무다. 특히 국가 무력을 관장하는 헌법 조문을 고려하면 이날 미국을 향한 군사적 위협을 언급한 성명을 실행하는 군 통수권자의 의미도 있다는 평가다.

이런 권한을 과시하듯 김정은은 성명에서 “사상 최고의 초강경 대응조치 단행을 심중히 고려할 것”이라며 “미국 통수권자의 망발에 대한 대가를 반드시 받아낼 것”이라고 했다. 자신을 ‘로켓맨’으로 지칭한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김정은은 “트럼프가 그 무엇을 생각했든 간에 그 이상의 결과를 보게 될 것”이라며 “미국의 늙다리 미치광이(dotard)를 반드시 불로 다스릴 것”이라고 맞받았다. 대북 소식통은 “북한 입장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최고 권위의 국제무대인 유엔에서 발언한 만큼 대외적으로 국가를 대표하는 최고위급인 국무위원장 자격으로 맞서는 것이 격이 맞다고 인식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정은이 언급한 사상 최고의 대응 조치가 무엇이 될지 주목된다. 이수용 외무상 말대로 태평양을 향해 수소폭탄을 쏴 해상실험을 하겠다는 것 같은데 이는 김정은 정권의 자멸로 이어질 수 있다. 김정은 정권의 자멸이 빠를수록 통일도 빨라진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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