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5일 만난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가 작년 11월 말 시행된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의료분쟁조정법)’의 효과와 개선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 인터뷰
의료진에 의한 진료기록 임의 수정·변경 만연… 확인 어려워
분쟁 시 의료사고 당사자에 불리… “환자중심 의료법 시급”

[천지일보=강병용 기자] “그 법(의료분쟁조정법)이 빨리 도입됐더라면 그 당시 예강이 사건도 ‘의료분쟁 조정’이 자동개시 됐을거에요. 병원 측이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중재원) 조정을 거부한다 해도 중재원이 작성한 감정서를 가지고 재판을 진행해 이미 끝났을 겁니다.”

지난 2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 연세암병원의 인근 카페에서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를 만나 작년 11월 말 시행된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의료분쟁조정법)’의 효과와 개선점에 대해 들어봤다.

의료분쟁조정 자동개시에 관한 ‘의료분쟁조정법’은 도입 당시 의료계가 크게 반발했지만 시행 10개월이 지난 지금 의료분쟁조정 자동개시제도는 피해자 구제에 효과적이라는 평가다.

보건의료정책과 환자중심의 의료환경을 위해 힘써온 한국환자단체연합회(연합회)는 지난 2010년 10월에 출범한 단체다. 안기종 대표가 이끄는 연합회는 환자단체 연대체로 한국백혈병환우회, 한국신장암환우회,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 한국다발성골수종환우회, 한국GIST환우회, 한국HIV/AIDS감염인연대 ‘카노스’, 암시민연대 등이 함께한다.

또 환자중심의 보건의료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질병, 이념, 국경을 넘어선 환자 복지·권리 증진 운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안 대표는 그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안 대표는 “과거 예강이 문제로 기자회견을 했을 당시 예강이 사건의 진실규명과 의료분쟁조정 절차가 자동으로 개시되지 않았다”면서 “병원이 중재원 조정을 거부해 각하됐다. 그렇기에 이 제도를 개선해달라는 운동과 의료사고 관련자들을 고발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법이 개정됐다”고 말했다.

앞서 언급한 예강이 사건은 지난 2014년 1월 23일 전예강(당시 9세)양이 코피가 멈추지 않아 찾은 서울의 유명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사망한 사건이다. 긴급 수혈 등을 통해 생체 징후를 교정한 후 검사를 해야 했지만, 병원 측은 숙련이 덜 된 레지던트 1·2년차 2명을 통해 허리뼈에 주사바늘로 척수액을 꺼내는 요추천자 검사를 했다. 마취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40분 동안 5회에 걸쳐 요추천자 시술을 했지만 시술은 모두 실패했고 그 사이 예강이는 쇼크로 사망했다.

안 대표는 의료분쟁조정법을 설명하면서 환자의 의무기록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의무기록부에 사실이 기록돼야 하는데 의료진들이 임의로 수정하는 것에 대해 개선책이 마련돼야 한다”며 “근본적으로 진료기록부가 제대로 돼있지 않으면 분쟁조정 자동개시나 법원의 재판도 소용없다”고 토로했다.

안 대표는 예강이 사건을 예로 들며 “예강이의 수혈시간과 분당 맥박 수 관련 진료기록 등이 허위로 기재돼 있었다. 결국 그것을 가지고 중재원에서 감정을 해도 의료사고를 당한 피해자나 가족들은 불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한국환자단체연합회가 지난 25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연세암병원 앞에서 ‘의료법 개정안 신속 국회 통과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진료기록부는 의료사고 발생 시 의료인의 과실과 의료사고로 인한 환자의 상해·사망 등의 피해와 의료행위 간의 인과관계를 입증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다. 하지만 의료기관은 관행적으로 이를 수정하고 있으며 환자가 열람이나 사본 교부를 요청할 경우 법적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수정 후의 기록만 열람 또는 사본을 교부해 문제라는 것이다.

또 전자의무기록을 수정·변경할 시에 접속기록이나 변경내용을 별도로 작성하거나 보관하는 것이 의무화돼 있지 않는 점도 지적했다.

안 대표는 “의료사고가 발생 시 의료인이나 의료기관 책임자는 사고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임의로 진료기록을 수정·변경하는 경우가 있다”며 “환자나 환자가족 등이 의무기록을 보려 하면 소송을 제기해야 하거나 고소 후 압수수색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더불어민주당 인재근 의원이 발의한 의료법 개정안 법안이 통과되면 의료인이나 의료기관 개설자가 진료기록부 등에 추가기재·수정을 하는 경우 그 원본과 추가기재·수정본을 함께 보존하도록 하고 환자의 열람 요청이 있는 경우 이에 응하도록 해 의료분쟁 해결과정에서 진료기록부가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의료사고 피해자들 대부분은 많은 비용을 들여 변호사와 함께하던지 혼자서 해결하려고 하는데 의료사고 피해자들이 모여서 서로 돕고 참여하는 네트워크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 의료계에선 환자 중심의료를 한다지만 미진한 면이 있다. 환자의 목소리를 잘 전달할 수 있는 단체로서 보건의료제도의 사각지대에 있는 환자들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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