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시국을 무엇에다 비유할꼬. 앞이 잘 보이지 않아 답답하기만 한 안개 자욱한 어느 날이라고나 할까. 그래도 국민들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채, 잘 포장되고 미화된 웃음과 미사여구에 손에 잡히지 않는 막연한 기대감과 함께 그저 의미도 모를 웃음의 포로가 돼있을 뿐이다. 이를 일컬어 앞날을 예단할 수 없는 ‘안개정국’이라 비유하던가.

국내 정치상황과 한반도 위기 상황은 너무나도 닮아 있다. 국내 정치와 경제와 군사안보의 현재와 미래는 과거라는 마술에 걸려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적폐청산’이냐 ‘정치보복’이냐를 놓고 한 치의 양보 없이 일진일퇴하며 국정의 발목을 잡는 괴상한 마술에 걸려 국민들은 분별력마저 잃게 된 채, 그저 내편과 네 편의 입장에만 골몰한 이상한 나라가 돼 가고 있다. 국론은 갈수록 분열돼 가고 있으며, ‘댓글’이라는 무기는 과거 정권에서와 같이 정의와 진실을 좀먹는 호위무사가 돼 정부의 방패역할을 톡톡히 해 내고 있다. ‘내가 하면 사랑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괴이한 논리는 현 정권의 트레이드마크가 될 공산이 커 보인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당국의 입장에서는 국민과 소통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국정전반에 있어 현실과의 지나친 괴리(乖離)와 국민들을 혼동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또 과거 정부의 실정(失政)으로 인한 반대급부(反對給付)에 지나치게 취해있는 듯해 보이며, 국민들을 향해서도 같이 취해가자 하고 있으며, 국민들 또한 동조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는 데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적폐청산이냐 정치보복이냐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고, 칼의 양 날과도 같으며, 한편으로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耳懸鈴鼻懸鈴)라는 속담과도 같다. 나는 정의고 상대는 불의라는 이분법적 논리는 이 나라를 망국의 길로 가게 하는 첩경이 될 수 있다.

정상인이라면 과거 정권들에 점수를 후하게 줄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적폐 즉, 과거 정권들로부터 누적돼 왔던 폐해는 어느 정권은 해당되고 어느 정권은 해당되지 않는다는 이분법적 논리야말로 자가당착이며 교만이고 오만이고 독선이다.

안타까운 것은 국민통합이라는 미명하에 실질적으로는 두 개의 국민으로 은근히 가르는 모순의 정치가 진행되고 있다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원인 없는 결과가 없듯이, 이 같은 모순의 정치는 대통령을 보좌하는 참모진들의 국정에 임하는 획일화된 가치관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으며, 이는 제2의 농단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게 되는 배경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국가의 미래를 위한 적폐청산이라면 정부가 아닌 국회 여야에 의해 합의된 위원회를 설치하고 주도할 때 국민들의 신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에 따라 잘못된 게 있으면 고치고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할 일과 대상이 발견되면 심판대에 세우면 되는 것이다. 정부의 일방적 판단과 조치와 지시만으로 진행된다면 그야말로 사정이며 보복이라는 파상공세를 피할 수 없을 것이며, 이는 또 다른 보복을 낳는 악순환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될 것은 불 보듯 훤한 일이다.

문제는 이 같은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는 데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무리수를 감행한다는 데 의혹은 짙어질 수밖에 없는 형국이 돼 버렸다.

협치라는 게 그렇게 구호로만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협치를 진정 원한다면 협치를 위한 노력과 희생이라는 진정성이 수반돼야만 한다. 그럴 때 1억이라는 국민의 눈과 귀가 증인이 돼 그 누구도 협조하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의 협치는 협치 라는 그물망을 쳐 놓고 걸리나 안 걸리나 저울질 하면서 국민의 여론의 향배에 눈치를 보는 그야말로 비겁한 행동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은 오늘이 있기까지 오랜 세월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일궈온 피의 역사라는 점을 잊어선 안된다. 무엇은 되고 안된다는 극단적이며 이기적 논리, 그 자체가 적폐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긍정과 부정의 역사 자체가 토양이 되고 거름이 돼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것이다. 지난 역사를 부인하는 것은 나라와 민족을 부인하는 것이며 곧 내 자신을 부인하는 것이다. 부패한 한 시대를 끝내고 청산하는 것은 오직 신(神)만이 할 수 있는 신의 영역이라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영국의 역사학자 토인비는 ‘도전과 응전’이라는 책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위해서는 끊임없이 설득하고 싸우고 노력하는 가운데 인류문명은 발전을 거듭해 왔다고 했다.

적폐라는 말을 그리 쉽게 해서도 안되며 또 잘못된 게 있으면 합의에 의해 고쳐나가면 되는 것이고 나아가 반드시 고쳐야 한다.

만민이 읽어야 한다는 세계 베스트셀러인 성경에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는 교훈이 이에 해당하는 것은 아닐까.

국내외 사정이 이보다 더 복잡하고 어려운 적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물론 국민에 이르기까지 그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지도자의 첫 번 째 덕목은 국내외의 사정을 사실대로 소상히 알리고 힘을 모아 ‘국민 총화(總和)’를 일궈내는 것이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라는 말처럼, 총화는 북한 핵보다 아니 그 어떤 지혜와 수단보다 강한 힘으로 나타날 것이며, 국론분열은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파멸의 핵이 돼 돌아 올 것이다. 우리 앞에는 이 두 가지의 핵이 놓여 있다. 과연 어느 핵을 선택할 것인가.

참으로 문재인 정부의 시작할 때 가졌던 기대와 희망을 안개 속으로 그렇게 사라져 가게 할 것인가, 아니면 안개를 뚫고 희망의 빛으로 나아오게 할 것인가는 현 정부의 결단에 달려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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