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남과학대 김정훈 교수. ⓒ천지일보(뉴스천지)

마쓰다 도키코, 반전·인권 작가
“민중의 목소리 강조 시점 견지”
김 교수, 日서 ‘문학의 역할’ 배워
“‘광주정신’ 일본에 전파할 것”

[천지일보 광주=이미애 기자] “1944년 5월 29일, 일본 하나오카 광산에서 갱도가 무너져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조선인 11명과 일본인 11명이 생매몰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살려달라 외쳤지만 일제와 전범기업 ‘도와광업’은 작업을 계속하기 위해 갱도를 토사로 덮어버렸습니다. 이 ‘나나쓰다테 갱도사고’를 알린 사람이 일본의 양심작가 ‘마쓰다 도키코’입니다.”

전남과학대 김정훈(56, 일문학) 교수는 일본의 진보적 양심작가 마쓰다 도키코(여, 1905∼2004)를 한국에 처음으로 알린 인물이다. 1988년 일본유학을 떠나 일본 문학을 시작한 뒤, 2000년도 초반에 프롤레타리아 문학에 눈을 떴다는 김 교수는 최근에는 문병란 시인의 문학과 ‘광주 정신’을 일본에 알리기 위해 애쓰고 있다.

지난 7일 광주 서구 풍암동의 한 카페에서 김 교수를 만나 마쓰다 도키코를 연구하게 된 계기와 최근 그 유족이 광주를 방문한 이유, 그리고 김 교수의 계획에 대해 들어봤다.

마쓰다 도키코는 하나오카 출신으로서 미국 중심의 한일조약 반대, 베트남 파병과 이라크 전쟁 반대 투쟁을 전개한 ‘반전평화 활동가’였으며 갱도노동자, 특히 진폐 환자 생존권 보장운동을 펼친 ‘인권운동가’로 평가 받는다. 또한 일본 저항문학의 대표 주자이자 동향 출신인 ‘고바야시 다키지’와 함께 일본 국가이데올로기에 반대하고 평생 민주주의 문학을 신조로 삼은 진보적 작가였다.

김 교수는 고바야시 다키지가 연결고리가 돼 마쓰다 도키코를 알게 됐다고 한다. 이즈 도시히코 교수의 저서 ‘전쟁과 문학-지금 고바야시 다키지를 읽는다’라는 책을 김 교수가 2007년 번역, 출간했고 이듬해 일본 민족예술연구소장이 김 교수를 찾아와 “자기 지방 출신 작가를 연구해줘서 고맙다”면서 “자기 고장에 또 한 사람의 작가가 있는데 그분은 조선인 징용문제를 평생 추구한 작가였다”고 소개를 했다. 이 때부터 마쓰다 도키코와 인연을 맺은 김 교수는 2011년 마쓰다 도키코의 저서인 ‘땅밑의 사람들’, 2015년 ‘하나오카 사건 회고문’을 번역한다.

‘하나오카 사건’은 나나쓰다테 갱도사고 약 2달 후부터 이어진다. 가시마구미 건설회사는 하나오카의 수로변경을 위해 980명이 넘는 중국인 포로를 공사에 투입했고 이들은 포로에게 밥도 물도 제대로 주지 않고 1년여 동안 혹독한 노동을 시켰다. 굶주림과 혹사에 못이겨 포로들이 1945년 6월 봉기를 일으켰지만 420여명이 잔인하게 학살당한 참사가 바로 하나오카 사건이다. 마쓰다 도키코의 정성과 용기에 의해 보고문학 형태의 생생한 증언록으로 간행돼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 일본의 양심작가 고(故) 마쓰다 도키코가 98세때 ‘사라이’ 잡지 7월호에 실린 모습. ⓒ천지일보(뉴스천지)

이 사건은 2000년 11월 가해자 측인 가시마구미가 피해자의 대리 역할을 한 중국적십자회에 5억엔을 주고 화해에 이르렀다. 하지만 나나쓰다테 사건은 유골반환 등 공식적으로 해결 된 바 없고, 희생자들 이름도 허름한 조혼비에 창씨개명 상태 그대로 새겨져 있는 실정이다. 

김교수는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을 본격적으로 접하게 된 계기에 대해 “2000년대 초, 외국문학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한국의 토양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시점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다”며 “프롤레타리아 문학 연구에 몰두해 온 요코하마시립대학의 이즈 도시히코 명예교수와 교류하고 그의 영향을 받으면서 ‘문학의 사회적 역할’에 눈을 떴다”고 설명했다.이 사건은 2000년 11월 가해자 측인 가시마구미가 피해자의 대리 역할을 한 중국적십자회에 5억엔을 주고 화해에 이르렀다.

하지만 나나쓰다테 사건은 유골반환 등 공식적으로 해결 된 바 없고, 희생자들 이름도 허름한 조혼비에 창씨개명 상태 그대로 새겨져 있는 실정이다. ‘하나오카 사건’은 나나쓰다테 갱도사고 약 2달 후부터 이어진다. 가시마구미 건설회사는 하나오카의 수로변경을 위해 980명이 넘는 중국인 포로를 공사에 투입했고 이들은 포로에게 밥도 물도 제대로 주지 않고 1년여 동안 혹독한 노동을 시켰다. 굶주림과 혹사에 못이겨 포로들이 1945년 6월 봉기를 일으켰지만 420여명이 잔인하게 학살당한 참사가 바로 하나오카 사건이다. 마쓰다 도키코의 정성과 용기에 의해 보고문학 형태의 생생한 증언록으로 간행돼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그 시기를 2012년도 기억하는데(마쓰다 도키코 연구에 집중하던 중) 광주에서는 근로정신대 피해자 문제가 이슈가 되고 있었고, 김 교수는 관련 시민모임을 찾아가 자문하게 된다. 근로정신대 문제도 한인 징용피해 문제이니 본질이 다르지 않다고 봤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일본의 진보적 작가를 연구하다 보니 시야가 확대돼 일본문학 수용뿐 아니라 우리의 참여문학이나 저항문학을 해외에 알리는 데도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최근 한국의 민주주의의 토대가 된 5.18과 광주의 정신을 상징하는 문병란 시인 알리기에 몰두하고 있다. 문학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지켜낸 광주의 대표 작가를 일본에 알리는 역할도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인터뷰 전날인 지난 6일에는 마쓰다 도키코의 큰 딸 하시바 후미코씨가 광주를 방문, 5.18국립민주묘지를 찾아 ‘하나오카 사건 회고문’의 서문을 쓴 문병란 시인의 묘소와 징용피해자이자 5월 유공자인 김혜옥 할머니의 묘소를 참배했다.

유족의 광주 방문 이유는 ‘마쓰다 도키코회’에서 내년에 발행하는 회보에 김 교수와의 인터뷰를 게재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김 교수는 “징용현안과 남북문제 등이 부상하고 있는 현 정세 속에서 작가의 시점과 작품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에 대해 알기를 원하다”며 “또 마쓰다 도키코의 저서가 한국 독자에게 어떻게 읽히고 있는지 한국 독자의 평가에 대해서도 궁금해했다”고 전했다.

김 교수는 “일본문화라는 거울을 통해 우리를 비춰보면 분명 성찰할 부분이 있다”면서도 “분단문제나 민족문제 등 현실적 과제가 현안인 우리와는 달리 일본은 사회참여 문학을 그다지 수용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광주의 정신을 상징하는 문병란·김준태의 문학이 일본 독자층에 쉽게 받아들여지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인권, 평화, 휴머니즘 등의 인류 보편적인 시점에서, 일본을 향해 ‘광주정신’을 전할 뜻을 내비쳤다.

김 교수는 끝으로 “징용문제 등 한일관계의 현안은 국가주의 시점이나 권력층에서 내려다보는 논리로는 쉽게 해결될 수 없다”며 “마쓰다 도키코의 성찰은 지배와 피지배, 탄압과 자유, 독재와 민주와 같은 구도 속에서 어디까지나 민중의 목소리를 강조하는 시점을 견지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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