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이끄는 대한민국호(號)가 위태롭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안팎으로 겪는 큰 소용돌이와 함께 조용히 우리 곁에 다가온 이념이 크게 자리 잡고 있으며, 그 이념으로 인해 국민들은 엄청난 혼란에 직면해 있지만, 정작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맹목적인 편파 편향적 찬반논리에 휩싸인 이 나라는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국내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종교적 소용돌이의 본질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요즘 인터넷과 지면을 통해 ‘포퓰리즘(populism)’이란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이 포퓰리즘이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가. 한마디로 일반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정치행태로 ‘대중인기 영합주의’라고들 한다. 이 포퓰리즘은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 이념과 사상 나아가 신념의 체계로 분류해 볼 때 하나의 ‘민중주의’를 대신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대중과 지배층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과 지배층을 동등시 한다는 기본 이념체계를 깔고 있으며, 정치 및 사회체제의 변화를 주장할 때 사용되는 표현이기도 하다. 굳이 무슨 이론이다 하지 않아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바다. 작금의 대한민국이 겪는 진통이 어디서 온 것인지도 가늠이 되는 바다. 이러한 포퓰리즘에 대해 지금까지는 긍정보다는 부정적 인식이 지배적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같은 결과는 한반도라는 특수한 상황이 빚어낸 결과라고도 볼 수 있으며, 또 한편으로는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민중사상에서라고도 볼 수 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양상을 다 고려해 봐야 한다. 또 지금까지는 이 포퓰리즘은 정치적 내지 남북한 상황에 볼모로 잡혀있었던 관계로 긍정보다 부정의 시각으로 보는 경향이 컸다. 그러나 대중의 뜻을 정치에 반영한다는 원론적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면도 분명히 있으니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문제는 이 같은 이념과 사상과 논리와 이론을 그 자체로 접근하고 해석하고 실천해 가는 것이 아니라 상호 정치적으로 악용해 온 측면이 강했으며, 그 결과 국민들은 혼란과 혼돈의 늪으로 빠져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 지난 정치역사다.

이제 중요한 것은 과거에 대해서는 이러한 논리에 속았고 또 어쩔 수 없었다는 답을 이미 얻었다. 따라서 이제는 속이지도 속아서도 안 된다는 분명한 명제 앞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정치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더 무섭게 되살아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관행의 영속성이 바로 적폐임에도 그 적폐는 진영이 바뀌어졌을 뿐 더 치밀하게 반복 진행돼 가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힘이 있는 쪽이 어디며, 칼자루를 쥔 쪽이 어디인가를 생각해 볼 때, 이 같은 악습을 끝낼 수 있는 쪽도 어디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적폐청산이냐 정치보복이냐는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를 놓고 갑론을박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분명한 것은 누군가의 희생적 영웅적 결단 없이는 결론이 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 아이러니다.

포퓰리즘 즉, 대중의 인기를 앞세워 정치 및 사회체제의 변화를 꾀한다는 명분으로 과거 자신들이 반대해 왔던 인적 제도적 도말 즉, 적폐청산을 시도한다는 것은 시대를 역행하는 퇴행적 사건으로 역사에 남을 공산이 커 보인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나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라고 천명한 문 대통령의 취임사는 국민들을 기만하는 하나의 쇼였다는 말인가.

누가 이 나라를 촛불과 태극기로 나눠 놨는가. 왜 하나의 국민을 둘로 나눠야 하는가. 거기에 대한 1차적인 책임은 국정농단을 가져온 박근혜 전 정권이겠지만, 2차적인 책임은 힘과 권력을 가진 문재인 정권에 있을 것이며, 3차적 책임은 분별력 없이 따라가는 국민 스스로가 져야 할 것이다.

아무리 과거 정권이 잘못한 게 있다 하더라도 심판이 정의롭지 못하고 객관적이고 합리적이지 못할 때는 언제나 부메랑이 된다는 진리 또한 잊어선 안 될 것이다. 아무리 죄인이라 할지라도 법 앞에서는 평등해야 한다. 죄의 유무는 법리적 판단에 맡겨야 하고, 정치는 정치력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금번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 연장 판결에 있어서도 법리적으로는 타당한 판단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청와대의 캐비넷 요술방망이는 상대를 자극하게 했고, 재판관이 영향을 받지 않고 법의 판단에 기초했다 할지라도 판단에 영향을 주고자 했던 것은 사실로 봐지며, 이는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 하여금 불복하게 만든 구실을 제공했다 한다면 틀렸다고 할 것인가. 나아가 박상기 법무부 장관의 MB 수사 가이드라인 설정 등은 현 정권의 실상이라는 비난은 피하기 어려워 보이는 대목이다.

이제 박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은 적폐도 아니고 법리논쟁도 아닌 신구정권의 정치쟁점화로 비화돼 가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다른 변호사를 선임할 일이 없어 보이며, 사퇴한 변호사가 다시 변호할 수는 있지만 그럴 가능성도 희박해 보인다. 대한변호사협회에서도 성명을 통해 사안의 중요성을 내비쳤다. 이 사건을 국선변호사가 대신 맡기엔 내용이 너무 중하고 방대해 현실적으로 감당할 수 없다고 보는 게 맞다. 피고인 박 전 대통령 또한 법정에 참석하지 않을 확률이 높아졌다. 피고인 없이 국선변호사와 재판부의 재판 진행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제 이 나라는 촛불과 태극기의 치열한 대리전은 물론 여야의 정치적 대립으로 온 나라를 달구게 될 것이 불 보듯 훤히 보인다. 과연 누구의 책임일까.

국정감사 현장에서 질의 한 번 못 받고 몇 시간 동안 자리만 지키다 퇴장하는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뒤태는 우리나라의 무너진 법질서의 자화상이었던 것이다.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구태를 반복하는 미련한 정치는 결과적으로 국민들만 곤경에 빠뜨리고 있다는 점을 제발 인지했으면 좋겠다.

포퓰리즘 즉, 인기영합이라 했듯이, 취임 후 지키지 못할 공약과 약속이 난무했고, 탕평이라는 말처럼, 나라의 살림과 외교 안보의 실력자를 발굴해 튼튼한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의지는 보이지 않고, 인기병합이라는 말처럼 주변 인맥에 급급했고, 어떻게 하면 국민들의 인기를 얻을까만 연구하는 정권으로 인식돼 가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문 대통령과 청와대만 모르는 듯하다. 대통령은 인기와 지지를 위한 자리가 아니라 국민대통합을 이끌어 나라와 국민과 미래를 위해 희생하는 자리다. 깜짝 등장과 깜짝 쇼를 즐기는 연예인의 길이 아닌 통치자의 길을 걷기를 기대해 본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