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희윤 행복한통일로 대표/을지대 겸임교수 

 

올해 들어 두 번째 방문하는 영국행이지만 여전히 낯선 날씨와 을씨년스러운 거리는 각종 테러소식과 함께 약간은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었다. 런던과 교외를 잇는 철도를 이용한 것은 여러번이었던 것에 반해, 이번 여행길에서는 처음 장거리 버스를 탑승하는 기회가 있었는데, 세계적인 문학축제가 열리는 챌튼햄 지역으로 가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은 익히 몰랐었다.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영국인들과 세계인들에게 문학과 과학, 예술의 축제로 이름을 날린 지역으로의 교통편이 힘들었던 것에 놀란 만큼, 축제 장소에 도착해서는 그런 어려운 길을 즐거운 마음으로 찾아왔을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다시 한번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날씨는 여전히 햇빛과 구름과 비를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서로를 반복하는 가운데 행사장에 도착한 필자는, 노인분들이나 어린아이들이 다니기에는 약간은 쌀쌀한 날씨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반디의 고발책에 대해, 그리고 북한주민의 자유와 인권을 위해 행사장을 찾을지 사뭇 궁금했었다. 북 토크의 사회를 맡은 여성 앵커와 사전대화를 나누는 도중에 전 객석이 만석이 되도록 참여 신청자가 많았다는 이야기에 설마 했던 기우는, 행사장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아찔해지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300개 좌석이 넘는 행사장 안에 가득 찬 청중들을 지나 무대 위로 올라가면서, 이런 자리에 반디선생을 대신해 참여할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했고, 한정된 시간 속에 얼마나 많은 교감을 이룰 수 있을지 걱정부터 앞서기 시작했다.

자리에 앉으면서부터 시작된 우리의 대화는 어느새 그렇게 시간이 지나버렸는지 모를 정도로 빠른 속도로 흘러갔고, 그 자리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할 만큼 시간의 제약은 모두를 안타깝게 만들었다. 행사가 끝난 후 유명작가들에게나 있을법한 팬사인회에서, 반디선생을 대신하여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일일이 ‘From Bani’라는 글귀를 남긴 채 그날 행사를 모두 마무리 지었다.

잠시 북 토크의 시간으로 돌아가 보면, 통역이라는 여러 제약적 조건 속에서 영국인들이 얼마나 북한주민을 사랑하고 반디선생의 안전을 염려하며, 지구촌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한반도의 정세에 그렇게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새삼 놀라웠다. 

우리들의 이야기가 마무리되고 청중과 함께하는 대화의 시간에 너도나도 질의를 하겠다는 사람들의 손짓에서 서로의 교감은 더욱 확고해지고 결의에 찼었는데, 지금도 가슴에 생생하게 남아있는 6.25전쟁 참전용사의 떨리는 발언은 감동 그 자체였다. 6.25전쟁에 참전해 중공군의 포로가 되어 2년여를 보낸 역전노장은, 1953년 정전협정과 함께 고향 영국으로 돌아왔지만, 이제나 저제나 한반도의 통일과 아직도 귀환하지 못한 국군포로분들의 생환을 위해 기도한다며 필자를 울렸다.

북한의 김정은이 미사일을 쏠 거 같으냐는 질문에, 군사전문가가 아니라서 김정은의 도발에 대해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지만, 여기 모인 우리들이 먼저 북한을 향해 미사일을 쏘자고 제안할 때, 미사일이라는 단어에 의아해하던 청중들이, 그 미사일은 바로 ‘인권의 미사일’이고, 반디의 고발 책을 비롯한 북한인권의 책들을 읽고 북한이라는 감옥 문을 열려고 하는 우리의 노력이 바로 ‘인권 미사일’이기에, 그것을 우리가 먼저 북한을 향해 쏘자고 했을 때 모두가 진정으로 한마음이 됐다.  

함께 북 토크에 참여한 영국 옥스퍼드 대학 연구원인 ‘북한의 감춰진 혁명’의 저자 백지은씨는 ‘신성한 개입’으로 북한을 변화시키자고 화답했고, 이날 우리들의 책은 모두 동이 나버리는 쾌거(?)를 기록할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어 94세의 고령임에도 먼 길을 한걸음에 달려와 반디선생과 우리들을 격려해주신 6.25참전 영국군 영웅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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