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시진핑(習近平) 집권 2기를 여는 중국 공산당 19차 당 대회는 시진핑의 황제 대관식이나 다름없었다. 대회장인 인민대회당에 온통 붉게 깔린 양탄자는 시진핑 본인을 제외한 다른 당 대표들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들은 중국 전체 공산당원 8900만명 중에서 뽑힌 기초적 정예로서 자그마치 2천여명을 헤아렸다. 이들은 이미 짜여진 각본에 따라 시진핑의 손에 황제의 권력을 쥐어줄 연출의 소임을 맡은 사람들이다. 따라서 예우를 말할 때는 대단히 중요한 존재들인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그들은 이 행사의 주인이 못되며 북한의 공산당 대회에서와 마찬가지로 그저 들러리에 불과하다. 그냥 들러리인 것도 모자라 시진핑을 띄우는 엄숙한 분위기에 압도돼 숨도 제대로 못 쉬는 모습이 역력한 꼭두각시였다. 그렇다면 오히려 주눅이 바짝 들어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고 하는 편이 더 사실에 부합할지 모른다. TV 영상이 전하듯이 그들의 시선은 일사분란하게 시진핑을 올려다보아야 했으며 ‘그 황제’가 용인하지 않으면 손가락 하나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을 것처럼 빳빳하게 굳어 있었던 것을 우리는 보았다. 행사장 바깥 표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천안문광장의 경계는 극도로 삼엄해 신분이 누구이든 대회당으로 진입하기 위해 대여섯 차례의 이 잡듯 뒤지는 번잡한 검문을 통과해야만 했다. 

천안문광장뿐만이 아니었다. 행사가 열리는 베이징을 중심으로 교통이 심하게 통제된 것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유흥업소까지도 행사 기강의 해이를 염려하는 당국의 의지에 따라 영업을 중단해야 했다. 이런 식으로 기실 시진핑 1인 체제의 출범과 그 행사에 주의를 집중시키기 위해 조선족을 포함한 56개 민족, 14억에 달하는 중국의 전 인구가 그야말로 무덤 속의 고요처럼 숙연해져야 했다. 감히 누구라도 시진핑을 칭송하는 말 말고는 한마디라도 삐딱한 소리를 해서는 큰일 나는 분위기였던 것이 확실하다. 산소(O2)는 들여 마시지 않으면 생명이 끊기지만 무한재로서 넘쳐나기에 중요한지 모른다. 자유세계의 자유가 꼭 그와 같다. 그렇기에 자유의 절박함을 실감하지 못하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어쩌면 당연히 중국의 저런 통제된 분위기가 제대로 이해되기도 상상되기도 어려울 수 있다. 그렇지만 바로 그것이 우리 이웃의 엄연한 실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거래를 해도 알고 해야 하며 중국이 숙명적인 이웃이긴 하지만 갈등으로 얽힐 때는 항상 ‘차이나 리스크(China risk)’의 덫에 걸릴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만은 경계해야 한다.

한국 미국 일본 등 자유세계의 정치 행사는 시끄러운 장마당과 같기도 하고 난장판 같기도 하다. 그래야 연사들도 들뜨고 신명이 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경우에 따라 엄숙한 행사가 종종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더라도 중국과 북한에서처럼 공산당 1당이나 1인이 관중의 무덤 속에서와 같은 고요 속에서 전매특허로 각광(spotlight)을 독점하는 일은 드물다. 만약 이 분위기를 거스르면 반역이다. 현영철 북한 인민무력부장은 최고지도자의 연설 자리에서 졸았다가 처형당하지 않았었나. 어떻든 시진핑은 일체의 소음이 제거된 인민대회당의 공산당 대회에서 그 고요를 깨며 그 고요 속을 맘대로 유영할 수 있었던 유아독존의 1인 주인공이었다. 환갑,  진갑을 넘긴 올해 64세인 그는 당 대표들이 부동자세로 경청하는 가운데 3시간 30분의 장광설을 거뜬히 소화했다. 급한 생리적 볼 일들은 어떻게 해결했을까 궁금하다.

그는 절제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중국 공산당은 중국 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위한 중국몽(中國夢), 강군몽(强軍夢)의 실현을 위해 불망초심 뇌기사명(不忘初心 牢記使命/초심을 잊지 않고 사명을 기억함)의 정신으로 분투해야 한다. 국내외 정세가 복잡하고 중요한 시기에 우리의 사명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라는 위대한 기치를 들고 전면적인 샤오캉(小康/전 인민이 고루 편안하고 잘 사는 것) 사회를 이루는 것’이라고 또박 또박 힘주어 역설했다. 시진핑은 황제의 색깔인 짙은 자주색 넥타이에 감청색 양복차림이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평가하기를 ‘이번 당 대회는 시진핑의 다음 5년 집권 2기의 출범이라기보다는 황제의 대관식에 가까운 행사’라고 했다. 왜 아니겠는가. 황제가 되려는 그에겐 견제할 만한 정적이나 세력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그에겐 로마 시저에서처럼 브루투스나 안토니 같은 정적이 없다. 그는 부패 사정의 칼날을 휘둘러 일찍이 정적들을 다 쳐냈다. 대신 권력의 최고지도부인 중앙정치국과 상무위원회의 요소요소에 그의 측군 세력인 ‘시자쥔(習家軍)’으로 채워놓았다. 그가 관례를 뛰어넘어 오는 2022년 당 대회에서 권력을 승계할 후계자를 지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그의 권력의 영화는 다음 당 대회를 치르고서도 시들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을 가능하게 한다.

그의 기세는 욱일승천이다. 살아있는 현역의 권력에 퇴임한 권력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집단지도체제하의 중국이었지만 황제의 권력을 지향하는 시진핑은 권력의 뿌리가 뽑힌 91세의 퇴임권력 장쩌민(姜澤民)이나 74세의 후진타오(胡琴濤)의 말발에 흔들리지 않을 만큼 터프(tough)해지고 권력 기반이 견고해졌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시진핑을 뒤따라 인민대회당에 들어서는 그들의 표정은 마치 못 갈 곳에 가는 것처럼 영 우울해보였다. 그렇긴 해도 장쩌민은 범상치 않은 파격을 연출했다. 그는 자리에 앉아 잠시 시진핑의 연설을 경청하는 듯 했었다. 그런데 금세 주의가 흐트러지고 연신 고개를 떨구며 조는가 하면 접시만한 확대경으로 연설문을 뒤적이며 보기도 했다. 산전수전공중전을 다 겪은 장쩌민이다. 그런 행위가 시진핑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음을 모를 까닭이 없다. 그렇다면 부러 그런 식으로 뭔가 못마땅한 심기를 표출한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그것이 큰 문제로 취급될 가능성은 적다. 늙은 원로가 저지른 해프닝으로 그냥 조용히 지나갈 확률이 높다. 정작 우리가 중요하게 주목해야 할 것은 그런 해프닝이 아니라 당 대회 이후 권력이 더욱 강화된 시진핑 치하의 중국이 어떻게 변화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그것에 따라 우리의 대응과 자세도 사뭇 달라져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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