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의 개헌 논의가 왠지 더디고 불안하다. 과거 노무현 정부 때 개헌 논의가 펄펄 끓다가 금세 식어버리긴 했지만 공론화의 계기가 된 것이 사실이다. 이후에도 역대 정부는 기회 있을 때마다 개헌을 논의하고 또 공약까지 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물론 박근혜 정부도 예외가 아니었다. 임기 초부터 개헌 논의를 시작하려 했지만 당시 제동을 건 쪽은 청와대 권력이었다. 국정의 주도권을 놓지 않기 위해 또는 대통령 권력이 약화될 것을 우려한 탓에 개헌 논의는 제대로 속도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행보는 많이 달라 보인다. 지난 1일 문 대통령이 국회에서 행한 시정연설은 그 단적인 사례가 아닌가 싶다. 이날 문 대통령은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입장과 국회의 협조를 요청하면서 동시에 개헌 논의도 서둘러 달라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내년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함께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 시기를 놓친다면 국민들이 개헌에 뜻을 모으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국회에서도 일정을 헤아려 개헌을 논의해 주시기를 당부드린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는 이제 출범 6개월에 불과하다. 시점으로 보더라도 개헌을 말하기엔 아주 부담스런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국민과 약속한 대로 그리고 개헌을 해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직접 국회에서 자신의 의지를 밝힌 것이다. 국정운영에 다소 부담이 가더라도 지금 시기를 놓쳐버리면 앞으로는 더 어렵기 때문에 국회에서의 개헌논의를 독려하는 모습은 모처럼만에 보는 ‘큰 정치의 길’이 아닌가 싶다.

이제 본격적인 논의의 장은 국회에서 열어야 한다. 벌써 ‘87년 체제’ 30년째이다. 헌법이 새로운 시대의 좌표를 설정하기는커녕 지금의 우리 몸에 맞지도 않는 낡은 수준이라면 더 이상 이대로 가서는 곤란하다. 겉으로는 국민적 공감대 운운하지만 이미 국민여론은 성숙돼 있다. 국회에서도 충분한 논의가 이미 진행돼 왔을 뿐더러 개정헌법의 초안도 여러 개 준비돼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개헌문제를 얕은 정치적 속셈이나 정쟁의 수단으로 삼을 생각은 추호도 없어야 한다.

문 대통령이 강조한 대로 국민의 기본권을 확대하고 지방분권을 강화하는 방안은 각론 수준만 이견이 있을 뿐 전반적인 공감대가 이뤄져 있다. 그리고 권력구조와 선거제도를 바꾸는 문제도 이미 상당한 논의가 돼 있다. 중요한 것은 큰 논쟁적인 것은 잘라내고 개헌의 핵심만 간략하게 정리하고 절충하는 데 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법이다. 자칫 개헌의 모든 내용을 놓고 갑론을박 하다가 다시 그 이유로 개헌문제를 또 다음으로 미루는 불상사만큼은 막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회가 빨리 개헌 문제를 테이블에 올려놓아야 한다. 내년 지방선거,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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