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일 오후 국립대전현충원 순직공무원 묘역에서 세월호 참사 당시 제자들의 탈출을 돕다 순직한 故 고창석 교사의 안장식이 엄수됐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 대전=김지현 기자] “학생들의 생명이 자신의 하나뿐인 생명보다 귀했나봅니다.”

세월호 사건이 터진 지 1127일만에 가족 품으로 돌아온 단원고등학교 고창석 교사(당시 40)가 한 줌 흙이 되어 땅에 묻혔다.

13일 오후 국립대전현충원 순직공무원 묘역에서 세월호 참사 당시 제자들의 탈출을 돕다 순직한 故 고창석 교사의 안장식이 엄수됐다.

세월호에서 유해가 발견된 장소가 탈출구와 가까운 곳이었음에도 그는 살아남지 못했다.

당시 ‘자신의 구명조끼를 내어주면 생명을 잃게 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을 고창석 교사는 아낌없이 제자들을 구하기 위해 애를 썼다. 학생들에게 목이 터져라 ‘배에서 나가라’고 외쳤다.

▲ 13일 오후 국립대전현충원 순직공무원 묘역에서 세월호 참사 당시 제자들의 탈출을 돕다 순직한 故 고창석 교사의 안장식이 엄수됐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원광대 사범대학 체육교육학과를 나온 고창석 교사의 1년 선배라는 김양모씨(가명, 남, 전주, 45)는 고인이 되어버린 고 교사의 생전의 모습을 회고하며 기자에게 이야기해줬다.

원래 오후 4시로 예정됐던 안장식이 유가족의 당부에 따라 2시경으로 당겨지면서 3시 반경 혼자 남은 선배는 비어있는 꽃병에 꽃을 사다 꽂았다.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고 교사의 곁을 지키고 서 있는 그는 “학교 다닐 때 지각, 결석 한 번 안한 모범생이었다”며 “선배들의 사랑을 흠뻑 받을 만큼 항상 반듯하고 예의가 바른 후배였다”고 말했다.

“운동 중에서는 테니스를 제일 좋아하고 즐겼지요. 꽃병에 꽃이 없길래 사가지고 왔어요.”

‘제 10호 교사 고창석의 묘.’ 고창석 교사는 교사로서는 처음으로 유일하게 대전현충원 순직공무원 묘역에 안장됐다. 1호부터 9호까지 고위험군에 속하는 철도원 8명, 지방수의주사 1명, 전람원 1명의 묘비가 가지런히 세워져 있다.

고창석 교사의 비석은 겨울 동안 차가운 땅이 잘 다져지길 기다려 내년 봄에 세우게 된다. 

▲ 13일 오후 국립대전현충원 순직공무원 묘역에서 세월호 참사 당시 제자들의 탈출을 돕다 순직한 故 고창석 교사의 안장식이 엄수됐다. ⓒ천지일보(뉴스천지)
▲ 13일 오후 국립대전현충원 순직공무원 묘역에서 세월호 참사 당시 제자들의 탈출을 돕다 순직한 故 고창석 교사의 안장식이 엄수됐다. ⓒ천지일보(뉴스천지)
▲ 13일 오후 국립대전현충원 순직공무원 묘역에서 세월호 참사 당시 제자들의 탈출을 돕다 순직한 故 고창석 교사의 안장식이 엄수됐다. ⓒ천지일보(뉴스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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