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버트 무가베(93) 짐바브웨 대통령과 그의 부인인 그레이스 무가베(52) (출처: 뉴시스)

국영방송 장악… 무력충돌도
독립투사에서 독재자로 전락

[천지일보=이솜 기자] 아프리카의 대표적인 독재자 로버트 무가베(93) 대통령이 37년간 군림해온 짐바브웨에서 군부 쿠데타가 발생했다. 짐바브웨 군부가 수도 하라레와 국영 ZBC 방송을 장악하고 무가베 대통령 부부를 가택 연금 중이라고 발표함에 따라 그의 독재정치는 막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AFP, 로이터통신, 연합뉴스 등에 따르면 짐바브웨 군부는 15일(현지시간) ZBC 방송을 통해 정권을 잡았다고 발표했다.

◆군부 “민주주의 회복 위해”… 전 부통령 배후설

이날 군부 대변인은 중계방송에서 이번 정권 장악이 무가베 대통령 주변에서 사회적, 경제적으로 고통을 초래한 ‘범죄자’들을 겨냥한 것이라고 밝혔다.

무가베 대통령의 사저 근처에서 총성 등 무력 충돌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군부는 무가베 대통령과 그의 가족들이 안전하고 건강하다고 설명했다.

또 군부는 자신들이 임무를 마치고 곧바로 복귀하는 ‘정상적인 상황’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군부는 정권을 빼앗으려는 시도가 아니며, 짐바브웨의 민주주의를 회복시키기 위해서라고 강조했지만, 무가베 대통령이 과거와 같은 권력을 회복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번 군부 쿠데타는 전 부통령과 대통령 부인의 권력 다툼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 지난해 짐바브웨의 에머슨 음난가그와 전 부통령이 집권당 당원 모임에서 당 슬로건을 외치고 있다. 무가베 대통령이 아내 그레이스를 후계자로 삼기 위해 부통령을 해임하면서 군 정변의 싹이 텄다. (출처: 뉴시스)

무가베 대통령 이후 짐바브웨의 권력을 누가 잡게 될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차기 대통령 후보로 꼽히던 에머슨 음난가그와 전 부통령(75)이 거론되고 있다. 음난가그와 전 부통령은 영부인 그레이스 무가베(52)와의 후계 구도를 놓고 경쟁하다가 지난주 무가베 대통령에 의해 해임됐다.

음난가그와 전 부통령은 이후 해외로 도피했고 성명을 통해 나중에 짐바브웨로 돌아와 무가베 대통령과 맞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부부세습’에 발목… 최장기·최고령 독재자 무가베

무가베 대통령은 세계 최장기, 최고령 집권자다. 짐바브웨가 영국 식민통치에서 독립한 1980년 56세에 초대 총리 자리에 오른 이후 37년째 집권하고 있다. 왕을 제외한 인물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집권한 셈이다. 이미 2015년 전당대회에서 2018년 대선 후보로 또 한 번 확정된 상태로, 2018년 대선에서 다시 당선될 경우 99세까지 임기를 유지하게 됐다.

그는 집권 초기에는 인종 간 화합을 이룩하고 대다수 흑인을 위해 교육과 보건 부문의 개혁을 이룬 공로로 국제사회의 칭찬을, 내부에서는 짐바브웨 독립투사 출신으로 칭송을 받아왔으나 장밋빛 영광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곧 반체제 인사를 탄압하고 국가 경제를 파탄으로 몰고간 ‘독재자’로 비난을 받았다.

▲ 군부 쿠데타가 발생한 짐바브웨 수도 하라레에서 15일(현지시간) 무장군인과 탱크가 로버트 무가베(93) 대통령 집무실로 이어지는 인근 도로를 지키고 있다. (출처: 뉴시스)

독립투쟁 동지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취한 그의 토지개혁 정책은 농업부문의 몰락을 가져오고 국외 투자자들의 발길을 돌리게 하여 결국 국가 경제의 파탄으로 이어졌다.

특히 최근 무가베 대통령이 그레이스 여사에게 대통령직을 물려주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결국 최대 정치적 위기를 맞게 됐다. 사치스러운 생활, 폭행 혐의 등으로 각종 논란을 불러온 그레이스 여사가 남편으로부터 대통령직을 물려받으려는 무리수가 군부 반발을 불러왔다는 관측이 나온다.

전기작가인 마틴 메레디스는 “무가베의 집착 대상은 재산이 아니라 권력”이라며 “무가베는 반체제 인사를 억압하고 법률을 어기는가 하면 재산권을 짓밟고 언론을 탄압하며 부정선거를 저지르는 등 폭력과 압제를 통해 권좌를 유지해 왔다”라고 분석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학의 샤드락 구토 교수는 “한때 위대한 지도자였단 무가베가 지금은 국가를 바닥으로 추락시킨 장본인이 됐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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