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일 전남 국립나주박물관에서 발굴 100년을 맞아 '나주 신촌리 금동관'을 재조명하는 국제학술대회가 열린 가운데 박중환 국립나주박물관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신촌리금동관, 그 시대를 만나다’란 주제로 국·내외 학계 전문가 한 자리
몽골 등 동북아시아의 금동관과 문화교류 관점에서 본 금동관 재조명
오래된 숙제 ‘신촌리 금동관은 누가 만들었나’ 마한 정치체에도 관심

[천지일보 나주=이진욱 기자] 발굴 100년을 맞아 국보 제295호 ‘나주 신촌리 금동관’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국제학술심포지엄’이 17일 국립나주박물관에서 열렸다.

나주시(시장 강인규)와 나주국립박물관(관장 박중환)이 주최하고, (사)국립나주박물관후원회가 후원한 이번 국제학술대회는 ‘신촌리 금동관, 그 시대를 만나다’라는 주제로 ‘신촌리 금동관’의 조사 및 연구의 역사와 역사 고고학적 의미를 집중 조명하는 자리로 9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일정으로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박중환 국립나주박물관장과 이진우 학예사 등은 물론, 김낙중 전북대교수, 지건길 국외소재문화재단 이사장, 다카타 칸타 일본교수 등 국내외 학계 주요 인사와 고고학과 학생들, 국립박물관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또한 강인규 나주시장, 김판근 나주시의회장, 장행준 나주시부의장, 이민준 도의원 등 지역 자치단체장과 각 기관장 및 시민 100여명이 참석해 큰 관심을 보였다.

박중환 국립나주박물관장은 개회사에서 “일제강점기인 1917년 12월 발굴됐던 금동관이 올해 12월로 발굴 100년을 맞게 됐다”며 “발굴 100년을 계기로 나주시와 함께 특별전을 마련했는데 이번 특별전과 학술대회가 발굴로부터 100년이 다 되도록 하지 못했던 문화재 조사 연구의 본격적인 작업의 시작을 이루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강인규 나주시장은 축사에서 “우리시는 신촌리 9호분 출토 금동관을 재조명하고 미스터리한 마한의 역사를 대국민에 홍보하고 이해시키는 특별전을 지난 9월부터 이곳 나주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다”며 “또 마한 역사 만화발간, 마한의 고인돌 복원, 마한 문화 축제 개최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3년 동안 ‘반나부리 프로젝트’를 통해 진행해 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마한의 역사를 대표하는 상징물인 금동관에 대해 심도 깊은 전문가들의 논의를 통해서 오늘은 한 걸음 더 들어가는 역사적 시간이 될 것”이라며 “국제학술대회를 통해 동시대의 몽고와 일본의 금동관에 대한 세세한 분석과 연구 성과를 토대로 누가 이 나주의 금동관을 제작했고 어떤 세력이 창작했으며, 그들의 정치적 성격은 어땠는지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학술대회는 크게 ‘동북아시아의 금동관과 문화교류’라는 관점에서 신촌리 금동관을 바라보는 부분과 ‘나주 신촌리 금동관으로 본 마한 정치체’의 성격에 대한 두 부분(1, 2부)으로 나눠 총 7개의 주제로 이뤄졌다.

1부 ‘동북아시아의 금동관과 문화교류’ 성과 발표에 앞서 지건길 전 국립중앙박물관장(현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이 ‘나주 신촌리 금동관 발굴의 의의와 100년의 발자취’란 주제로 기조 강연자로 나섰다.

이어 정인성 영남대교수는 ‘1917년 나주 반남면 고분 발굴 이야기’란 주제로 발표했다. 또 에렉젠(몽골아카데미)은 ‘몽골국에서 발굴된 투르크 제국 빌게 카간의 황금관에 대한 고찰’, 다카타 칸타교수(일본국립역사민속박물관)는 ‘관을 둘러싼 백제·영산강 유역과 왜의 교섭에 관한 예찰’을 주제로 발표했다.

2부는 ‘나주 신촌리 금동관과 마한 정치체의 성격’이란 대주제로 4명이 발표했다. 발표는 이진우 국립나주박물관 학예사(제작기법을 통해서 본 나주 신촌리 금동관의 계통), 이경화 문화재청 감정관실(장식문양을 통해서 본 나주 신촌리 금동관의 계통), 이도학 한국전통문화대교수(나주 반남면 신촌리 9호분 금동관의 제작 주체), 김낙중 전북대교수(나주 신촌리 금동관 창작자의 정치적 성격)가 각자 연구 성과를 공유했다.

특히 이번 학술대회는 나주시민이 가장 궁금해하는 ‘금동관이 제작되던 당시 이 금동관을 만들고 사용하던 사람이 누구인가’의 문제와 ‘그러한 문제는 결국 영산강 유역의 마한 정치체제와 백제의 관계가 어떻게 전개되었는가’라는 나주 시민의 오래된 ‘숙제’에 관심과 초점이 모였다.

이에 대해 이도학 한국전통문화대교수는 ‘나주 반남면 신촌리 9호분 금동관의 제작 주체’ 발표에서 “그동안 학계에서 금동관은 백제 중앙에서 하사한 물품으로 추정하는 정도였고 논의가 많았다”며 “그러나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신촌리 9호분의 경우 영산강유역의 독자적인 정치세력과 관련된 산물로, 백제와 구분되는 또 다른 세계, 즉 마한의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징표로 보인다”고 말했다.

▲ 17일 오후 2시 전남 국립나주박물관에서 나주 신촌리 금동관 출토 100년을 맞아 금동관을 재조명하는 국제학술대회가 열린 가운데 이도학 한국전통문화대교수가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김낙중 전북대교수는 ‘나주 신촌리 금동관 창작자의 정치적 성격’이란 주제발표에서 “사여의 주체는 금동관 성격파악의 전제가 되므로 금동관을 누가 만들었는지 밝히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며 “형태, 문양, 제작기법 등에서 보이는 어느 정도의 정형성과 금공품이 가지는 제작처의 한정성을 고려하면 백제 금동관은 한성에서 제작돼 지방의 다양한 세력에게 분배됐고 중앙에서 멀어질수록 변화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신촌리 금동관은 백제왕권이 하사한 위세품(교환가치가 가능한 교환품, 착장형, 만들 때마다 형태가 다를 수 있음)으로 볼 수 있다”면서도 “그런데 그것을 문헌 기록에서도 시행 여부가 분명치 않은 4~5세기의 지방통치체제에만 집중해 담로제나 왕·후호제에 결부시키고자 하는 데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영산강 유역의 경우는 위세품을 통한 정치 관계 형성이 가장 늦고, 대외적으로도 가야, 왜 등과 활발히 교섭했다”며 “이 중에서도 신촌리 9호분을 비롯한 반남지역 집단은 지역 사회내부에서도 연맹왕국에 버금가는 수준의 통합을 보여 단순한 백제의 세력권보다 좀 더 고도의 정치체를 형성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학계에서 반남지역정치체는 전통적인 옹관분 축조 세력의 기반을 바탕으로 영산강 유역의 중요한 세력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고종 축조기에는 유일한 세력의 지위를 잃고 이후 6세기 중엽 이후에는 백제의 완전한 지방으로 편제된 것으로 전한다.

한편 3시부터는 종합토론이 진행됐다. 좌장은 임영진 전남대교수가 발표자는 박보현 대전보건대교수, 정재윤 공주대교수 등이 자리했다. 토론은 학계 전문가 발표 및 의견과 함께 시민들의 질문, 5분 발언을 포함해 5시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이날 학술대회 및 토론회에 참석한 한 시민(국립나주박물관 후원회)은 “마한인이자 나주인으로서 우리 고장의 자랑인 신촌리금동관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자 특별히 참석했다”며 “100년전 일본인에 의해 세상에 드러난 금동관의 비밀이 이런 자리를 통해 매듭이 풀리듯 하나씩 풀려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 17일 출토 100년을 맞아 나주 신촌리 금동관 재조명을 위한 '국제학술대회'가 전남 국립나주박물관에서 열린 가운데 오후 3시 20분 임영진 전남대교수 주재(사진 가운데)로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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